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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1500편 찍은 뮤비 감독, 알렉사 콕 집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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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K콘텐트 세계로 간다 ④

ZB레이블 김준홍 대표는 20년 넘게 뮤직비디오를 찍어온 ‘K팝통’이다. 인디밴드 영상으로 일을 시작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취미인 그는 ‘B급 감성’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다양성’의 집약체인 알렉사를 제작한 그는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걸 늘 꿈꾼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ZB레이블 김준홍 대표는 20년 넘게 뮤직비디오를 찍어온 ‘K팝통’이다. 인디밴드 영상으로 일을 시작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취미인 그는 ‘B급 감성’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다양성’의 집약체인 알렉사를 제작한 그는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걸 늘 꿈꾼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우연히 영상편집 감독이 가능성을 발견하고 ‘비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팀이 만들고 키웠다. ‘K팝 종주국’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떴다. 지난달 10일 미국 NBC ‘아메리칸 송 콘테스트(ASC)’에서 K팝 공연으로 우승한 알렉사(AleXa)는 알려진 대로 국내 신생 기획사 ZB 레이블 김준홍(47) 대표가 발굴, 기획한 아티스트다. ‘K팝 춤을 잘 춘다’는 걸 빼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던 알렉사를 뽑은 김 대표의 눈은 ASC 우승으로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20년 넘게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일했다. K팝 1세대부터 최근 BTS까지 봐온 ‘K팝통(通)’이다. 서태지, HOT, 신화,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오마이걸, 우주소녀, 여자친구, (여자)아이들, 마마무, 화사, 환불원정대 등 20년간 찍은 뮤직비디오가 1500편이 넘는다. BTS와는 첫 뮤비 ‘노 모어 드림’부터 작업했고, 최근 미국 일정 관련 영상 콘텐트를 담당한다.

김 대표는 20년간 겪은 아티스트 가운데 알렉사·지코·현아를 ‘매력 톱3’라고 했다. 그가 직접 아티스트 제작에 뛰어든 계기도 알렉사다. 지난달 24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멋있는 뮤비 만들어 갖다 바치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IP(지적재산)를 갖고 싶었다”라며 “그간 뮤비를 찍으며 생각한 모든 걸 알렉사에 녹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메리칸 송 콘테스트 우승곡 ‘원더랜드’ 뮤직 비디오 일부. [유튜브 ‘AleXa-ZB Labels’ 캡처]

아메리칸 송 콘테스트 우승곡 ‘원더랜드’ 뮤직 비디오 일부. [유튜브 ‘AleXa-ZB Labels’ 캡처]

ZB레이블은 영상 제작사 ‘쟈니브로스’ 산하 회사다.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일한다. 대표와 이사를 뺀 4명은 독일, 중국, 칠레, 스웨덴 출신의 K팝 팬들이다. 알렉사를 밀착 관리하는 안젤리나 포스(35)는 스웨덴인이다. 대학에서 국제통상을 전공하고 K팝이 좋아 무작정 한국에 유학 왔다. 엔터 업계에서 일했다. 김 대표는 “우린 전문가가 없고, ‘팬’의 눈으로 알렉사를 만든다”며 “BTS의 빅히트가 매니지먼트 직원이 아닌 작가를 뽑는 색다른 행보로 성공의 첫 단추를 끼웠듯, 우리 경쟁력도 ‘다름’”이라고 말했다.

“BTS가 한다고 따라 하는 게 K팝의 성공 방정식이 아니다”라는 그는 ‘현지화’와 ‘맞춤형’을 강조했다. ASC를 준비하며 유로비전의 역사를 공부하고, 소셜미디어(SNS) 마케팅도 별도로 연구했다. 미국식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틱톡 챌린지를 내세워 홍보했다. 앞으로 홍보 일정도 색다르다. 뉴욕의 야외 페스티벌 ‘서머 스테이지’, 워싱턴 만화 축제 ‘오타콘’ 등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 얼굴을 비칠 계획이다. 영어 소통이 자유로운 ‘미국인’ K팝 아티스트의 이점을 살릴 계획이다.

‘알렉사’는 본명인 ‘알렉산드라’의 약칭인데, 아마존 인공지능(AI) 스피커 이름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그런 느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말했다. 데뷔 초부터 메타버스, 게임 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영국 메타버스 기술업체 임프로버블과 계약한 것도 메타버스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ZB레이블의 뿌리, ‘쟈니브로스’의 ‘쟈니’는 광대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회사 이름이 무슨 픽처스, 무슨 미디어, 이런 거면 너무 재미없어 지은 건데, 이름 따라가나 보다. 재밌는 걸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2001년 회사를 세웠고, 지난해가 20주년이었다.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 94학번인 그는 듀스 뮤직비디오에 마음이 움직여 진로를 정했다. 그는 “음악이 착착 붙고, 춤과 싱크가 딱딱 맞는 게 너무 재밌어 보였고,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졸업 직후 학교 동기 홍원기 감독과 100만원씩 모아 홍 감독 자취방에 회사를 차렸다. 150만원으로 컴퓨터를 사고, 50만원으로 회사 봉투와 명함을 만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이들은 인디밴드 뮤비를 무료로 찍어주며 입소문을 탔다. 서태지 뮤비를 찍으며 본격적으로 K팝 업계에 들어왔다.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직접 촬영하러 다니는 현역 감독이다.

김 대표는 “다음 세대 K팝”을 많이 언급했다. 이번 ASC에서 우승한 알렉사는 미국인이고, 노래를 만든 사람도 모두 외국인, 가사도 몇 마디 한국어를 빼고는 모두 영어다. 그런데도 그 안에 들어 있는 ‘K팝’ 정체성을 강조했다. 외국인 K팝 아티스트를 키우며 문화 충돌도 겪었다는 그는 “안 어울리는 K팝을 무작정 입히니 어색해 보였다. 아티스트에게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K팝을 입히면 된다”고 충돌 피하는 방법을 귀띔했다.

김 대표는 “HOT ‘캔디’, 소녀시대 ‘지(Gee)’ 처럼 온 국민이 다 아는 노래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며 “앞으로 K팝은 ‘팬덤’ 문화가 아니라 ‘유행가’가 돼야 한다. ‘강남스타일’이 이뤄낸 방향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미국 사람들 귀에 편한 멜로디가 주축인데, 알렉사 노래가 팝이냐 K팝이냐는 듣는 사람 판단에 맡기는 게 맞다”며 “K팝도 힙합처럼 팝의 한 장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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