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세정의 시선

최재형 묘지도 사기당한 정부...유족측 尹에 보낸 울분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2022.06.06 00:28

업데이트 2022.06.0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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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오늘 6일은 제67회 현충일이다. 오전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현충일 추념식이 엄숙하게 거행될 것이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나 언급한 윤 대통령은 자유를 지키려다 산화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추모 및 선양 의지를 앞선 정부보다 더 강하게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는 당시 집권당 일각에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북한의 소행인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가 논란이 됐다. 천안함 폭침으로 막내아들 고 민평기 상사를 잃은 윤청자(79)씨가 2020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당시 문 대통령에게 직접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고 호소했을 정도였다.

가짜 유족에 속아 현충원 묘 멸실
윤 대통령에게 '현충일 호소 편지'
부부합장묘 조성, 훈장 격상 제안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 생전 모습.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임명됐고, 안중근 의거를 물심양면 지원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 생전 모습. 상하이 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임명됐고, 안중근 의거를 물심양면 지원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8·15 광복, 6·25전쟁,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제대로 기리고 유지를 선양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에 여전히 강한 의구심이 들게 하는 사례가 있다.

2020년 3월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 폭침 도발 당시 아들을 잃은 윤청자 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김정숙 여사가 유족을 쳐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 폭침 도발 당시 아들을 잃은 윤청자 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김정숙 여사가 유족을 쳐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지난달 25일 유족 등의 뜻을 담아 대통령실로 공문을 발송했다. 거기엔 문영숙 이사장의 편지와 함께 두 가지 요청 사항이 포함됐다. 첫째는 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번 자리에 있다가 멸실된 최재형(1860~1920) 선생의 묘를 복원하자는 제안이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 선생의 옛집에서 유품과 흙을 가져오고,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키르기스스탄 정부의 협조를 받아 수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있는 부인(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유해를 모셔와 합장하자는 거다.
 둘째 제안은 1962년 정부가 최 선생께 건국 훈장 3등급(현 독립장)을 추서했는데, 당시에는 심사 대상에서 빠졌던 동의회(同義會)·권업회(勸業會)·독립단 활동 등을 두루 반영해 1등급(대한민국장)으로 상향하자는 것이다. 문 정부 때는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가 아니라 청와대 자체 결정으로 홍범도 장군과 유관순 열사에게 기존 훈장과 별도로 대한민국장을 추서한 전례가 있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왼쪽 둘째) 이사장이 지난달 12일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실을 방문해 최재형 선생 묘 복원과 독립 훈장 승격 방안을 상의했다.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있는 최재형 선생 부인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이원재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왼쪽 끝)와 최재형 홍보대사인 안병학 한나래 인터내셔널 대표도 자리를 함께 했다. 장세정 기자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왼쪽 둘째) 이사장이 지난달 12일 윤봉길 의사 장손녀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실을 방문해 최재형 선생 묘 복원과 독립 훈장 승격 방안을 상의했다. 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있는 최재형 선생 부인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이원재 주 키르기스스탄 대사(왼쪽 끝)와 최재형 홍보대사인 안병학 한나래 인터내셔널 대표도 자리를 함께 했다. 장세정 기자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가 유족의 뜻을 담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 [사진 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가 유족의 뜻을 담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공문. [사진 문영숙]

 조선시대 노비였던 아버지, 기생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굶주림에 시달리다 연해주로 건너가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한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누구인가. 1908년 최 선생은 안중근 의사, 이위종 헤이그 특사 등과 함께 해외 최초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했다. 1909년 안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1911년 연해주에 설립한 한인 자치 및 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 초대 회장을 맡았는데, 당시 부회장이 홍범도였다.
 1919년 3월 17일 연해주에 설립된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으로 활약했고, 그해 4월 11일 출범한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장관)에 임명됐다. 대동공보를 발행해 항일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한인 마을마다 민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였다. 나라를 잃고 연해주를 떠돌던 동포들은 그를 '따뜻한 난로(페치카)'라며 칭송했다.

1908년 해외 최초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한 최재형 선생과 이범윤·이위종·안중근. [중앙포토]

1908년 해외 최초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한 최재형 선생과 이범윤·이위종·안중근. [중앙포토]

 최 선생을 가장 위험한 항일 지도자로 분류해 제거하려고 혈안이던 일제는 1920년 4월 연해주를 침략해 최 선생을 총살하고 안중근 의사의 경우처럼 유해를 은닉했다. 백범 김구는 해방 이후 서울 효창공원에 '삼의사(윤봉길·이봉창·백정기) 묘'를 조성하면서 그 옆에 유해를 찾을 때를 기다리겠다며 안 의사 가묘(假墓)를 만들었다.

 현충원에 있던 묘소조차 멸실된 최 선생은 가묘라도 반듯하게 갖춘 안 의사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이런 민망한 상상을 하는 데는 기묘한 사연이 있다. 냉전시대 소련과의 왕래가 불가능했던 점을 이용한 가짜 후손 최모씨(1984년 사망)가 1970년 11월 최 선생의 묘를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쓰는 '묘지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국방부 및 산하 서울국립묘지관리소(현 서울현충원), 그리고 원호처(현 국가보훈처)는 몰랐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발렌틴이 2006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모역(108번)에 조성된 최 선생 가묘를 참배하는 모습. 옛 소련 땅에 흩어져 살던 유족은 1990년 한-소 수교 이후에야 처음 방한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발렌틴이 2006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모역(108번)에 조성된 최 선생 가묘를 참배하는 모습. 옛 소련 땅에 흩어져 살던 유족은 1990년 한-소 수교 이후에야 처음 방한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문서에 최재형 선생의 묘가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문서에 최재형 선생의 묘가 애국지사묘역 108호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발렌틴이 2009년 재차 서울현충원 묘역을 참배하러 갔으나 가묘가 사라져 망연자실한 모습. 가짜 후손이 1970년에 만든 가묘를 국방부 산하 서울현충원이 멸실처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자리는 빈터로 남아 있어 유족과 기념사업회는 최 선생 부부합장묘 조성을 희망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발렌틴이 2009년 재차 서울현충원 묘역을 참배하러 갔으나 가묘가 사라져 망연자실한 모습. 가짜 후손이 1970년에 만든 가묘를 국방부 산하 서울현충원이 멸실처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자리는 빈터로 남아 있어 유족과 기념사업회는 최 선생 부부합장묘 조성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소 수교 이후 1995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최 선생의 진짜 유족(막내딸 최 엘리자베타)이 2005년 문제를 제기하자 국가보훈처는 2009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뒤늦게 기존 국내 유족이 가짜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런 우여곡절 때문에 최 선생의 묘지 자리는 지금도 현충원에 빈터로 남아 있다.
 묘지 복원과 훈격 상향을 위한 국민 서명운동를 시작한 문영숙 이사장은 "진짜 후손에겐 연락도 없이 기존 현충원 묘를 멸실 처리한 것은 최 선생을 독립운동사에서 지운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제라도 현충원 108번 묫자리를 최 선생 부부 합장묘로 복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어떤 답신을 보낼지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묵념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묵념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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