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총 바구니, 실로 짠 산수화…장인 정신 살아있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91호 18면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

오는 7월 1일부터 30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 전시가 열린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이 상은 스페인 가죽 명가 로에베와 로에베 재단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공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대 장인 정신의 독창성, 탁월함,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올해는 116개국에서 3100점의 작품이 응모했고, 이중 전문가 패널이 엄선한 30점이 전시에 소개된다. 6월 30일 최종 우승자가 발표되는데, 올해는 한국 작가 7인의 작품이 ‘최종 리스트 30’에 올라 그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다음 작품 중 나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작품은 어떤 것인지 꼽아보기 바란다.

정다혜-성실의 시간

사진 1) 성실의 시간

사진 1) 성실의 시간

섬세하면서도 견고해 보이는 바구니 ‘성실의 시간’(사진 1)은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으로 만들었다. 말총 공예는 조선시대 때 갓을 비롯한 다양한 머리장식에 사용될 만큼 중요했지만 일제강점기 때 단발령과 함께 사장되고 현재는 몇몇 장인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정다혜 작가는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다 말총을 발견한 후 이를 엮어 빗살무늬 토기 형태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정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데다 힘없이 쓰러지는 평면의 섬유에 강인함을 불어넣어 스스로 설 수 있는 입체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좋다”고 했다.

허상욱-파초가 그려진 화병

사진 2) 파초가 그려진 화병

사진 2) 파초가 그려진 화병

‘파초가 그려진 화병’(사진 2)은 분청사기 작품이다. 분청사기란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고령토) 위에 백토를 씌우고 유약을 발라 구운 도자기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제작됐다. 청자·백자가 우아하고 귀족적인 면모로 사랑받는다면, 분청사기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분위기로 주목받는다. 허상욱 작가는 분청 작업을 고집하는 작가로 은을 이용한 유약을 즐겨 사용한다. 도자기를 초벌·재벌한 후 은 유약을 발라 800℃ 정도에서 다시 구우면 은이 표면에 짝 달라붙는다. 허 작가는 “은과 분청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는 공통점이 있다”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늙어가는 은과 분청의 어울림이 좋다”고 했다. 그가 분청에 문양을 그리는 여러 방법 중 배경을 긁어서 표현하는 ‘박지기법’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허 작가는 “박지기법이 태토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라면, 은이 섞인 유약을 발라 어떤 색으로 탄생할지 기다리는 시간은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이라며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인  ‘시간’을 설명했다.

정명택-덤벙주초

사진 3) 덤벙주초

사진 3) 덤벙주초

청동 스툴과 석재 테이블로 구성된 작품명 ‘덤벙주초’(사진 3)는 평평한 주춧돌 위에 나무 기둥을 얹어 기초를 만드는 한옥 건축 용어에서 따왔다. 정명택 작가는 “중국이나 일본은 집을 지을 때 초석을 반듯하게 다듬지만 한옥은 집 주변에서 찾은 불규칙한 모양의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와 덤벙덤벙 놓고 쓴다”고 했다. 목재와 금속을 주로 사용하는 정 작가에게는 3가지 작업철학이 있다. 인위적으로 다듬으려 말고 자연에서 온 것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무위의 순수미’, 욕심 내지 않고 형태의 담백함을 표현하자는 ‘무심의 담백미’,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는 한옥의 가변적 공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자는 ‘무형의 공간미’다. 덕분에 ‘덤벙주초’에선 무심하면서도 편안한 감성이 느껴진다.

김준수-숲의 감각

사진 4) 숲의 감각

사진 4) 숲의 감각

나무로 깎은 도자기처럼 보이는 작품 ‘숲의 감각’(사진 4)의 소재는 천연 가죽이다. 나무껍질이나 열매에서 얻은 타닌을 이용한 ‘베지터블(식물성)’ 무두질 과정을 거친 후 얇은 국수 가락처럼 가죽을 자르고 한 줄씩 붙여가며 그릇 형태를 완성했다. 김준수 작가는 “가죽은 동물이 남긴 부산물이지만 작가의 노동과 손의 감각을 통해 공예품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식물의 힘까지 덧붙여져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며 “생명과 죽음, 물성의 확장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욱-본능적

사진 5) 본능적

사진 5) 본능적

‘본능적’(사진 5)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네 종류의 나무를 사용한 듯 보이지만, 하나의 나무에서 창조됐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나무를 물에 적셔 건조한 후, 기름칠 없이 표면을 태우고, 염색을 하고, 세척을 하고, 나머지 하나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색상을 보여주기 위해 미완성 상태로 남겨뒀다. 더 흥미로운 건 갈라지고 터진 부분들을 황동 리벳으로 집어놓은 점이다. 김민욱 작가는 “본능적이라 함은 자연스럽다는 것이고, 나무의 본능은 갈라지고 휘어지는 것”이라며 “제재소에서 매끈하게 다듬어 사용하기보다 원래 가진 흠과 상처, 고유한 결까지 나무의 본능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좋다”고 했다.

정용진-물결모양의 거꾸로 된 그릇

사진 6) 거꾸로 된 그릇

사진 6) 거꾸로 된 그릇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거꾸로 된 그릇’(사진 6)은 현대 기술로 동양 철학을 담은 작품이다. 정용진 작가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릇에 비유한 선조들의 말씀을 옮겨봤다”고 했다. 금속판을 구부릴 때 보통 망치로 두드리거나 얇은 톱으로 흠을 내는데, 정 작가는 레이저로 얇은 구멍을 내서 정확하게 접히는 ‘각’을 만들었다. 안에는 물이 흐르지 않도록 또 다른 금속 그릇을 넣어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다양한 각을 가진 겉면들은 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면면의 색이 달라진다. 이 또한 사람의 다면성을 표현한 것이다.

정소윤-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7)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 7)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의 소재는 실이다. 얇고 투명한 실을 농도가 다른 검정으로 염색한 후, 수용성 직물 위에 실을 겹겹이 쌓아 재봉틀로 고정시켜가며 풍경의 윤곽을 만든다. 물에 담그면 천은 물에 녹아 없어지고, 실로 엮은 풍경만 남는다. 정소윤 작가는 “몇 년 전 마음이 참 힘들었을 때, 산 능선들을 보는 순간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능선의 모양이 옆으로 누운 사람의 얼굴을 닮은 것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사진 7)는 작품명도 ‘위로’라는 주제에서 탄생했다.

※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리스트에 오른 30인의 작품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