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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송강호와 칸·베를린 누비며 K무비 씨앗 뿌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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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22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9〉 ‘칸’ 휩쓴 한국영화

200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출연한 배우 김혜숙, 신하균, 송강호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부터). 올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으며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김동호]

200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출연한 배우 김혜숙, 신하균, 송강호와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부터). 올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으며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김동호]

올해 제75회 칸영화제(5월 17~28일)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본상 2개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3년 전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또다시 칸영화제에서 쾌거를 이뤘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4)로 심사위원 대상을,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각각 받은 데 이어 올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까지 거머쥐면서 칸에서만 ‘세 번 수상한 감독’이 됐다. 배우 송강호의 수상은 더욱 뜻깊다. 영화 ‘브로커’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데뷔했다. 관객 590만 명을 동원한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주목받기 시작해 복수와 구원을 그린 3부작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 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왔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친절한 금자씨’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각각 상영됐고, 2006년에 연출한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베를린에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나는 박찬욱 감독을 부산영화제보다 오히려 칸·베를린·베니스영화제와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와 피렌체 한국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 더 자주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음악과 미술 분야에 조예가 깊다. 나는 해외영화제에 갈 때마다 지역 미술관을 찾는다. 2009년 칸영화제에 참석했을 때다. 일요일인 5월 24일의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짬을 내 기차로 니스로 가서 버스터미널 옆에 새로 조성된 현대미술관과 인근 마티스미술관, 샤갈미술관을 돌아봤다. 샤갈미술관에서 박찬욱 감독 부부를 만났다. 니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미술관에서도 이들 부부를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새벽 2시까지 관객들 질의 쏟아지기도  

2007년 5월 칸영화제에 함께 참석한 박찬욱 감독(왼쪽)과 김동호 위원장. [사진 김동호]

2007년 5월 칸영화제에 함께 참석한 박찬욱 감독(왼쪽)과 김동호 위원장. [사진 김동호]

2017년 제15회 피렌체한국영화제(3월 23~31일)에 갔을 때다. 박 감독의 ‘아가씨’가 특별 상영됐는데 관객이 몰리는 바람에 좌석이 모자라 보조 의자까지 동원됐고, 상영 뒤엔 오후 11시부터 새벽 2시가 넘도록 관객의 질의가 이어졌다. 해외에서 그의 인기는 살상을 초월한다. 당시 피렌체의 팔라초 스트로치 미술관에서 열린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욜라 특별전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배우 송강호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자주 만났다. 그가 출연한 ‘밀양’ 등이 상영된 칸과, ‘공동경비구역 JSA’가 현지 관객들에게 선보인 베를린에서 그와 함께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있는 인구 5000명의 작은 도시 도빌은 여름이면 4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휴양지다. 좋은 술과 명마의 도시로,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66)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99년 창설된 도빌아시아영화제는 한국영화가 유럽에 소개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첫해에 신상옥 감독 회고전이 열려 ‘지옥화’ 등 4편이 상영됐다. 경쟁부문이 신설된 2000년엔 ‘인정 사정 볼 것 없다’가 5개 부문 중 여우주연상을 제외한 작품상·감독상(이명세)·남우주연상(박중훈)·관객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2001년 제3회 도빌영화제엔 ‘공동경비구역JSA’가 경쟁부문에, ‘정’(배창호)이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 배창호 감독 모두 부부 동반해서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영화 상영이 끝난 뒤 도심의 작은 카페에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와 함께 모여 이틀 연속 위스키를 각각 한 병씩 마시고 숙소로 향했다.

개막식이 열린 3월 2일 오후 숙소인 노르망디 호텔 옆의 작은 화랑에서 전시를 준비하던 백영수 화백과 부인 김명애 여사를 만났다. 60년대부터 현대문학 표지와 삽화를 그렸던 백영수 화백의 그림을 좋아했지만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음날 오후 6시 나는 화랑으로 박찬욱·송강호·배창호 부부와 알랭 파텔 집행위원장을 초청했다. 도빌 시장과 전시를 마련한 파리 주재 손우현 한국문화원장도 함께해 조촐하지만 화려한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백영수 화백과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이어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공동경비구역JSA’가 작품상·감독상(박찬욱)·남우주연상(송강호)·관객상 등 그 전해에 이어 5개 부문 중 4개 부문을 다시 휩쓸었다. 도빌영화제가 끝난 뒤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에 참석했다가 귀로에 파리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마중 나온 김명애 여사를 따라 파리 교외 백영수 화백의 집으로 갔다. 미리 연락받고 온 백건우·윤정희 부부, 한국일보 김성우 특파원과 반갑게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다른 손님들이 떠난 뒤 혼자 남아 백영수 화백과 밤새도록 와인을 나누면서 부산 피란 시절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여사가 처음 만난 이야기를 포함해 옛날 일화를 무궁무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강수연 장례일 겹쳐 칸 못 가 아쉬워

영화 ‘브로커’ 촬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지난해 6월 서울시청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고레에다 감독,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제작사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 일본에 거주하는 통역 연지미 사장. [사진 김동호]

영화 ‘브로커’ 촬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지난해 6월 서울시청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고레에다 감독,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제작사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 일본에 거주하는 통역 연지미 사장. [사진 김동호]

나는 98년 이후 최근까지 매년 2월 초 베를린영화제 개막식 전에 파리에 들러 칸영화제 인사들을 만나왔다. 그래서 2001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리에서 백영수 화백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백영수 화백은 50~60년대 김환기·이중섭·장욱진 화백과 함께 신사실주의 운동을 전개했던 원로 화가다. 망월사 밑의 과거 사시던 집으로 돌아온 뒤 그곳에 ‘백영수미술관’을 짓고 재단을 만든 뒤 2018년 6월 29일 96세로 타계했다. 나는 그때의 인연으로 백영수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송강호가 수상한 영화 ‘브로커’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가 연출했지만, 한국영화로 분류된다. 영화의 국적은 제작사를 따르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영화사집(대표 이유진)이 CJ E&M의 투자를 받아 제작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칸에서 심사위원상을, ‘어느 가족’(2018)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각각 받았다.

2005년 ‘아무도 모른다’로 아역배우 아기라 유야(柳楽優弥)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브로커’에 출연한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두 번의 남우주연상을 탄생시킨 감독이자, 칸에서 네 차례를 수상한 ‘칸의 감독’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관 상황이 악화하자 일본에서 ‘세이브 더 시네마’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고레에다는 매우 ‘친한’적인 감독이기도 하다. ‘걸어도 걸어도’(2009), ‘공기인형’(201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기에 나는 그를 부산에서 종종 만났다.

2019년 8월 초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창설을 위해 뛰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고레에다 감독을 초청하고 싶었다. 8월 25일 일본 도쿄로 날아가 베니스영화제 출국을 하루 앞둔 고레에다 감독을 만나 강릉국제영화제에 초청했다. 흔쾌히 수락한 그는 11월 9일부터 2박 3일간 강릉에 머물며 관객을 만나고 돌아갔다.

지난해 5월 말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브로커’ 촬영을 위해 다시 한국에 왔다. 6월 5일 서울시청 뒤 촬영 현장을 찾아가 고레에다 감독과 이유진 대표, 배우 배두나 등 제작진을 만나 저녁을 함께한 뒤 촬영장면을 지켜봤다. 당시 고레에다 감독과 이유진 대표에게 “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밤늦게 귀가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라면 당연히 칸 경쟁부문에 초청받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96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등 최근 4년을 제외하곤 매년 칸영화제에 참가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의 장례 일을 맡으면서 참석을 취소했다. 칸에서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의 감독·배우들을 만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두 작품의 수상은 영화 제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그 결과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헤어질 결심’은 세계적인 중국 배우 탕웨이(湯唯)가 한국어로 연기했고, ‘브로커’는 한국 제작자가 송강호·강동원·배두나·이지은(가수 예명 아이유)을 캐스팅하고 일본 거장 고레에다에게 연출을 맡겨 만든 영화다. 이러한 글로벌한 협업 방식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했고, 여기에 최근 한국영화의 장점인 ‘다양성’과 ‘역동성’이 결합하면서 오늘의 결실을 가져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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