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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방 든 구씨는 어디로 갔을까…‘해석일지’ 재미 남긴 ‘해방일지’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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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장면의 구씨. 5만원권으로 가득 채운 돈가방을 든 채, 순한 얼굴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방송캡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장면의 구씨. 5만원권으로 가득 채운 돈가방을 든 채, 순한 얼굴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방송캡처]

‘나의 해방일지’(JTBC) 여운이 깁니다. 종영한 지 1주일이 다 돼 가는데도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선 여전히 결말에 대한 해석 열전이 펼져지고 있습니다.

작가(박해영)의 대표작 ‘나의 아저씨’(2018)와 달리 ‘나의 해방일지’는 완전히 열린 결말입니다.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주인공 미정(김지원)의 표정을 봐선 해피엔딩이 분명한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게 되는지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특히 미정을 추앙하는 남자, 그래서 미정이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라고 고백하게 만든 남자, 구씨(손석구)가 어떻게 됐는지는 더욱 오리무중이지요.

구씨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구씨.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가버린 현진이형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 전날 구씨는 현진이형 때문에 조직폭력배들과 한판 큰 싸움을 했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구해줬건만, 도박중독인 현진이형은 구씨를 배신하고 돈가방을 들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그에게 구씨는 “형, 환대할게”라고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서랍에서 5만원권 뭉치들을 잔뜩 꺼내 가방에 담고 집을 나서지요. 이어 편의점에 들러 술을 한 병 사서 나오는데, 그 때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이 하수구로 또르르 굴러갑니다. 하지만 동전은 아슬아슬 하수구에 걸려 빠지지 않았고, 이를 주워든 구씨는 술병을 노숙자 앞에 놓아준 뒤 돈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씨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이렇게 하수구에 걸려 다시 구씨에게 돌아갔다. [방송캡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씨의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이렇게 하수구에 걸려 다시 구씨에게 돌아갔다. [방송캡처]

구씨는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요. 시청자들의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시청자들이 내놓은 결말 해석 중엔 “돈가방 들고 베트남 가서 강해상(‘범죄도시2’의 손석구 배역)으로 개명한다”는 장난스런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구씨의 ‘해방’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설계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예측은 구씨가 현진이형의 도박빚을 대신 갚아준 뒤 어둠의 세계를 완전히 떠나 미정에게 갈 것이란 전망인데, 그 과정의 디테일 설명을 듣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를테면 구씨가 미정과 함께 산포로 내려가 싱크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 유튜브 채널 ‘와우포맨’이 제시한 근거는 이렇습니다.

앞서 구씨는 미정에게 “다섯 걸음이 힘들어서 비를 쫄딱 맞고 왔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다고 하소연하며 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 구씨가 500원짜리 동전을 줍기 위해 걸었던 걸음이 딱 다섯 걸음입니다. 구씨가 원기를 회복했다는 뜻이지요. 그 힘으로 구씨는 미정이와 산포로 가서 싱크대 일을 하며 살 것 같습니다. 28일 방송된 15회에서 창희(이민기)가 아버지(천호진)에게 전화했을 때, 아버지는 싱크대 작업장 앞에 있었습니다. 병으로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는 이미 싱크대 일을 그만뒀었는데, 그날 화면에선 작업장도 트럭도 옛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심지어 그 작업장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구씨와 미정이 산포싱크 일을 하며 단정하게 살 것이란 복선이란 말이지요.  

드라마를 한 번 쓱 봐선 도저히 알아채지 못할 디테일들이 이렇게 시청자 리뷰 속에 가득합니다. 14회 방송에서 돌아온 구씨에게 아버지가 적어준 미정의 전화번호 끝자리가 ‘0303’인 것을 보고도 깊은 뜻을 찾아냅니다. 음력 3월 3일은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는 거죠. 이쯤이면 제작진도 놀랄 해석 아닐까요.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5회 방송에서 싱크대 작업장과 트럭이 등장한 것을 근거로, 구씨가 산포에 가서 싱크대 일을 하게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방송캡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5회 방송에서 싱크대 작업장과 트럭이 등장한 것을 근거로, 구씨가 산포에 가서 싱크대 일을 하게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방송캡처]

이렇게 시청자들이 직접 서사를 만들어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시청자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또 하나의 주체적 생산자가 된 현상”으로 분석합니다. “각자가 자기 미디어를 통해 말하는 시대를 맞아 감상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해방일지’의 열린 결말은 시청자들이 창작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좋은 여백이 됐습니다. 능동적 스토리텔러가 된 시청자 덕에 ‘나의 해방일지’ 여운은 한동안 더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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