“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 7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입원 직전 썼던 2권의 일기장은 그의 서거(2009년 8월 18일) 후 소책자로 정리돼 출간됐고, 해당 문구는 책 표지 제목으로 쓰였다. 피랍ㆍ가택 유폐에서 대통령 당선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가 압축된 대표적 표현이다.
13년 전 쓰인 이 문구를 공교롭게도 야권의 두 인물이 나란히 소환했다. 한명은 정치적 휴지기를 위해 미국 행을 앞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 한명은 국가정보원장에서 물러나 정치적 발언을 재개하기 시작한 박지원 전 원장이다. 모두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 출신이자, 이번 지방선거 패배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다.
미국으로 떠나는 이낙연…1년 휴식? 조기 복귀?
이 전 대표는 5일 서울 국립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한 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되새기고 싶어졌다”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가 김 전 대통령 묘소를 찾은 건 미국 유학길을 앞두고 “출국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 대표는 미국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1년간 유학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오는 7일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다.
이 전 대표의 유학은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재충전을 갖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 역시 14대 대선에서 패한 뒤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 후 15대 대선에 재도전, 당선했다. 지난 3일 이낙연계 모임인 ‘대산회’가 해체를 선언한 것도 이 전 대표가 정치적 휴지기를 갖겠다는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당내에선 “이 전 대표가 1년간 온전히 미국에만 머무를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당장 당내 최대 주주인 이재명 의원이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이 전 대표를 필요로 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면 조기 복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낙연계가 ‘이재명 전당대회 출마 불가’ 주장을 펼치는 상황도 이런 추측에 힘을 싣는다. 이 전 대표 본인도 지난 2일 “패자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 받아들이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다만 이낙연계의 한 의원은 “유학은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정인데 이를 깨고 1년 내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며 조기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당내에서도 “당 대표 시절 지지율 다 까먹고 경선에서도 진 인물이 무슨 명분으로 또 나올 수 있겠느냐”(이재명계 초선 의원)는 비토론이 여전한 상황이다.
몸 푸는 박지원…정치 행보 알리며 “역사는 발전한다”
이와 달리 박지원 전 원장은 페이스북에 향후 자신의 일정을 알리며 정치적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극비의 보안이 요구되는 정보기관 수장 자리를 벗어난 만큼, 본래의 ‘마이크 대통령’ 모습으로 돌아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5일 목포에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방문, 6일 광주에서 국립 5ㆍ18민주묘지 참배, 7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헌화, 10일 국립현충원에서 이희호 여사 추도식 참석” 등의 일정을 세세하게 써 올렸다. 이때 올린 문구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였다.
박 전 원장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세는 물론 내홍에 빠진 민주당에도 여러 비판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검찰 공화국 만드시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법한 인사”(3일)라고 하거나, 민주당엔 “국민이 납득하는 싸움을 해야지 너 죽고나 살자 한다면 3연패가 기다릴 뿐”(5일)이라고 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