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끝나고 영화를 다시 봤는데, 상현(송강호)이 오랜만에 만난 딸 앞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복잡한 감정 연기 신은 다시 봐도 좋더라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인터뷰 #"송강호는 편집본 피드백 해줘"
지난달 29일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송강호'를 만든 영화 '브로커'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60)의 말이다. 그는 2일 오후 국내 취재진을 만나 "송강호는 우연히 이번에 제 작품에서 상을 받은 거고, 다른 감독님들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하며 "시상식이 끝난 뒤 좀 차분하게 영화를 다시 봤는데, 아기 브로커인 상현이 자기 딸에게 '아빠는 앞으로도 유나의 아빠니까'라고 말한 뒤 '진짜?'라는 답을 듣고 보이는 표정이 너무 좋았다"고 덧붙였다.
칸 영화제에 이어 30일 한국행, 31일 시사회, 2일 언론인터뷰 등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칸에선 시차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은 컨디션을 되찾았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칸 시상식 당시 화제가 됐던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수상 소감에 눈물 닦는 고레에다 감독' 영상에 대해 "눈물을 닦는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극장 안이 정말 더워서, 체감온도를 영하 3도로 내려준다는 물수건(일본에서는 편의점에서도 파는 흔한 물품)으로 얼굴을 식히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타이밍에 눈가를 닦는 바람에 울고 있는 것처럼 찍혔다"며 "죄송하다, 하지만 속일 생각은 없었다"고 농담처럼 덧붙였다.
"한국식 욕" 더한 이지은, 일본어 대본 '비교대조'까지 한 배두나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는 일본어로 쓴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 배우들이 연기한 한국 영화다. 일본어로 쓴 대본이 한국어로 옮겨지며 생길 수도 있었던 미묘한 ‘뉘앙스’(느낌) 공백은 배우들이 나서서 채웠다.
송강호는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까지, 매일 촬영이 끝난 뒤 편집본을 보며 각 테이크의 뉘앙스 차이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에게 피드백을 해줬다. 이지은은 극 초반부 조용하던 소영이 돌변해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에서 “한국식 욕을 혹시 더 해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얼마든지 하라”는 감독의 말에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욕들을 위주로 대사를 꾸려” 장면을 꽉 채웠다.
배두나는 일본어 대본 원본까지 함께 요청해 본 뒤, 자신이 맡은 ‘수진’의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레에다 감독과 함께 검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배두나는 일본어로 쓴 느낌이 한국어 번역본에서 달라진 부분을 짚어줬다”며 “아예 모여 앉아 한-일 대본을 놓고 4시간 정도 대사 전체를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말했다. 이 작업이 끝난 뒤 배두나는 “정형화된 형사 역할로 소비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다가왔고, 이대로라면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고 전한 뒤 돌아갔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캐치볼’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이번 영화 작업에 대해 “편지로 생각을 전하고 연기로 보답을 받는 캐치볼”이라고 표현했고, 배두나와의 사전작업에 대해서도 “크랭크인 전에 이런 캐치볼을 할 수 있었고, 대본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 나눈 게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시나리오가 간결하고, 현장에서 연기를 보며 수정하고 답을 찾는 편”이라는 고레에다 감독은 이지은에 대해서도 “짧은 설명도 정확하게 캐치하고 완벽하게 화답하는 감이 좋은 배우”라고 말했다. 이지은이 강동원에게 ‘데리러 오든가, 비 오면’이라고 말한 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예로 들며 “원래는 평이한 톤이었는데, 강동원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듯 장난치듯 대사를 해달라는 주문을 이지은이 바로 알아듣고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여성 두 명의 이야기… 사회적 공동체 많은 나라일수록 좋을 것"
고레에다 감독은 작품 시작 전 배우들에게 각각 편지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그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시나리오 단계에서 생각했던 것과 캐릭터 배경 등을 글로 전하고 싶었다”며 “인물의 성장 배경, 브로커가 경찰에 체포된 뒤 진술조서, 수진 캐릭터가 이후 시말서를 쓰게 되는 내용 등을 썼다”고 말했다. 답장은 “연기로 받았다”면서도 “이지은, 이주영, 배두나 배우는 촬영이 끝난 뒤 ‘즐거운 촬영이었다’는 짧은 소감을 적어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이 6년 전 구상을 시작해,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취재에만 2년 걸린 작품이다. 그는 “취재를 하다 보니 엄격한 비판이 줄곧 어머니에게 향해있더라”며 “누구의 책임인가, 했을 때 어머니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영화를 구상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은 여성 두 명의 이야기이고, 어머니가 되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며 이지은과 배두나가 이야기의 두 축임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공동체라서”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쓴다고 했다. 그러면서 “혈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을 지탱하는 사회적 공동체까지도 ‘가족’”이라며 “이런 ‘구명조끼’ 같은 공동체가 많은 나라일수록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