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50년지기' 승효상 "용산 집무실, 외국서 韓수준 슬프게 볼 듯"

중앙일보

입력 2022.06.04 10:00

업데이트 2022.06.04 19:08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이 한창일 땐) 무슨 얘길 하든 이용 당하기 싫었다. 편의대로 갖다 쓰는 게 언론·정치권력 습성이니 부화뇌동하기 싫었고…”


승효상(70·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한국 현대 건축의 2세대 대표주자다. 대한민국 공공 건축 정책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문재인 정부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등을 맡아 십여년 간 ‘서울로 7017’, ‘세운상가 리모델링’,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등 서울시 공공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용산공원 설계’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그는 ‘양산 사저’를 설계하기도 했다.

승효상(70)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승효상(70)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승 대표는 재작년 박원순 전 시장 유고 상황에서 시작된 광화문 광장 공사 강행의 배후로 의심받았다. 올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땐 “청와대 용산·한강 변 이전”을 언급했던 그의 2016년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대통령 집무실 앞 용산공원 설계도 새 정부와 조율이 필요해졌다. 승 대표를 최근 서울 대학로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보이스]

‘50년 지기’ 친구 문재인 사저, 특히 신경 쓴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하루 뒤인 지난 달 10일 경남 양산 사저에 입주했다. 사저는 50년 지기 친구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하루 뒤인 지난 달 10일 경남 양산 사저에 입주했다. 사저는 50년 지기 친구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 연합뉴스

양산 사저 설계했다. 특별한 주문 있었나.
(쓸) 돈이 별로 없어서 애를 먹긴 했는데…“(지을 공간이) 언덕 위에 있으니 햇빛 잘 들고, 바람 잘 통하게만 해 달라”고 했다. 근처 불보(佛寶) 사찰인 통도사 가람배치(伽藍配置) 구조가 절묘하고 좋아서 그걸 가져와 설계했다. 문 전 대통령이 양산에 온 날, 통도사 주지 스님이 “이 집이 통도사 말사(末寺)입니다”라고 말하니 (문 전 대통령이) 매우 좋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사저에 만족해하던가.
“수고했다”는데…살아보면 알겠지. 뭐(웃음)
사저 설계 두고 혹평도 있던데.
언론의 무지를 절감했다. 기사에서 “책을 뒤집어엎은 모양”, “파스텔 톤”, 심지어 “바스티유 감옥 같다”더라. 비하인지 모르겠는데, ‘박공지붕에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내지 복층 건물’이 정확한 표현이다. 파스텔 톤은 쓴 적이 없고, 책을 뒤집어 놓으면 꼭 그런 형태인가. 바스티유 감옥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고…. 웃고 말았다.

“청와대 용산·한강 변 이전 주장, 의도와 달랐다”

승 대표는 ‘용산 공원’ 설계자다. 10년 전 용산공원 국제 설계 공모에 당선돼 현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공원 앞 대통령실’이란 변수를 만났다. 설계 변경 등 고민이 많을 법한데, 그는 집무실 이전을 두고 신·구 권력이 각을 세울 때부터 지금까지 침묵했다. 이 와중에 “청와대 용산·한강 변 이전”을 주장했던 과거 그의 인터뷰가 회자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진행된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네덜란드), '이로재' 등 5개 컨소시엄이 낸 'HEALING : THE FUTURE PARK(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 설계안이 당선돼 2018년 공개됐다. 용산공원 홈페이지

지난 2012년 진행된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West 8'(네덜란드), '이로재' 등 5개 컨소시엄이 낸 'HEALING : THE FUTURE PARK(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 설계안이 당선돼 2018년 공개됐다. 용산공원 홈페이지

‘대통령실 이전’ 논의가 한창일 땐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땐 무슨 얘길 하든 편의대로 갖다 쓸 거니까, 이용당하기 싫었다. 어느 편에 서든,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마음대로 갖다 쓰는 게 언론과 정치권력 습성이니까. 부화뇌동하기 싫었고, 그 소용돌이를 더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일에 가담하기도 싫었고.
‘용산·한강 변 청와대 이전’ 주장이 최근 회자했다.
의도와 달리 보도됐다. ‘용산이든, 한강 변이든 좀 생각해보고 하자’는 얘기였지, 그 장소가 딱히 좋다고 말한 게 아니다. 과거 용산 공원 관련해 ‘국방부를 옮겨 달라’고 중앙일보에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왔으니 마찬가지 꼴이다. 개인적으로 세종시를 지금처럼 비효율적으로 놔둘 거면, 청와대도 (세종시로) 옮기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이게 여의치 않으면 청와대 대신 경복궁 등을 쓰면 좋겠다. 이게 ‘민속 박물관을 쓰자’는 말로 와전(訛傳)됐다. 쓸 수 있다면 경회루, 근정전 등이 ‘엘리제 궁’, ‘버킹엄 궁’처럼 외신에 나가면 얼마나 아름답겠나. 보존도 잘 될 거고, 국격에도 맞다고 본다.
경복궁은 ‘구중궁궐’ 비판받던 청와대와 비슷한 위치인데.
(언덕) 위에 있는 게 부담스러우니 내려오자고 주장했다. 건물 자체도 나쁜 건물 같으니 문을 열고 시민들이 다 둘러보게 하란 거였다. 특히 청와대 관저는 참 나쁜 건물이다. 통기(通氣)가 안 된다. 전엔 심지어 보안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강제로 환기했다고 한다. 내부는 중복도(中複道·건물 중앙에 복도가 있는 건축 형식)다. 항상 불을 켜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그래서 살지 말고 나와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 5년 동안 그런 데서 살면 사람이 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 건물, 창의성 나올지 의문”

윤 대통령은 집무실 옮기면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나쁜 공간은 바꿔야 한다. 그러나 중지(衆智)를 모아서 시간을 두고 논의했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을 거라고 본다. 그런 과정이 아쉽다. 너무 조급했다.
집무실 이전, 어떤 점에서 구체적으로 아쉬웠나.
두 가지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 건물이 문제다. ‘소비에트 리얼리즘 아류(亞流)’ 같다. 세계 10위 대한민국 위상에 안 맞는 건물 이미지다. 좋은 인상을 안 준다. 외신에 건물이 나오면, 한국 수준을 굉장히 슬프게 생각할 것 같다. 그게 제일 우려된다. 둘째는 내부다. 예전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명령하달 체계에 익숙한 공간 구조다. 창의성이 나올 공간인지 의문이다. 그 영향은 서서히 나타날 거라 본다. 업무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 나라 운명과 관계된 일이라 걱정이다. 관저는 물론, 집무실도 새로 짓고, 용산 공원과의 관계도 살펴서 큰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한다. 땅 오염 조사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용산에 있어야 한다'라면 (용산 내) 다른 위치로 옮겨갈 수도 있고. 그게 합당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 건물로 쓰이고 있는 옛 국방부 청사에 대해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아류 같은 건물"이라며 "관저는 물론 집무실 건물도 용산공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새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David Pujado

건축가 승효상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 건물로 쓰이고 있는 옛 국방부 청사에 대해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아류 같은 건물"이라며 "관저는 물론 집무실 건물도 용산공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새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David Pujado

긍정적인 면은.
‘정교한 프로그램을 짜서 (청와대를) 개방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개방 그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언덕 위 권부(權府)와 아래쪽 민중, 지배와 피지배 계급이란 대결 구도를 와해시켰다. 청와대를 민중의 공간으로 채운 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다. 이제 청와대를 옮겼으니 광화문에 모여 데모도 안 할 테고.
‘대통령실 이전’, 용산 공원 설계에 큰 변수가 될까.
큰 변수가 생겼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시설(대통령 집무실)이 등장했으니…물론 집무실이 옛 국방부 영내에 있으니 설계 자체가 바뀌진 않겠지만, 현 정부가 집무실 부근 공원을 단계적으로 개방한다니 고민이 크다. 현재 용산 공원 설계는 지하 지질·시설 조사를 하나도 못했다. 지상 설계도 마스터플랜만 그럴듯하게 1차로 한 완전한 설계가 아니다. 최종안이 아니다. 지하를 조사하면 설계를 바꿀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설계했다. 최근 캠프킴 9m 지하에서 발암 물질이 나왔다고 한다. 공원에 오염된 부분이 더 있다면, 땅을 치환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토지반환 7년 후 공원 조성 완료’를 목표로 한다지만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국토부에서 어떤 지침을 줄지 잘 모르겠다. 생전에 공원을 완성 못 할 수도 있지만, 평생 과업이자, 사명으로 생각하고 충실히 작업할 생각이다.

광화문 광장과 “노욕(老慾)”

올해 7월 새단장을 앞둔 광화문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은 이른바 '편측광장'으로 탈바꿈한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 만든 '중앙광장' 형태 광화문 광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연합뉴스

올해 7월 새단장을 앞둔 광화문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은 이른바 '편측광장'으로 탈바꿈한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 만든 '중앙광장' 형태 광화문 광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연합뉴스

2018년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설계 공모를 냈다. 승 대표가 공모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2009년 광장 조성 당시, 여론조사에서 ‘중앙 광장’ 안에 밀렸던 ‘편측 광장’(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은 광장) 안을 기본 틀로 삼아 심사했고 비슷한 안이 뽑혔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시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네 달 뒤, 시장 대행이 ‘편측 광장’으로 공사를 강행했다. 새 시장을 뽑기 다섯 달 전이었다. 공사 중인 광화문 광장은 승 대표가 지금껏 주장했던 그 형태일까.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한 건축가의 노욕(老慾)으로 (공사 강행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라며 승 대표를 공사 강행 배후로 지목했다.

재작년 광화문 광장 공사 강행 배후로 지목됐다.
(내게) 물어본 적도 없다. 내 말을 오해했든, 무시했든 대행 체제에서 (공사를 시작) 했다. 난 광화문 광장을 개·폐형 볼라드 시스템으로 광장을 만들자고 한 건데, 그렇게 (광장) 공사를 하고 있다. 오 시장이 “노욕(老慾)”이라고 했는데, 그건 큰 오해다. 다만 중앙 광장 형태를 ‘편측 광장’으로 바꾸는 건 기능적으로도 옳다.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광장이다. 본래 ‘광장’ 의미와 거리가 멀다. 행사가 열리면 한쪽만 차를 다니게 한다. 결국 편측 광장으로 바뀌지 않나. 중앙 광장을 주장할 이유가 없다. 아무튼 오 시장이 ‘월대(月臺·궁궐 앞에 한층 높게 단을 쌓아 올린 공간)’도 복원하겠다니 원래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가까워져 다행스럽기도 하고…
“노욕(老慾)” 등 비판이 억울했나. 
억울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박원순 시장 때나, 대행 체제 때도 억울했다. 여러 시민단체가 내 이름을 들먹이며 대안도 없이 반대했다. 불만이 있었다면 나를 불러서 ‘도대체 하려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어야지. (논의가) 부족했다면 이야기를 더 듣고, 더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본질을 알면 반대할 게 아닌데, 못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광화문 광장과 국가의 정축(正軸)

승효상 대표는 "북악산-관악산-경복궁-육조거리-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축이 바른 축"이라며 "육조거리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진 길은 관념상의 직선으로 우리가 말하는 일직선 개념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양도성도. 리움미술관

승효상 대표는 "북악산-관악산-경복궁-육조거리-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축이 바른 축"이라며 "육조거리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진 길은 관념상의 직선으로 우리가 말하는 일직선 개념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양도성도. 리움미술관

오래전부터 ‘편측 광장’을 주장했던 이유는. 
정도전이 한양 천도를 결정했을 때, ‘북악산-관악산’ 축 선상에 경복궁이 있었다. 그 축을 따라가면 한양도성 끝에 남대문이 있다. 그게 바른 축이다. 지금 세종대로는 휘어져 있다. 본래 육조(六曹) 거리를 복원하려면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붙여야 한다. 근데 그걸 ‘편측’으로 깎아내리면서 중앙 광장이 생겼다. 그래서 당시 “세계 최대의 중앙 분리대지, 무슨 광장이냐”고 쏘아붙이니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분 나빴겠지. 그래서 박원순 시장 시절, 이걸 고치자고 했다. 근데 내가 바라던 건 지금 공사 중인 ‘편측 광장’ 형태가 아니다. 내가 말한 건 ‘전면 보행화’ 광장이다. 인도·차도 구분 없이 한 가지 재료로 땅을 깔아야 한다. 개·폐형 볼라드(bollard)를 박고 시간대별로 필요에 따라 오전엔 차가 다니고, 오후엔 사람만 다니게 할 수 있는 유연한 광장을 만들자고 했다.
옛 지도에도 ‘경복궁-남대문’에 이르는 구간은 휘어져 있던데. 
흔히 생각하는 직선은 ‘일직선’ 개념이다. 하지만 옛날엔 같은 선상에 놓인 선을 모두 ‘직선’ 개념으로 파악했다. 창덕궁을 그린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림에선 모든 건물이 직교(두 선이 만나 이루는 직각)하듯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 보면 ‘사다리꼴’, ‘평행사변형’ 등 지형에 따라 각이 어긋나 있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를 ‘직교’ 건물로 인식했다. 따라서 옛날 지도상에 북악산-경복궁-육조거리-남대문으로 이어진 축은 서양의 현대 과학 개념으로 보면 휘어진 게 맞지만, 관념상의 직선으로 보는 게 맞다.
승효상 대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현 세종대로가 미 대사관쪽으로 편의상 넓어져 과거보다 이 길이 더 휘어졌다"며 "역사성을 고려해 정축에 가까운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은 광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효상 대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현 세종대로가 미 대사관쪽으로 편의상 넓어져 과거보다 이 길이 더 휘어졌다"며 "역사성을 고려해 정축에 가까운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은 광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 휘어졌던 거라면, “일제가 이 축을 틀어 훼손했다”는 주장은 틀린 게 되지 않나.
옛 육조 거리는 지금보다 좁았을 테고, 원래도 황토현(黃土峴)에 가로막혀 경복궁-남대문까지 직선으로 연결이 안 됐다. 다만 현재 세종대로는 일본 강점기를 거쳐 미국 대사관 쪽으로 편의상 지속해서 넓혔다. 그래서 경복궁-육조거리-남대문에 이르는 길이 더 휘었다. 역사성을 고려하면 광장은 축 선상에 가까운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고, 차도를 낼 거면 미국 대사관 쪽으로 내는 게 더 맞다. 상권 등 도시 활성화를 위해서도 그게 적절하다.
풍수설 등에 입각한 ‘정축’(북악산-관악산)이 “근거 없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 내용을 다 찾아본 건 아니니 풍수상의 근거가 없을 수도 있지. 다만 경복궁-육조 거리로 이어지는 이 축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관념’ 상의 ‘정축’ 아닌가. 여기에 기반 두고 광화문 광장 위치를 바로잡자고 말했을 뿐이다.

“빈자(貧者)의 미학이 ‘(돈)번’ 자의 미학이냐”

옛 금호동. Local breathe

옛 금호동. Local breathe

승효상 건축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빈자의 미학’이다. 우연히 본 금호동 ‘달동네’를 건축 미학의 원형으로 삼았다. 유년 시절 나고 자란 피난민촌과 흡사했다. 건축가가 만들 수 없는 절묘한 공간구조에 반했다고 했다. 그는 ‘빈자의 미학’에 대해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미학이 아닌, 가난할 줄 아는 사람, 돈이 있어도 절제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라고 했다.

‘빈자의 미학’ 개념이 다소 추상적인데, 쉽게 보면 ‘가난’을 이용한 건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난 건축가다. 사회사업가가 아니다. 가난을 구제하는 게 내 직업이 아니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일을 의뢰해야 일할 수 있는데, 건축주에게 ‘돈의 크기대로 살지 말고 절제하며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건 내 직업상 대단히 선한 일이다.
‘빈자의 미학’ 두고 ‘디테일 부족’을 비판하기도 한다.
여러 오해가 있는 걸 안다. ‘빈자의 미학이 ‘(돈)번’ 자의 미학이냐’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 속이 굉장히 많이 ‘빈’ 사람의 말이라 생각한다. ‘디테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괜한 이야기다. 네 가지 실천 방법론이 있다. 공간을 완전히 채우지 않고, 불확정적으로 비워서 주체적으로 쓰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구체적인 문제의식 없이, 추상적·현학적으로 읊조리는 건 건축이 아니다. 건축은 항상 현실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

독재 정치와 건축가

1세대 한국의 대표 건축가이자 '공간'을 설립한 김수근은 승효상의 스승이다. 승효상 대표는 김수근 사후 "김수근보다 더 김수근적 건축을 할 수 있다"며 '공간'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지만, 방황 끝에 '공간'을 그만두며 독립했다.

1세대 한국의 대표 건축가이자 '공간'을 설립한 김수근은 승효상의 스승이다. 승효상 대표는 김수근 사후 "김수근보다 더 김수근적 건축을 할 수 있다"며 '공간'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지만, 방황 끝에 '공간'을 그만두며 독립했다.

‘공간’ 건축사무소 설립자이자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은 승효상의 스승이다. 김수근은 잠실 서울올림픽 주 경기장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에 남을 굵직한 건축을 도맡았다. 그런 그가 1986년 돌연 세상을 떠났다. 방황하던 제자 승 대표는 결국 ‘공간’을 나왔다. 그는 “건축을 ‘오브제’쯤으로 여긴 그 시절, “비어있는 공간에 건축의 본질이 있다”고 한 김수근의 가르침은 엄청난 가치였다”고 했다. 대학을 다니며 유신 독재를 겪은 승 대표는 “사회 도피 수단으로 건축에 몰두할 수 있던 것도 ‘김수근 건축’ 때문”이라고 했다.

독재를 싫어했지만, 스승 김수근은 박정희 시절 큰 활약 했다.
1974년 ‘공간’에 들어갔다. 첫 프로젝트가 ‘광복 30주년 종합 전시관’을 짓는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홍보였다. 그렇게 욕했던 박정희를 홍보하려니 당황했다. 그래서 ‘(공간을) 못 다니겠구나’ 생각했는데, 한 선배가 “이것도 못 이겨내면 앞으로 어떻게 건축을 하느냐”고 말해 계속 다녔다. 스스로 엄청 학대하며 작업했다. 완전히 투항했다. 김수근 선생이 그 꼴을 보더니 다음부터 ‘관(官)’에 관련된 일을 하나도 안 시켰다. 성당·박물관·교회 같은 건축만 시켰다.
김수근 건축가와 김종필 당시 총리. 승효상 대표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알리는 '광복 30주년 종합전시관'을 짓는 일에 참여했다.

김수근 건축가와 김종필 당시 총리. 승효상 대표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알리는 '광복 30주년 종합전시관'을 짓는 일에 참여했다.

김수근은 박정희에게 우호적이었나.
김수근 선생은 국회의사당 현상 공모로 데뷔했다. 당시 김종필 총리 눈에 띄어 제3공화국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거의 다 했다. 엄청난 협력자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늘 마음속에 박정희에 대한 적개심과 반항심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건축을 ‘박조건축(朴朝建築)’이라며 냉소하고 비하했다. 당신도 이중적인 갈등이 있던 것 같다.
어쨌든 박정희에 협력했던 김수근 문하로 가는 게 싫지 않았나.
그렇게 데모를 했는데, 당연히 가기 싫었지. 원해서 간 것도 아니다. 여태껏 내가 원해서 인생이 결정된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공간’은 배울 게 많았다. 당대 문화계 인사들이 다 모였다. 정치 성향을 떠나 건축·문화적으로 배울 게 많은 ‘보고(寶庫)’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승효상은 비엔나로 ‘도피’유학을 떠났다. 스승이 불러 2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5공화국, ‘전두환의 세상’이 됐다. 박정희 시절 잘 나갔던 김수근과 ‘공간’도 부침을 겪었다. ‘김중업, 김수근 시대가 가고, 김석철, 김원 시대가 온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승 대표는 “업무차 청와대 비서실을 찾으니, 비서관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김수근 선생 욕부터 했다”라며 “김수근 선생이 굉장히 배척받고 ‘공간’사무실도 매우 어려워졌다”고 했다.

1984년 11월 8일자 중앙일보. '김중업, 김수근의 시대가 가고 김석철, 김원시대가 온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84년 11월 8일자 중앙일보. '김중업, 김수근의 시대가 가고 김석철, 김원시대가 온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건축은 정치 상황과 무관할 수 없던 것 같다.
건축은 시대 정황에 깊게 관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독재자들은 건축에 관심이 많다.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건축가를 꿈꿨던 히틀러는 비엔나 응용미술대학에 세 차례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입대했다. 이후 히틀러는 유능한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를 통해 자신을 신격화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철저한 독재자의 ‘도구’였다. 당대 뛰어난 건축가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근데 그걸 거부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게도 생사여탈이 달린 요구가 온다면, 거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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