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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푸드 2.0, 세계인 입맛 홀리다]뉴욕 ‘정식’서 런던 ‘홍대포차’까지, 건강한 맛의 변주…모던 한식에 외국인들 열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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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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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모던 한식당 ‘밍글스’를 운영하는 강민구 셰프가 지난해 홍콩에 ‘한식구(Hansik Goo)’를 열었다. 미쉐린 가이드 홍콩 1스타를 받는 등 현지 반응이 좋다. 사진은 ‘삼계탕 리조토_전복’ 메뉴. [사진 한식구]

서울에서 모던 한식당 ‘밍글스’를 운영하는 강민구 셰프가 지난해 홍콩에 ‘한식구(Hansik Goo)’를 열었다. 미쉐린 가이드 홍콩 1스타를 받는 등 현지 반응이 좋다. 사진은 ‘삼계탕 리조토_전복’ 메뉴. [사진 한식구]

K팝 BTS, K콘텐트 ‘오징어 게임’, K무비 ‘기생충’ ‘미나리’를 필두로 다양한 장르의 한국문화가 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 K푸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5월 6일 『미쉐린 가이드 뉴욕』편 발표장은 한국인들로 붐볐다. 뉴욕 지역 한식 레스토랑 중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곳이 6곳으로 늘면서 역대 최다 선정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2스타를 받은 ‘아토믹스(Atomix)’ ‘정식(Jungsik)’, 1스타를 받은 ‘꽃(cote)’ ‘제주누들바(Jeju Noodle Bar)’ ‘주아(JUA)’ ‘꼬치(Kochi)’가 영광의 주인공들이다. 미식의 격전지라고 알려진 뉴욕에서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5곳, 2스타는 14곳, 1스타는 49곳뿐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미식업계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2021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에서 박정현 셰프의 뉴욕 ‘아토믹스’가 43위에 올랐다.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당이 50위 안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급 레스토랑들뿐만 아니다. 지난해 5월 런던에 문을 연 ‘홍대포차(Hongdae Pocha)’는 월 2억원 매출로 화제다.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를 비롯해 이곳을 찾은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K드라마·K무비 등에서 보던 한국 실내포차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실내 풍경과 쏘맥·막걸리·파전·두부김치 등의 한식 메뉴들에 반한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한식진흥원이 2019년 1월부터 21년 6월까지 조사한 ‘유튜브 한식 영상 콘텐트 영상’은 1년 6개월 만에 7배가 증가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한식세계화’를 선포하고 한식재단(현 한식진흥원)을 출범해 세계 한식 경쟁력 강화를 시작한지 10여 년 만에 이룬 성과다. 전 세계가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하고 있는 지금, 이제 막 시작된 K푸드 2.0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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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세계화’와 요리 유학생의 증가

한식세계화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 중 하나였다. 국가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식’을 주요 키워드로 삼고, 세계 한식당 경쟁력 강화와 더불어 국내 한식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과 전략이 만들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을 맡아 비빔밥·전통주·떡볶이를 한식 주력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서며 사업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졌지만 결론적으로 뚜렷한 성과 없이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동에 고속도로를 깔듯 밀어부치면 된다는 식의 판단이 문제였다. 음식은 문화고,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고 정착하려면 세심한 과정과 준비가 필요한데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보여주기’ 행정이 문화를 전달하는 과정을 간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 뿌려진 씨앗이 지금 한식 열풍의 초석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식세계화추진단이 해체되고 2010년 설립된 한식재단은 이명박 정부가 끝난 후에도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한식 메뉴 외국어 표기 길라잡이』제작, ‘궁중음식 레시피 복원 및 재현’ 사업, ‘한식 아카이브’ 오픈 등의 사업을 벌였고, 전 세계 미식가들을 초청하는 ‘서울 고메’를 열고, 스페인 미식행사 ‘마드리드 퓨전’에 참가하는 등 해외 사업에도 공을 들이며 젊은 셰프들의 성장을 도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주방장’이라는 명칭이 ‘셰프’로 바뀌는 시대로 변화를 맞으며 사람들의 인식도 변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여행자유화가 시행되면서 한국 젊은이들은 세계여행을 통해 음식의 다양성과 미식을 경험하고, 요리로 존경받는 ‘셰프’라는 직업의 가치도 알게됐다. 미국의 CIA,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 이탈리아의 알마, 일본의 츠지조리사전문학교 등 외국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서양요리를 전공하고 서울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 식당을 오픈했고, 그중에는 임정식 셰프처럼 한식을 기본으로 한 ‘모던 한식’ 마중물을 선보이며 한국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 시장을 구축한 이들도 나타났다. 모던 한식이란 한식의 맛과 식재료를 기본으로 하되, 음식을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내놓는 서양 코스 요리 서빙 방법과 접시 위를 예쁘게 꾸미는 플레이팅을 차용한 것이다. 임정식 셰프는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 CIA 출신이다. 그는 며칠 전 모교에서 졸업생 중 학교를 빛낸 셰프에게 주는 ‘CIA 리더십 어워드’를 수상했다. 임 셰프는 “2003년 입학당시 20~30명이던 한국인 유학생이 올해는 100여 명으로 늘었다”며 “미국인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커뮤니티도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고 전했다.

K푸드 키워드는 ‘발효’와 ‘채식’

K컬처의 세계적 확산에는 선두에서 달렸던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다. 세계무대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며 국위선양의 공적을 올린 BTS, 손흥민, ‘기생충’, ‘오징어 게임’ 같은 대표주자들이다. 미식업계에서도 국제적 권위를 가진 집단의 높은 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미쉐린 가이드’와 ‘월드/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하 W/A50BR)’에 한식당과 한국인 셰프가 선정되는 것은, 스포츠로 치면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행은 월드컵 유치에 견줄 수 있다. 이들의 평가는 지난 몇 년간 K푸드가 세계화에 성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36개 국가, 51개 이상 지역에서 발행되는 『미쉐린 가이드』에서(세계 어느 곳이든) 한식으로 미쉐린 스타를 받는다는 것은 K푸드 확산에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2016년 ‘르 파스 탕(Le Passe Temps·이영훈 셰프)’이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에서 1스타를 받고, 2021년 ‘솔잎(Sollip·박웅철 셰프)’이 『미쉐린 가이드 영국』에서 1스타를, ‘한식구(Hansik Goo·강민구 셰프)’가 『미쉐린 가이드 홍콩』에서 1스타를 받았을 때 국내외 미디어가 앞 다투어 취재를 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고무적인 일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된 일이다. 미쉐린 가이드 첫 아시아 진출이 2007년 도쿄였던 것에 비하면 서울은 출발이 꽤 늦었다. 2011년 관광 가이드를 내용으로 하는 『미쉐린 그린 가이드』 한국판이 먼저 출간됐고, 정작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앙꼬’인 레드 가이드 발간은 미뤄졌다. 당시 외식 업계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시장의 미성숙”이라고 분석했다.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본사가 오랫동안 서울편 발행을 모색했지만 연간 에디션인 한 권의 책에 스타 레스토랑, 빕구르망 등 100여 개가 넘는 레스토랑이 선정돼야 하는 기준을 맞추기에 서울의 외식산업의 시장 규모와 준비가 덜 됐다는 얘기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은 싱가포르·상하이와 함께 2016년 첫 발행됐다.

영국의 윌리엄 리드 비즈니스 미디어가 주최하는 ‘A50BR’ 역시 처음 열린 2013년에는 리스트에 한식당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올해 3월 발표된 리스트에는 ‘밍글스(강민구 셰프)’ 16위, ‘주옥(신창호 셰프)’ 18위, ‘세븐스 도어(김대천 셰프)’ 26위, ‘모수(안성재 셰프)’ 27위, ‘온지음(조은희·박성재 셰프)’ 등 5개가 올랐다. 중국&한국지역 부의장을 맡고 있는 최정윤 셰프는 “팬데믹 상황에서 해외여행을 거의 못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는 전문가 수가 많은 나라들이 유리함에도 한국 레스토랑이 약진한 것은 한식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선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이 ‘아이콘 어워드’를 받았다. 아시아 지역 미식 문화에 공헌하고 많은 셰프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에게 수상하는 상이다.

전 세계 미식가와 셰프들이 정관 스님의 요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요리가 ‘발효’와 ‘채식’으로 건강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한식’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물어보면 첫 번째 대답이 ‘발효와 채식으로 완성한 건강한 음식’이다.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본사 관계자 역시 서면 인터뷰에서 한식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발효기술’을 꼽았다. 그는 “한식은 참깨·고추·마늘과 같은 다양한 채소를 사용하고, 시간의 힘으로 숙성시키는 발효기술로 매우 건강한 음식을 완성시킨다”며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활기차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A50BR’ 싱가포르 의장을 맡고 있는 에이블린 역시 한식의 매력과 장점을 묻는 질문에 ‘김치’를 예로 들어 대답했다. “한식의 매력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채소와 전통기법인 발효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훌륭히 조합시킨 것이 바로 김치고, 한식 밥상 어디에서도 김치는 빠지지 않는다. 그 보급률과 접근성은 한식을 가장 먼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매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위로 꼽히는 덴마크 식당 ‘노마’의 레네 제레피 셰프는 2019년 『노마 발효 가이드』를 발간하면서 한국의 장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처럼 프렌치 요리에 쌈장·고추장·오미자·된장·간장으로 한국의 맛을 더해 한식의 매력을 전파하는 이도 있다. 그는 보자기처럼 둥그렇고 한 번에 펴지는 종이 도시락에 비빔밥을 담아 배달하는 테이크 아웃 한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3년 뉴욕 맨하탄에서 한식당 ‘허 네임 이즈 한(Her name is Han)’을 운영하다 한국에 돌아와 2019년 채식식당 ‘베이스이즈나이스’를 차린 장진아 대표는 “외국에 살면서 한국 채소가 가진 수분·당분·질감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며 “하루 한 끼만이라도 채소를 주인공으로 한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베이스이즈나이스는 『2020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 빕구르망에 선정됐다. K푸드 취재 차 방문했을 때는 2주 후 CIA 다큐멘터리 팀과 한국 채소에 관한 영상을 찍는다고 했다. “CIA 팀이 요청하기를 ‘늘 한국인이 먹는, 그래서 한국의 떼루아(프랑스어로 토양·풍토)를 느낄 수 있는 채소’들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더라. 한국만큼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나물을 활용해 음식을 만드는 나라가 없다. 어려서부터 이 오묘한 맛의 차이를 학습해온 한국인과 한식이 가진 맛의 범주는 그래서 폭이 넓고 깊다. 한식을 아직 못 먹어본 외국인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보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다.”

로컬 다이닝 트렌드 충실히 반영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업계에선 요즘의 세계적인 미식 트렌드를 ‘로컬 다이닝’과 ‘어센틱(Authentic·정통) 열풍’으로 꼽는다.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불편함이 부른 긍정적 효과다. 미국과 유럽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후 서울에서 모던 한식당 ‘미쉬매쉬’를 운영중인 민지 킴 윈드 셰프와 저스틴 매키니 매니저는 “외국에 있는 업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주제”라며 “해외여행을 못 가니까 음식에서 그 나라의 정통성을 더 찾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보편적인 중식이 아니라 홍콩·타이완·사천식 등으로 세분화돼서 지역 특성을 살린 중식당이 인기를 얻는 것처럼 한식도 정통성을 살린 맛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한국인도 국내 여행을 많이 하면서 지역 특성을 살린 전통 음식들에 눈뜨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미쉐린 가이드’와 ‘A50BR’에서 인정받은 젊은 셰프들이 스타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면, 오랜 세월 묵묵히 한국 전통의 맛을 지켜온 노포들은 로컬 다이닝의 숨은 공신들이다. 음식 문화는 평생 익숙해진 입맛이라 꽤나 보수적이다. 쉽게 다른 나라 음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폭 넓게 다가가야 한다. 일본 스시가 외국인에게 익숙해진 이유도 길거리에서 파는 1인당 5달러짜리부터 1인당 1000달러를 받는 3스타 레스토랑 ‘마사’까지 가격대 층위가 넓기 때문이다. 뉴욕에 미쉐린 스타를 받은 1인당 200~300달러짜리 모던 한식당이 있다면, LA 한인타운에는 몇 십 달러에도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한식당이 즐비하다. BTS의 인기로 지금 LA 노포들에는 외국인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국의 노포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세계 만국 공통어인 ‘엄마의 손맛’을 느끼게 해줄 장소다. 최 셰프는 “고급스러운 모던 한식이 K푸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면, 이제 한식 고유의 멋과 맛을 간직한 정통의 맛으로 더 깊이 고민해서 폭 넓게 스며들어야 할 때”라고 했다.

더불어 K푸드 발전에 동반돼야 할 문제점도 해결해야 한다. 국내외 셰프들이 꼽는 첫 번째 문제는 ‘인력문제’다. 셰프가 되고 싶은 젊은 친구들은 많지만 처음부터 주방 막내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강민구 셰프는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제도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유연한 고용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페인의 ‘알리시아 연구소’, 덴마크의 ‘노마 노르딕 푸드랩’, 미국의 ‘하버드 쿠킹&사이언스 연구소’처럼 10년 후 미래를 위한 한식 콘텐트 연구 투자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담은 스토리텔링 콘텐트를 준비하는 일이다. 민지 킴 윈드 셰프는 “외국인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놓을 때 ‘된장과 돼지고기가 잘 어울리는 이유’ 등 어머니(한식당 ‘용수산’ 김윤영 대표)에게 들었던 한국 전통의 ‘음식궁합’ 이야기를 들려주면 너무 재밌어한다”고 했다. 뉴욕 ‘아토믹스’에선 모든 메뉴의 식재료를 한글 발음으로 적고, 한국 제철 식재료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입에서 느껴지는 즐거운 경험은 기억과 추억으로 쌓인다. 오감과 뇌를 위한 만족스러운 경험이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일은 K푸드 2.0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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