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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중국에 묻는다…누가 전쟁 불길로 한반도 태우려 하나?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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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 제재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중국 유엔 대표부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 제재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중국 유엔 대표부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중국의 대북 제재 ‘딴지’

“미국은 합동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역내 관련 국가들과 군사 동맹을 강화했다. 이는 북핵 해결에 잘못된 영향을 미쳤다.…한반도 문제 해결은 누군가가 이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바둑판 돌로 활용하려 할 지에 달렸다.…누군가 다른 셈법으로 전쟁의 불길로 동북아를 태우고, 한반도를 태우려 한다면 중국은 선택의 여지 없이 단호하게 조치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응하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한 발언이다.

세 차례에 걸친 그의 장황한 발언 중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미국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했다.

북한이 지난 4월 열병식에서 공개한 ICBM. 뉴스1

북한이 지난 4월 열병식에서 공개한 ICBM. 뉴스1

지난 1일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를 지지할 것인지 묻자 “현 정세 하에서 제재 일변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위해 “(미국이)적당한 시기에 어떤 영역의 대북 제재를 취소하는 등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길 희망한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한다면 이번에는 한국을 노리는 전술핵 개발을 위한 핵탄두 소형화 성능 시험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오히려 제재를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중국이 이미 북핵 문제를 미‧중 대결의 일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뚜렷해지는 것은 중국이 이웃 국가인 한국의 안보 우려를 대놓고 경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채 한 달도 되기 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한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은 “현재 세계의 역경 속에서 중‧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상대방과 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있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협력을 내세우던 나라가 전쟁의 참화를 겪은 한국 국민이 뻔히 들을 걸 알면서 유엔에서 ‘전쟁의 불길’을 이야기한다. 그 전쟁에서 적군으로 참전해 우리 민족을 피 흘리게 했으면서 ‘단호한 조치’를 이야기한다.

2010년 인양 과정에서 바지선 위에 올려진 천안함. 중앙 포토

2010년 인양 과정에서 바지선 위에 올려진 천안함. 중앙 포토

70여 년 전 전쟁은 너무 오래된, 이제 다 지나간 역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10여 년 전 일은 어떤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꽃 같은 청년들이 서해에서 눈감았을 때조차도 양비론적 입장을 유지하며 사실상 북한을 감쌌던 중국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까.

당시에도 중국은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에 반대하며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안보리 조치는 의장성명 채택에 그쳤고, 그나마도 중국의 요청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북한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물타기성 조항’까지 들어갔다.

이런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중국이 우리와 ‘안보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거 이 질문에 긍정한 어느 대통령은 이른바 ‘사드 3불(不)’ 입장 표명을 통해 중국을 안심시키려 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른 대통령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중국은 주목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한‧중은 안보 우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라면 입장 차이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한 기고. 포린 어페어스 웹사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한 기고. 포린 어페어스 웹사이트

“새로운 한‧중 협력은 이런 (안보적 견해)차이가 경제적 (협력)사안들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었지만, 중국과 안보적 견해가 일치한다는 전제로 움직이는 ‘환상’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명확히 드러났다.

중국이 더 주목해야 할 건 한국 국민의 생각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매력 공세(charm offensive)가 정점을 찍었던 건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의 한국 국빈 방문 때였다. 그런데 당시 이와 관련해 묘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자료 아산정책연구원

자료 아산정책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이 시 주석의 방한 직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과 중국 중 협력을 강화해야 할 국가는 어느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미국을 택한 응답자는 59.6%로, 오차 범위 내이긴 했지만 앞선 3월 같은 질문을 했을 때(56.9%)보다 소폭 늘었다. 중국을 택한 응답자는 24.9%였는데, 앞선 3월 조사(29.4%)보다 오히려 줄었다.

3월 조사에선 미국을 택한 응답자가 중국을 택한 응답자보다 27.5%p 많았는데, 시 주석이 다녀간 뒤 그 차이가 34.7%p로 벌어졌다. 시 주석 방한 뒤 중국보다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되레 더 높아진 것이다. 또 한·미·일 안보 협력을 지지한다는 응답도 시 주석 방한 전보다 오히려 늘었고, 한·중 간 안보 협력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줄어들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사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큰 입장 변화가 없었는데, 국민이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반응한 셈이다.

지난 2014년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서울대 글로벌공학센터에서 강연했다. 중앙 포토

지난 2014년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서울대 글로벌공학센터에서 강연했다. 중앙 포토

이런 민족이다. “임진왜란 때 한‧중 양국 국민은 전쟁터로 함께 향했다”는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에 열광하면서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에 머리를 아홉 번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의 삼전도 굴욕도 잊지 않는다. 강한 경제력으로 괴롭히면 고통을 감수할지언정 중국이 말하는 ‘협력’과 ‘전쟁’ 모두를 주시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중국이 진심으로 한‧중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한국 국민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한다. ‘전쟁의 불길’ 같은 거친 단어로 한‧미 동맹 강화를 견제할 게 아니라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 국민의 우려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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