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법률 자문서 헤드헌팅까지, M&A 전문화·고도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1호 15면

M&A의 세계

코로나19로 인한 단기적 위축에서 빠르게 회복한 지난해 국내 M&A 시장은, 약 9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블룸버그와 머저마켓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억 달러(약 1200억원) 이상 M&A 거래건수(거래 종결 기준)는 102건으로 최근 10년내 최대치다. 1억 달러 이상 대규모 M&A 거래건수는 2016년 56건을 기록한 이래, 2017년 59건, 2018년 96건, 2019년 98건으로 계속 성장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79건으로 주춤하다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가 금융과 실물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올해엔 다시 성장세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만간 연간 100조를 돌파할 것에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놀라운 것은 1998년 ‘IMF 금융위기’ 이전엔 M&A 시장 자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 백 년의 유구한 M&A 역사를 축적해온 서구 선진국의 기업과 투자사들이, 금융 위기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초기 국내 M&A 시장을 주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들과 함께 선진국이 M&A 자문사들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국내 M&A 생태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당시 국내 대형 법무법인조차도 외국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M&A 실사 방식이나 계약서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글로벌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계 변호사들이 대거 채용되었고, 그들과 협업한 국내 변호사들이 ‘1세대 M&A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런 비슷한 일은 거래의 전반적인 중계를 담당하는 증권사, 회계와 세무 실사 등을 담당하는 회계법인, 영업과 마케팅 실사 등을 담당하는 경영컨설팅 분야 등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해외 선도 업체들이 직접 진출하거나 국내 관련 업체들과의 합작을 하는 방식이 주였고,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관련 업체들로 직접 이직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 20여 년이 지나 전 세계 10위권 규모가 된 국내 M&A 시장은 광범위한 생태계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M&A 전문 미디어들은 주요 M&A 자문 분야별 ‘리그 테이블’을 매년 집계하고 발표한다. 그에 따르면 주요 M&A 자문분야는 그야말로 국내 및 해외 전문 업체들 간의 각축장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선 거래 중개인 역할을 하는 금융자문 분야에서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BOA메릴린치, JP모건 등 전통적인 선진국 증권사들이 거래 규모를 기준으로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1위를 차지한 모건스탠리의 경우 15건의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대금의 합계가 무려 20조원이 넘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들에게 도전을 내민 국내 자문사들은 삼일PwC,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이다. 그들 중 일부가 리그 테이블의 상위권에 올라오기는 하지만, 글로벌 네트워크의 활용도와 해외 거래에서의 전문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이다.

반면 국내 관련 법 및 규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경험이 요구되는 법률 분야는 국내 법무법인들 간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등 전통의 강호들이 매년 순위 다툼을 하고 있다. 이 중 확고한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김앤장이 지난해 자문한 156건의 거래에서는 무려 50조원의 거래 대금이 움직였다.

주목할 것은 이런 전통의 강자들 사이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오는 이른바 ‘부티크 로펌’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KL파트너스, 위어드바이즈, LAB파트너스 등 이름부터 차별화되는 이들은, 젊은 파트너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벤처, 플랫폼, 빅테크 기업과 벤처캐피탈, 사모펀드 등 M&A 시장의 새로운 주역들을 공략해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루어내고 있다.

거래 대상 기업의 영업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한 자문을 주로 제공하는 경영컨설팅 분야의 상황은 금융자문 분야와 비슷하다. 이른바 ‘MBB’라 불리는 멕킨지, 베인, 보스톤컨설팅그룹 등 글로벌 3사가 확고한 선도 그룹을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4대 회계법인 내부의 컨설팅 조직과 룩센트 등 국내 컨설팅 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경영컨설팅사들의 역할이 거래 자문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됐다는 점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인수한 회사의 가치 증대를 위한 통합 작업(PMI, Post Merger Integration) 분야가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PMI가 M&A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교훈이 낳은 결과다. 그에 따라 룩센트처럼 PMI 분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실사 자문으로 역할을 확대하는 사례도 등장했을 정도다.

이렇게 전통적인 M&A 자문분야는 아니지만, M&A 거래에 필요한 자금 중 일부를 차지하는 대출을 알선해주는 인수 금융 분야도 최근 금융기관들의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했다. 우리은행, KB국민은행, NH투자증권, 하나은행,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신한은행, 산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과 증권사들이 모두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엔 KB국민은행이 14건에서 총 4조가 넘은 금액의 대출 조달을 주선해 선두로 등극했는데, 워낙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매년 거래 몇 건에 따라 순위가 쉽게 바뀌는 특징이 있다. 거기에 이른바 자본재조정(Recapitalization)이라는 금융 기법을 통해 기존의 인수금융 구조를 변경하면서 새로운 대출을 제공하는 시장도 커지고 있어, 향후에도 격전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이 밖에도 M&A 생태계에는 인수한 회사의 경영진을 구성하는데 역할을 해주는 헤드헌팅 분야, 환경 이슈 등에 특화해 자문을 제공해주는 ESG컨설팅 분야,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IR·PR 대행분야 등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향후에는 거래 관련 리스크 전반을 자문하는 리스크 컨설팅이나 인수 기업의 일정한 규모이 경영진 직접 파견하는 경영 대행 컨설팅 등 더욱 전문화 및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 학사, 듀크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으며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일했다. 2005년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 설립 당시 창업 멤버로 합류한 뒤 2018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