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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도 혁신위 띄운 이준석…진짜 혁신용?윤핵관 견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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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당 역사상 여야는 번갈아 숱한 ‘혁신위원회’를 띄웠다. 공천 개혁, 정당 개혁 등 명분은 다양했지만 파고들어가 보면 혁신위 출범의 이유는 매번 비슷했다. 선거에서 진 정당의 회생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2.6.2/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2.6.2/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일 띄운 혁신위는 그래서 출발부터 이례적이란 시각이 많다. 국민의힘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연승을 거둔 데다, 정당 지지율도 50%를 넘나들며 탄핵 이후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축배 대신 ‘메스’를 들었다.

이 대표는 선거 승리 후 혁신위를 출범시킨 이유에 대해 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ㆍ문재인 정부를 예로 들며“잘나갈 때 자기 혁신에 소홀한 사람들은 결국에는 정권을 뺏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고 있을 때는 개혁도 안 된다. 지지율 안 좋고 이럴 땐 어떤 새로운 모습이 나와도 내분만 가속화하기 때문에 이길 때 바꿔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 대표의 설명에 대해 2일 최고위원회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지금 당에 특정한 문제점이 보여서가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찾자는 것”이라며 “계속 국민께 좋은 모습을 보이자는 거니까 이견을 보일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혁신위원장에 초선의 최재형 의원이 임명된 데 대해서도 특별한 반론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 대표가 선제적으로 혁신위를 띄운 데엔 다른 배경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안팎에서 줄곧 제기됐던 이른바 ‘조기사퇴론’을 일축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이 대표 역시 이날 라디오에서 “지방선거 때부터 저에 대해 ‘유학을 갈 것’부터 시작해 수많은 설을 뒤에서 유포하는 분이 있었다”며 “(그건)그분의 희망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선 졌으면 물러나라고 했을 거다. 지방선거 졌어도 물러나라고 했을 것”이라며 “이걸 다 이기고 나서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당 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대표는 일각에서 자신의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해 “당 윤리위원회가 징계를 결정하면 이 대표가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이날 정면 반박했다. 이 대표는 “증거인멸 교사를 제가 했다고 하는데 애초에 그게 성립할 수가 없다는 게 아마 곧 드러날 것”이라며 “윤리위가 개최되면 저는 공개회의를 하자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표가 혁신위를 만든 건 내년까지인 임기를 마칠 때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그는 “어쨌든 두 번 선거를 다 이긴 승장인 당 대표가 임기를 다하겠다면 그에 대해 ‘안 된다, 물러나라’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일단 혁신위의 활동을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혁신위가 다룰 의제에 대해 “굉장히 논쟁적인 것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우리 당이 1년 전에 비해 지지층 구성도 바뀌었고 젊은 세대가 많이 늘어났다. 젊은 세대 의사반영 구조가 있어야 된다”며 “늘어난 당원들이 정당 정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당 구조를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날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최재형 의원은 이 대표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공천에 대해 (해석이)모호했던 규정들을 재정비해 예측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방선거 공천 신청자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를 도입했는데, 지도부 관계자는 “PPAT 같은 혁신안을 총선 공천 룰에 담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놓고 당내에선 임기가 내년 6월까지인 이 대표가 차기 지도부의 몫인 2년 후 차기 총선 공천에 지분을 남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단일화 당시부터 “국민의힘을 실용적이고 중도적 정당으로 만드는 일에 공헌하겠다”고 강조해 온 안철수 의원 등 차기 당권 주자의 '개혁론'을 견제하는 한편, 지방선거 승리 이후 당내 지분을 넓히려는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포석이라는 평가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의원은 “총선 시기 당 대표라면 공천권을 통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데, 지금은 중요한 이벤트가 전부 끝난 가운데 대표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어젠다가 없는 상황”이라며 “사전에 공천 룰을 손을 봐 그걸 리더십으로 보여주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11월 17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3선의 김 의원은 이날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17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3선의 김 의원은 이날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다만 당내에선 과거 인위적 쇄신론이 대부분 당내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던 경험을 회상하며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완전 해체”를 주장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세연 전 의원이 결국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이 대표 스스로도 2014년 당시 새누리당의 혁신위원장을 맡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 대표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어떤 혁신위든 공천제도 같은 게 너무 앞에 서면 처음부터 강한 저항에 부딪히거나 감동없는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며 “최 위원장에게 공천 관련 생각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3선인 조해진 의원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그동안 수없는 혁신위가 있었지만 한 번도 성과가 없었다. 솔직히 혁신위에 대해 크게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조 의원은 “정치인의 이해관계나 기득권을 건드리는 혁신안이 나오면 당내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 있는데, 거기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실제 당에서 몸으로 문제를 느끼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야 하는데 정치초년생인 최 의원을 내세운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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