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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용산서 “전라도 가라” “나쁜 ✕✕“ …욕설·고성 쏟아지자 식은땀이 흘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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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02면

전·현 대통령 거처 앞 시위 논란 

100m. 집회·시위 주체와 그 대상인 전·현직 대통령 사이의 거리다. 5월 9일. 이 집회·시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격 시작된 날이다. 양산과 용산. 지역 이름처럼, 이 집회·시위들은 이렇게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지역의 거리만큼이나 동떨어지거나 다른 점도 있다. 막판 지방선거 열기가 한창인 이틀간 양산과 용산에 다녀왔다. 섭씨 30도의 때 이른 더위와 ‘매우 높음’을 기록한 자외선지수는, 집회·시위를 과열로 부추기는 듯했다. 죽죽 흐르는 땀은 식은땀이었다.

문 전 대통령, 대리인 통해 시위자 4명 고소

지난 5월 31일 경남 양산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위자(맨 오른쪽)가 사저를 보기 찾아온 관광객과 뒤섞인 채 소리 지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5월 31일 경남 양산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위자(맨 오른쪽)가 사저를 보기 찾아온 관광객과 뒤섞인 채 소리 지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로 향하는 도로에는 관광버스 한 대가 올라가고 있었다. 번호판은 ‘전남’으로 시작됐다. 마을회관에 도착한 버스는 관광객 30여 명을 쏟아냈다. 70~80대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전남 순천에서 온 이한례(83)씨는 “아이고, 우리 대통령님, 어쩌다 여기서 고생을 하셔. 그냥 전라도로 올 것이지. 그러면 편하실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마침, 이곳에 상주하다시피 한다는 시위자 한 명이 “문재인, 전라도로 가라. 북한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이어 100m 앞 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있는 사저를 향해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자신을 자유정의진리혁명당 소속이라고 밝힌 이 남성은 “간첩에게 어떤 표현이 지나치겠나. 나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문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날로 여덟 번째 방문이라는 보수 유튜버 조모씨는 “대통령 때 지은 죄를 달게 받게 하려고 왔다”며 “백신·부동산 등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준 걸 생각하면 이 정도 욕으로도 분이 안 풀린다”고 말했다.

평산마을 주민들은 시위대가 살인·방화까지 언급하자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40년째 평산마을에 사는 신한균(63) 도예가는 “손자가 놀러 왔는데, 시위대의 욕설을 따라 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며 “충격을 받은 이웃 주민 10여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표현의 자유라기보다는 욕설의 분출이 맞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일(67) 사진가는 “작업실 건물에 문 전 대통령 환영 현수막을 걸어놨는데, 보수단체가 지나가면서 나보고 빨갱이라더라”며 “시위가 목적이 아닌, 유튜브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막연한 증오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일 사저 맞은편 약 100m 떨어진 도로에는 확성기를 실은 시위대의 차량이 서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1일 사저 맞은편 약 100m 떨어진 도로에는 확성기를 실은 시위대의 차량이 서있다. 김홍준 기자

1시간 가까이 욕설이 계속되고 시위자의 목소리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어 확성기를 틀었다. 장송곡과 국민교육헌장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경찰은 “시위 초기 계속된 밤샘 확성기는 이제 사라졌고, 확성기 소음 정도도 규정(주간 평균 65㏈, 야간 평균 60㏈, 순간 최고 85㏈)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일 긴장은 계속됐다.

“야!” 긴장으로 팽팽했던 공기가 찢어졌다. 30분 전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데, 보수단체 시위자를 응징하러 왔다”고 밝힌 유튜버 한 명이 시위자를 향해 소리 질렀다. 경찰이 일제히 달려와 둘을 떼어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육성으로 소리 지르는 것, 원색적인 욕이나 거친 표현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제지한다”고 말했다. 10분 뒤에는 문 전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한 명이 시위자를 향해 삿대질하기도 했다. 영축산(1081m)으로 향하는 길 위의 이웃 지산마을에는 경찰버스 1대가 긴급상황에 대기 중이었다. 휴일인 지난 1일 지방선거 투표일에는 더 많은 시위대가 찾아왔다. 관광객도 많아져 하루 전 같은 시각보다 2배 이상 많은 150여명이 몰렸다.

지난 6월 1일 영축산(1081m)에서 바라본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오른쪽 도로에 확성기를 장착한 시위대 차량과 사저를 찾아온 관광객 차량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1일 영축산(1081m)에서 바라본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오른쪽 도로에 확성기를 장착한 시위대 차량과 사저를 찾아온 관광객 차량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지난 5월 31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걸린 현수막. 마을 주민들이 시위로 인해 고통스럽다는 내용이다. 김홍준 기자

지난 5월 31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걸린 현수막. 마을 주민들이 시위로 인해 고통스럽다는 내용이다. 김홍준 기자

상황이 이렇자, 지난달 15일 문 전 대통령은 “집으로 돌아오니 확성기 소음과 욕설이 함께하는 반지성이 작은 시골 마을 일요일의 평온과 자유를 깨고 있다”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했다. 뒤이어 딸 다혜씨가 트위터에 “이게 집회인가? 증오와 쌍욕을 배설하듯 외친다”는 글을 올렸다가 지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침 기자가 현장을 찾아간 날, 문 전 대통령은 대리인을 통해 보수단체 소속 회원 등 4명에 대한 고소장을 냈다. 3일에는 경찰이 코로나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가 신고한 13곳 중 사저 앞과 마을회관 앞에서 열겠다는 집회에 대해 금지 통고했다고 밝혔다. 양산 사저 앞 집회·시위 관련 첫 금지 통고였다. 이 단체는 문 전 대통령이 한 번 찾은 냉면집과 문 전 대통령이 갈 곳으로 추정되는 성당 10곳에 집회 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응이 미온하다며 양산경찰서를 항의 방문했다. 민주당은 또 지난달 16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발의를 한 정청래 의원은 “현행법상 대통령 관저, 국무총리 공관, 외교기관 등 국가 주요 인사와 관련된 장소에서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어 있으나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은 제외되어 있어 경찰 등에 신고해도 조치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집회 및 시위 금지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포함, 인근 주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도 퇴임 후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작 이런 상황을 피할 수도 있었다. 2017년 서울 논현동의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쥐를 잡자 특공대’ 등이 “쥐XX 나와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될 때까지 4개월간 시위를 이어갔다. 민주당의 박영선·민병두 전 의원 등이 현장을 방문해 지지 발언을 했다. 당시 전 대통령에게 증오와 욕설을 퍼붓는다고 지적한 의원은 없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는 최근 “문 전 대통령 집 주위에서 떠드는 이들은 물론 잘못이지만, 이 모든 일의 시원(始原)에는 문 전 대통령의 무책임한 팬덤 정치 편승과 방치, 조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1일 서울 용산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100m 건너편 도로에 시위자들이 붙여 놓은 현수막. 원동욱 기자

지난 6월 1일 서울 용산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100m 건너편 도로에 시위자들이 붙여 놓은 현수막. 원동욱 기자

지난 1일 서울 용산. 윤 대통령 집무실 100m 건너편 전쟁기념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초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 100m 밖 집회·시위를 불허했다. 집시법 제11조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 지점에서부터 100m 이내에서 열리는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경찰은 관저에 집무실도 포함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시위를 허용했다. 집무실을 관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산 시위와 달리 용산 시위는 진보단체가 주를 이룬다. 경찰은 참여연대·민주노총·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0개 단체가 지난 1주일 새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보수단체,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시위자들도 섞여 있다.

지난 6월 3일 서울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100m 앞에서 한 1인 시위자가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6월 3일 서울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100m 앞에서 한 1인 시위자가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이날 용산 시위현장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 오전에 1인 시위자가 사이버범죄 전담 수사를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오후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른 1인 시위자가 갑자기 “나쁜 ××들!”이라는 욕설과 함께 고성방가를 시작하고는 비틀거렸다. 시민들은 피하듯이 길을 재촉했다. 경찰은 “욕설과 고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며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시위할 수 있도록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변 시민과 상인들은 불안해한다. 근처에 사는 김지유(36)씨는 “경찰이 주시하고 있다고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면 사후적인 조치밖에 안 되지 않나”라며 “사전에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8)씨는 “평일에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주말에 시위대가 행진하고 저렇게 1인 시위를 하면서 욕설과 소리를 지르면 장사에 타격을 받고 불안하다”며 “오늘은 제발 시위 좀 하지 말라고 기도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1인 시위의 경우 현행법상 집회·시위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집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전문가 “집시법 이젠 보완할 필요 있다”
집회·시위를 일차적으로 관리할 경찰은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최근 양산과 용산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법 개정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집시법과 관련해 (소음이나 교통 체증 등)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 다양한 요구들이 있어서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투표일인 지난 6월 1일에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자유연대 관계자가 집회를 시작하려고 하자 경찰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방선거 투표일인 지난 6월 1일에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자유연대 관계자가 집회를 시작하려고 하자 경찰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준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법원의 판단은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조금 높이 평가하고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아직 원활하게 수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시위 단체는 욕설·폭력행위를 어느 정도 스스로 견제하는 반면, 1인 시위는 이런 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제삼자의 법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인정받을 수 없다”면서 “시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시위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시위를 함으로써 침해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규정하는 등 집시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00m. 가까운 듯 먼 듯, 표현의 자유와 개인 권리 사이의 거리다. 양산과 용산. 시위대의 성격과 주장은 다르지만,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욕설과 고성을 쏟아내는 상황은 판박이다. 증오가 표현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쓰는 것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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