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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으로 칠한 금강산의 하늘, 이 그림이 색다른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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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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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다정한 미술관

박상현 지음
세종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은 2018년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장에 걸려 화제가 된 그림이다. 서양화를 주로 그려온 화가 신장식이 수묵화의 선과 민화의 색을 사용해 2001년 그린 작품인데, 저자의 눈길을 끈 것은 금강산 너머 하늘이 파랗게 칠해져 있는 점이었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신장식 작가의 그림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신장식 작가의 그림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늘=파란색'은 당연한 것 같지만, 책에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전통 수묵화는 물론 근현대 한국화 거장들의 채색화도 하늘을 파랗게 칠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는 것부터 고대 그리스 문헌에는 '파란색'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색깔의 이름은 인간이 이에 해당하는 염료를 만들어낸 뒤에야 생겼다는 것, 자연에서 재료를 찾기 힘든 파란색은 어휘로도 가장 늦게 등장했다는 것 등이 관련 연구를 인용해 소개된다. '파란색'이란 말이 없는 아프리카 힘바족 사람들이 파란색 카드와 녹색 카드를 구별하지 못하는 실험 결과도 나온다.

뉴미디어 관련 글쓰기로 이미 독자가 많은 저자의 본래 전공은 미술사. 이 책은 전문 지식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대신 저자가 일상에서 주목하거나 호기심을 느낀 부분을 출발점 삼아 그 답을 탐색하듯 미술의 여러 지점을 누비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술의전당에서 로스코 전시를 보다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린 저자의 경험은 그런 색면화나 밀레의 '만종'처럼 전혀 비극적인 내용이 아닌 그림이 관람객을 울게 했다는 실증적 연구에 대한 얘기로, 홍콩 시위대가 만든 '레이디 리버티'의 생김새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을 다룬 들라크르와의 그림에 영향 받았다는 설명으로, 네탄야후·트럼프·모디 등 우파 정치 지도자들의 닮은꼴 포스터는 미국과 영국의 징병 포스터가 원형이라는 줄기찾기로 이어진다. 미술이 미술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미술을 알면 세상사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이 실감난다.

책에 실린 글 31편은 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다듬고 보충한 것. 그래서인지, 주제마다 한걸음 더 깊게 들어가도 좋으련만, 보편적인 신문 독자의 눈높이에서 멈추는 듯한 대목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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