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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을지언정 프로페셔널"…1600만 열광한 新노동찬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4일 유튜브에 올라온 '에버랜드 아마존 N년차의 멘트! 중독성 갑'이라는 제목의 영상. 3일 기준 조회 수 1590만 회를 넘었다. 사진 유튜브 '티타남' 영상 캡처

지난 4월 4일 유튜브에 올라온 '에버랜드 아마존 N년차의 멘트! 중독성 갑'이라는 제목의 영상. 3일 기준 조회 수 1590만 회를 넘었다. 사진 유튜브 '티타남' 영상 캡처

“눈은 무심하게 고객을 살피는 직장인의 표본” 

놀이기구에 타면 머리도 옷도 신발도 다 젖으니 주의하라는 안내를 ‘속사포 랩’으로 쏟아내는 에버랜드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해당 영상의 댓글 창에는 “눈에 힘은 없지만 일은 해낸다”며 자신이나 주변을 떠올리는 2030 직장인이 줄 잇고 있다. 이 영상은 3일 기준 유튜브 조회 수 1590만 회를 넘었다.

‘소울리스 좌’에 2030 왜 공감하나

에버랜드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알바 영상으로 최근 화제가 된 일명 '소울리스좌' 김한나씨. 장진영 기자

에버랜드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알바 영상으로 최근 화제가 된 일명 '소울리스좌' 김한나씨. 장진영 기자

영상의 주인공인 김한나(23·여)씨에게는 ‘소울리스(Souless·영혼없는) 좌’라는 별칭이 생겼다. ‘OO좌’는 특정 분야에 출중한 이에게 붙인다. 고객 앞에 선 김씨가 초점 잃은 눈으로 현란한 랩을 하는 모습이 마치 달인을 연상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영상에는 “내 에너지를 떠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반해 영상을 자꾸만 보게 된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처럼 일터에서 최적의 효율을 가지고 업무를 톡톡히 해내는 태도가 MZ세대의 새로운 노동 가치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무에서 자기감정이나 체력을 전부 쏟지 않고 적정선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호텔 주방보조 아르바이트생인 20대 최모씨는 “과하지 않고 욕만 안 먹을 정도로 소울리스하게 알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소울리스’를 ‘적당하게’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영상 편집 일을 해 밤샘 야근이 잦다는 직장인 A씨(31·여)씨도 “김씨처럼 체력을 다 쓰지도 않고, 영혼을 갈아 넣지도 않지만 할 일만큼은 제대로 하는 게 요즘 직장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소울리스=프로페셔널”

김한나씨 영상에 달린 댓글들. "프로페셔널"이라는 반응이 많다. 사진 유튜브 캡처

김한나씨 영상에 달린 댓글들. "프로페셔널"이라는 반응이 많다. 사진 유튜브 캡처

다만 소울리스는 일을 대충대충 한다거나 성의 없게 대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김씨 역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영혼이 없다는 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왕 하는 거 즐겁게 열심히 후회 없이 하자”는 게 그의 소신이다.

김씨 영상 댓글에도 “영혼은 없을지언정 맡은 소임은 철저히 하는 진정한 프로페셔널” “열정적이지 않지만 능숙하게 일을 해내는 통달의 경지”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소울리스라는 업무 태도가 시간이나 노력 없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30대 직장인 정모씨도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한 분야에 진심인 소울리스를 가볍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효율적인 노동 에너지를 중시하는 2030 직장인 사이에서는 일에 과몰입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대면 업무를 하는 직장인 최모(34)씨는 “한국이 업무에 헌신하던 사회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며 “서비스업이라는 이유로 고객에게 바짝 엎드릴 필요도 없고 사회 전체에서 완급 조절이 필요한 시기 같다”고 말했다.

“무표정한 직원은 좀…” 소울리스 반론도

지난 4월 19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 위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지난 4월 19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 위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일부 직장인이 가지는 소울리스 태도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트위터 등에서는 “고객에게 무표정으로 대하는 직원을 소울리스좌라고 할 수 없다” 등과 같은 의견이 나온다. 마케팅 회사 직원인 김모(32)씨는 “자격 없는 사람이 소울리스로 일한다면 직장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는 MZ세대의 과거와 달라진 직장 가치관을 소울리스가 대변한다고 해석했다. 한국경영학회장을 지낸 유관희 고려대 명예교수는 “과거보다 노동에 대한 철학이 약해지면서 직장 선택 기준이 급여나 복지 등 내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나를 우선순위에 놓고 일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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