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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90만 무효표, 교육감 제도 바꾸란 명령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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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30면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오른쪽 둘째) 등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들이 지난 5월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전교조 교육감에게 학교 현장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힘을 합쳐 연대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경대 총장 출신인 임 후보는 6·1 선거에서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했다. 김성룡 기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후보(오른쪽 둘째) 등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들이 지난 5월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전교조 교육감에게 학교 현장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힘을 합쳐 연대에 나서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경대 총장 출신인 임 후보는 6·1 선거에서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했다. 김성룡 기자

서울교육감 무효표, 시장 무효표보다 5배 높아

정당 공천 않고 정보도 부족한 ‘깜깜이 선거’

제도 손질해 후보·선거운동 투명 관리해야

교육감 선거제도 개편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치러진 6·1 교육감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90만3227표에 이르는 무효표가 나왔다. 시·도지사 선거의 무효표보다 무려 2.6배 많다. 투표장에 갔지만 표기를 하지 않거나 잘못 표기하면 무효표가 된다. 6명의 후보가 출마한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무효표는 21만7449표였다. 서울시장 선거 무효표(3만8242표)와 비교하면 5배 이상 많은 수치다. 후보가 2명이었던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19만6761표의 무효표가 나와 경기도지사 선거 무효표(5만7822표)보다 3배 많았다. 진보 성향의 박종훈 후보와 보수 성향 김상권 후보가 초접전을 벌인 경남의 경우, 두 후보 간 표차는 6750표인데 비해 무효표는 7배나 많은 4만8594표에 달했다.

상식 밖으로 무효표가 이처럼 많이 나왔다는 건, 현 교육감 선거제도 자체에 큰 결함이 있다는 방증이다. “선거제도를 바꾸라는 유권자의 명령”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기계적으로 해석해 정당 공천을 배제한 데다 기호도 없이 이름만 표기된 채 ‘깜깜이 선거’로 치르게 된 데 1차적 원인이 있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태부족하고 인지도도 떨어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무관심 속에 방치돼온 게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정치권은 제도 개선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직선제 폐지 대신 정당 공천을 통해 책임성을 강화하거나, 시·도지사와의 러닝 메이트제 같은 현실적 방안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교육감의 정치 중립’을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겉으론 ‘정치 중립’을 강조하면서, 일부 교육감들은 ‘교육의 정치화’로 도마 위에 오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2014년 이후 대거 당선한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은 교육 현장에 특정 이념을 주입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교조 교사들의 입김이 강한 진보 교육감들은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학력 평가를 없애거나 대폭 축소했다. 이로 인해 2020년 중3과 고2의 기초 학력 미달자 비율이 2014년보다 최고 3.2배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선거에서 친전교조 성향 진보 교육감들의 독과점 체제가 무너지고, 보수 교육감들이 약진한 배경에는 진보 교육감들의 평등주의 교육 이념에 따른 학력 저하 등에 실망한 학부모들의 분노한 표심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선거에선 보수 8명, 진보 9명이 당선했다. 진보 교육감이 2014년 선거에서 13명, 2018년에는 14명이 당선된 것과 비교하면 진보의 퇴조가 확연하다. 김상곤·이재정으로 이어지며 ‘진보 교육의 아성’으로 불렸던 경기 교육감에 보수 성향의 임태희 전 한경대 총장이 당선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부 교육감 후보들이 선거 기간에 보여준 반교육적 행태는 묵과하기 어렵다. 특히 서울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중도·보수 후보자들은 단일화 과정에서 욕설과 비방, 통화 내용 폭로전을 벌여 유권자의 거부감을 키웠다. 지지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결국 특혜 채용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후보(38%)가 어부지리로 3선 교육감에 당선했다. 2018년에 이어 보수 유권자가 반수 이상 표를 줬지만, 분열로 기대를 저버렸다는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과 제도를 바꿔 교육감 선거운동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2000억원의 막대한 선거 비용이 드는 현행 직선제의 폐단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국회와 교육계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효표에 담긴 유권자의 성난 목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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