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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 대 친문' 내전 뚝 끊겼다…이재명의 침묵 노림수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친문(親文) 대 친명(親明) 그룹 간 내전으로 치닫는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 책임 공방이 5일 잠시 소강국면을 맞았다. 지방선거 패배 다음날인 2일과 국회의원ㆍ당무위원 연석회의가 열린 3일 친문그룹과 친낙(친이낙연)그룹은 일제히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했고, 4일 “이재명 죽이기”라는 친명그룹의 반격이 이어졌지만 공방은 이날 뚝 끊겼다.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쉼표를 만든 건 이재명 의원의 침묵이었다. 이 의원은 보궐선거 당선이 확실시되던 1일 밤 12시 무렵 계양을 선거사무소에 등장해 “어쨌든 전체 선거가 예상됐던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국민들의 이 따가운 질책과 이 엄중한 경고를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잘 받들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4일째 공개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예정됐던 내주 초 방송 출연 일정도 다 취소했다고 한다. 계파색이 엷은 수도권 재선 의원은 “친문 진영의 공세는 이 의원의 8월 당권 도전 명분을 침식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인데 당사자가 반응하지 않으니 더 이상 때리기도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의 아웃복싱…노림수는 

친문 중진인 전해철 의원(왼쪽)과 홍영표 의원(오른쪽)은 앞다퉈 이재명 의원의 2선 후퇴를 압박하고 있다. [뉴스1]

친문 중진인 전해철 의원(왼쪽)과 홍영표 의원(오른쪽)은 앞다퉈 이재명 의원의 2선 후퇴를 압박하고 있다. [뉴스1]

선거 패배 직후 친문그룹의 ‘이재명 책임론’ 쇄도에 맞서는 친명그룹의 대응은 이 의원의 침묵과 맞물려 살짝 치고 빠지는 ‘아웃 복싱’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이 의원의 측근인 김남국 의원은 전날 연석회의 대해 “오로지 네 탓 타령만 가득했다. 반성보다 당권에 대한 사심이 가득해 보였다”는 인상평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면서 “민주당 쇄신 의지가 아니라 계파의 이익이 먼저인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호남의 친명파인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좀 잔인한 게 아닌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자기 당 동지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니 말이다”라며 “경쟁자를 죽이겠다고 덤비는 심보는 제발 아니기를”이라고 반응했다.

2일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홍영표 의원)라거나 3일 “이 의원과 송 전 대표를 인천 계양을과 서울시장에 공천하는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일부 의원의 연석회의 주장)는 등의 친문ㆍ친낙 그룹의 공세에 비하면 수위가 현저히 낮은 대응이었다. 친명그룹에 속하는 한 초선 의원은 “대거리를 하면 둘 다 명분을 잃고 감정의 골만 팰 뿐”이라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의원을 비롯한 그룹 내부의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친명그룹의 다선 의원은 “권력의 곁불만 쬐다 정권을 말아먹은 장본인들이 책임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면서도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제 공격에 나선 친문그룹은 이 의원의 침묵과 그 주변의 아웃 복싱에 스텝이 꼬인 모양새다. 친문그룹의 한 재선 의원은 “언론이 ‘이재명 책임론’을 마치 당내 기득권을 둘러싼 계파 투쟁으로 몰고 가면서 여론 지형이 오히려 패배 책임자인 이 의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침묵에도 주변선 “당권 도전은 상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실이 들어설 의원회관 818호. 직전까지 송영길 전 대표가 쓰던 방이다. 이 의원은 연휴 기간 의원회관 이사를 마치고 보좌관 인선 작업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의정활동 채비에 나섰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실이 들어설 의원회관 818호. 직전까지 송영길 전 대표가 쓰던 방이다. 이 의원은 연휴 기간 의원회관 이사를 마치고 보좌관 인선 작업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의정활동 채비에 나섰다. 연합뉴스

본인의 침묵에도 이 의원의 8월 당권 도전은 계파를 불문하고 상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친문그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침묵은 굳이 당권을 잡고야 말겠다는 욕심의 표현”이라고 말했고, 친명그룹의 핵심인사도 “당권 도전은 이미 지방선거 전에 정리된 것”라고 말했다. 친명계 의원의 한 보좌관은 “친명계 의원 중에도 일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는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당권 도전을 만류하는 이도 있지만 소수일 뿐”이라고 전했다.

친명계 주변에선 이미 당권 도전 여부보다는 ‘확실한 당선’을 위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경파인 정청래·김용민 의원 4일 일제히 공개적으로 “전당대회에서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투표의 반영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꺼냈다. 현재 전국 대의원 45%,권리당원 40%,일반국민 여론조사 10%,일반당원 여론조사 5%를 합산해 순위를 매기는 전당대회 본 경선 방식을 지난 4월 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대의원 20%, 권리당원 45%, 일반당원 5%, 국민여론조사 30%로 변경하자는 주장이다. 친명계 초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권리당원의 엄청난 지지를 받아도 대의원 투표 결과에 따라 낙선할 수 있는 구조”라며 “혁신추진위의 발표대로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명계의 이런 주장이 순순히 먹힐 것 같진 않다. 친문그룹에 속한 재선 의원은 “안 그대로 강성 권리당원들의 여론에 휩쓸리는 게 민주당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권리당원 투표의 반영 비율을 높이는 건 특정인 당선을 위한 무리수”라고 반박했다.

한편 민주당은 조만간 의원총회를 열어 지난 3일 의결된 ‘혁신형 비대위’ 구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계파색이 엷은 유인태·이광재 전 의원과 이상민 의원 등이 새 비대위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당내에선 “계파 싸움 한복판에 들어와 실권도 없는 두달짜리 비대위원장을 누가 맡겠냐”는 회의적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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