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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 전설’ 존 도어 통 큰 기부, 세상 바꿀 새 물결 이끌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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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27면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기후 위기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에 11억달러를 기부한 벤처투자가 존 도어와 부인 앤 도어. 이 기부금은 역대 대학 기부금 중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사진 스탠퍼드]

기후 위기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에 11억달러를 기부한 벤처투자가 존 도어와 부인 앤 도어. 이 기부금은 역대 대학 기부금 중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사진 스탠퍼드]

성공한 부자들은 살아있는 동안 세상을 바꾸기를 원한다.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찍어낸 돈은 세상의 불평등 지수를 높였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 세상 문제들을 정부에만 맡겨 놓을 수 없게 됐다. 정부보다 민간의 효율성을 믿는 사업가들은 살아 있는 동안 기부를 통해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기 원한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6년 자신의 재산 99%를 살아 있는 동안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일군 부는 미국에서 산 것과 약간의 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에서 온 것이라는 겸손한 생각에서다. 그는 2021년 6월까지 415억 달러(51조원) 가치의 버크셔 주식을 빌 게이츠 재단 등 5개의 민간 재단에 기부했다. 이 중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327억 달러다. 버크셔 주가가 상승하면서 기부한 주식 가치는 1000억 달러에 이른다.

버핏 “살아있는 동안 재산 99% 환원”

존 도어 기부금 등으로 설립 된 지속가능대학 아룬 마줌다 학장(가운데)과 필자. [사진 차상균]

존 도어 기부금 등으로 설립 된 지속가능대학 아룬 마줌다 학장(가운데)과 필자. [사진 차상균]

기부 중에서도 대학에 대한 기부가 이목을 끈다. 인재를 양성하고 새로운 과학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는 대학은 미래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사상 최고의 기부금을 받은 대학은 532억 달러(65조9000억원)의 발전기금을 가진 하버드 대학도 아니고 기부자도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아니다.

2018년 마이클 블룸버그는 18억 달러(2조3000억원)를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 기부했다. 그는 이 대학의 전기공학과를 1964년 졸업했다. 하버드 MBA를 졸업한 후 금융가로 진출한 그는 1981년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해고되자 퇴직금 1000만 달러로 블룸버그 L.P.(유한회사)를 창업했다. 증권 회사들이 수작업으로 하던 금융분석을 컴퓨터로 처리해 전용 회선으로 전달하는 혁신적인 블룸버그 터미널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현재 전세계 뉴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인터넷 미디어 기업일 뿐만 아니라 텍스트 분석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뉴스와 기업의 공개 정보를 실시간으로 자동 추출한 데이터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금융 데이터 플랫폼 회사이기도 하다. 초당 500건, 하루 200만건의 뉴스 텍스트를 분석해 0.1초 이내에 가입자에게 제공한다. 2만여 명의 블룸버그 L.P. 직원 중에 컴퓨터 엔지니어와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가가 6500명이 넘는다.

미·중 패권 경쟁과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전세계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블룸버그 L.P.가 분기실적보고서 등 공개정보에서 추출해 판매하는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간의 분기별 매출 데이터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공급망 관계에 있는 기업의 지리적 위치와 이 기업들 사이의 매출 추이, 국제정치적 관계를 통합해 분석하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사건이 발발했을 때 국가와 기업의 위험을 실시간으로 예측할 수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AP=연합뉴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AP=연합뉴스]

비상장 회사 블룸버그 L.P.의 매출은 100억 달러를 넘는다. 수익률은 40%에 가깝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 회사 지분 88%를 보유한 마이클 블룸버그는 재산이 820억 달러로 세계 12위의 부자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만 35억5000만 달러(4조4000억원)를 기부했다. 2021년에는 100명의 박사 논문 연구를 위해 1억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사과정 한 사람당 5년간 매년 30만 달러, 총 150만 달러(18억5000만원)를 지원하는 통 큰 기부다. 이공계 박사를 제대로 육성하려면 이 정도의 금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블룸버그가 보여줬다. 그는 스스로가 장학금 덕분에 대학을 졸업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위해 사회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는 마이클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L.P.를 20년 동안 혁신적인 기업으로 키운 뒤 2001년 정치에 뛰어들어 뉴욕 시장이 됐다. 2005, 2009년 3선에 성공했다. 연봉 1달러를 받으며 공교육 개혁과 빈곤 퇴치에 힘을 기울였다. 2012년 데이터 사이언스가 태동하던 때에 뉴욕 소재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가 초학제적인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원을 설립하도록 지원했다.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이름을 딴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 2018년 그가 존스홉킨스 대학에 기부한 18억 달러(2조3000억원)은 역대 대학 기부금 중 최고 금액이다. [사진 존스홉킨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이름을 딴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 2018년 그가 존스홉킨스 대학에 기부한 18억 달러(2조3000억원)은 역대 대학 기부금 중 최고 금액이다. [사진 존스홉킨스]

“조직이 혁신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에 대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에 저항하는 조직은 궁극적으로 망한다.”

한 달 전 미국 실리콘밸리의 부흥을 이끈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 이사장은 대학 기부금으로는 사상 두번째로 큰 11억 달러(1조 4000억원)를 스탠퍼드 대학에 기부했다. 그의 이 기부금은 스탠퍼드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Sustainability) 문제를 다루기 위해 70년 만에 처음으로 신설하는 지속가능 대학을 위해 쓰인다. 이 단과대학 이름에 존 도어의 이름이 추가됐다. 다른 기부자의 기부금과 합쳐 총 16억9000만 달러(2조900억원)가 이 단과 대학 설립에 투자된다. 스탠퍼드와 교수 숫자가 같은 서울대학교 전체에 대한 정부의 올해 국고 지원금 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정식 회장, AI 발전에 500억원 기부

존 도어는 스탠퍼드의 동문이 아니다. 라이스 대학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를 한 뒤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를 했다. 1975년 실리콘 밸리로 옮겨온 그는 인텔 8080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팀에 입사했다. 1980년 벤처캐피탈 클라이너 퍼킨스에 조인해 반도체 칩 설계기술 회사 실리콘 컴파일러 등 두 개의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클라이너 퍼킨스는 실리콘밸리의 모태 기업인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휴렛팩커드(HP) 출신의 유진 클라이너와 톰 퍼킨스가 1972년 스탠퍼드 북쪽의 샌드힐 로드에 설립한 벤처 캐피탈이다. 지금은 전세계 벤처캐피탈의 성지가 된 이 길에 먼지가 날릴 때였다. 76년 이 회사가 제넨테크에 투자한 25만 달러는 80년 상장할 때 640배로 불어난 1억6000만 달러가 됐다.

존 도어의 멘토였던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벤처캐피탈은 부동산 중개 회사 같은 회사라고 말하면서 그의 이직을 말렸다. 그로브는 1980년대 중반 인텔이 일본 반도체 업체의 약진으로 주력인 메모리 사업이 어려워지자 이 사업을 버리고 CPU 사업 회사로 재편한 전설적인 경영자다.

존 도어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로서 아마존, 넷스케이프, 구글 등 세상을 바꾼 벤처 기업들에 투자하여 클라이너 퍼킨스를 같은 해 생긴 세쿼이아 캐피탈과 함께 실리콘 밸리 혁신을 선도하는 투자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그는 세계는 대략 12년마다 새로운 혁신의 파도에 의해 지수적 스케일로 변화해 왔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마이크로 칩의 파도이며 두번째는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인터넷의 파도, 세번째는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 파도다. 그리고 현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파도를 타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스탠퍼드에 11억 달러를 기부한 것은 앞으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성장 이슈가 새로운 파도를 일으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는 도어 부부의 기부금으로 환경과 에너지 기술, 식량 안보 연구와 관련한 기존 학과들을 재편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과 기술적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소도 설립할 예정이다.

이 단과대학의 초대학장으로는 스탠퍼드 에너지 연구원을 이끌어온 아룬 마줌다 기계공학과 교수가 임명됐다. 그는 버클리 교수를 하다 동료인 노벨상 수상자 스티브 추 교수가 오바마 정부의 에너지 장관이 되자 에너지 분야의 미국 연구 기획기관인 DARPA-E를 설립했다. 2009년 10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초대 디렉터로 일했다. 이후 구글의 에너지 분야 부사장인 된 그를 스탠퍼드가 스카우트했다.

2017년 한전의 디지털 전환 위원장을 맡은 필자는 20여 명의 한전 임직원과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실리콘 밸리 비전 투어를 하면서 스탠퍼드 에너지 연구원의 스티브 추, 아룬 마줌다 교수와 만나 토론했다. 이때 스티브 추 교수가 했던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은 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원자력 발전을 버리려고 하는가?”

우리나라에도 세상을 이끄는 선한 기부자가 있다. 2019년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은 AI 발전을 위해 생전에 500억원을 기부했다. 고 김 회장은 내가 서울대에 부임하던 1992년 전기공학부 해동정보실을 세우는 기부를 처음 시작했다. 정보관리가 전공인 내가 실무를 맡았다. 2018년 캠퍼스에서 만난 후배의 손을 꼭 잡고 남긴 김 회장의 말씀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차 원장,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인재를 키워야지요!”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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