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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푸드 2.0, 세계인 입맛 홀리다]정조가 즐긴 ‘난로회’ 부활, K푸드 미래는 코리안 바비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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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11면

SPECIAL REPORT 

‘벽제갈비’에서 34년 간 근속한 윤원석 상무는 고기를 다루는 것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장인이다. 정준희 기자

‘벽제갈비’에서 34년 간 근속한 윤원석 상무는 고기를 다루는 것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장인이다. 정준희 기자

“화로에 둘러 앉아 연한 고기 굽고/ 시골 맛으로 채소까지 더하였네/ 그저 매일 술이나 마시게 하면/ 늘 가난하여도 내 후회하지 않으리.”

18세기 문인 김종수가 겨울날 벗들과 둘러 앉아 ‘난로회’를 즐기며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한양 풍속 중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둘러 앉아 솥뚜껑처럼 생긴 번철을 올린 다음 쇠고기에 달걀·파·마늘·후추 등 양념을 더해 구워먹는 모임을 난로회라 불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조와 정약용이 규장각 신하들과 함께 난로회를 즐겼다는 글도 전해진다.

올해 초부터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중국&한국 부의장 최정윤 셰프와 벽제갈비, 청기와타운, 몽탄, 금돼지식당, 은하계 등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서울 시내 유명 고기구이 집 젊은 대표 10여 명이 모여 난로회를 갖고 있다. ‘18세기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인, 트렌드를 만드는 힙스터, 실학자들의 모임이었던 난로회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모임’이다. 주제는 ‘K푸드의 미래-코리안(한국식) 바비큐’. ‘발효음식’ ‘채식’ 다음으로 K푸드의 매력을 이어갈 키워드로 코리안 바비큐를 재정립해 띄워보자는 내용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가치를 몰랐던 고기구이는 그동안 싸구려 고기, 양념 범벅 등의 서비스로 폄하됐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스타 레스토랑에 고기구이집이 없는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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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셰프는 “일본 스시가 외국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날 생선을 밥에 올려먹는 게 색다르고 맛있기도 하지만, 편백나무 바 앞에서 장인이 손에 쥔 밥알 숫자를 맞춰가며 직접 스시 종류와 매력을 설명해주는 퍼포먼스에서 전문성과 존경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코리안 바비큐의 가능성을 연구해보기 위한 모임”이라고 했다.

촬영 당일 윤 상무는 6~7㎜두께의 갈빗살 앞뒤로 어슷어슷한 칼집을 내고 그물처럼 마름모꼴 구멍을 만들어서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다이아몬드 커팅’을 시연했다. 정준희 기자

촬영 당일 윤 상무는 6~7㎜두께의 갈빗살 앞뒤로 어슷어슷한 칼집을 내고 그물처럼 마름모꼴 구멍을 만들어서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다이아몬드 커팅’을 시연했다. 정준희 기자

소·돼지·닭,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먹지 않는 민족이 우리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시하는 소고기 부위는 39개.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20개 부위까지 세밀하게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벽제갈비 김태현 부회장은 “예부터 소가 귀해서 쇠고기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만큼 쇠고기에 진심이었던 민족이 우리”라며 “고기가 흔한 외국에선 큰 덩어리째 툭툭 잘라 굽는데 반해, 질긴 부위는 칼집을 내서 연하게 먹을 방법까지 연구할 만큼 고기를 다루는 섬세함과 기술도 우리가 최고”라고 했다. 또 “외국에 진출하려면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전달해야하고, 그러려면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며 “고기에 대한 진심과 장인의 기술을 스토리로 전달해보자”고 했다.

난로회 모임에선 『불고기-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를 쓴 이규진 경남대 교수를 비롯해 게스트를 모셔 폭 넓은 연구와 고민을 한다. ‘벽제갈비 34년 장인’ 윤원석 상무는 갈빗살에 칼집을 내는 ‘다이아몬드 커팅’을 시연했다. 다이아몬드 커팅이란, 갈빗살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칼집을 내는 기술이다. 갈빗대에서 떼어낸 두툼한 갈빗살에 어슷어슷 칼집을 내고 뒤집어 다시 한 번 칼집을 내면 고기가 그물처럼 좍 늘어나면서 다이아몬드 모양의 구멍이 뚫린 걸 볼 수 있다. 윤 상무는 “갈빗살은 칼집을 내지 않으면 질긴 부위가 있다”며 “다이아몬드 커팅을 하면 고기가 연해지고, 구멍 사이로 숯불 연기가 오가며 훈연이 되고, 양념도 잘 밴다”고 했다. 정교한 두께와 간격으로 칼집을 내는 윤 상무의 솜씨에서 스시 장인의 밥알 쥐기 퍼포먼스 이상의 구력과 내공이 느껴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식진흥원이 2020년 조사한 해외 한식 문화·산업 빅데이터에 따르면 유튜브 ‘먹방’에서 언급되는 유행한식 단어 중 ‘한국식 치킨’ ‘한국식 바비큐’ 조회 수가 증가하고 있다.(그림 참조) 그만큼 관심도가 높아졌다. 생각해보면 코리안 바비큐의 장점과 매력은 다양한 고기 부위와 장인의 솜씨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스시가 간장 소스 하나로 맛을 낸다면, 우리에겐 다양한 종류의 소금과 장이 있다. 여기에 버섯·마늘·파·젓갈·나물 등 개성 있는 식재료를 섞으면 제각각 다른 맛을 낸다. ‘채식의 나라’답게 고기와 곁들이는 채소 종류도 각양각색. 고기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모양과 장점을 살린 불판의 종류도 수십 가지. 이 요소들만 잘 조합해도 한식만의 깊은 맛과 매력의 가짓수는 무한대다. 이때 셰프가 손님 앞에서 직접 고기를 발골하고, 부위별 특징과 맛을 설명한다면, 고기 맛과 어울리는 다양한 종류의 장·소스·쌈 문화를 소개한다면? 코리안 바비큐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K푸드 3.0의 주역이 되기에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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