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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 막힌 한중 관계, 루쉰에게 내일의 길 물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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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벗과의 우정을 논한다면, 어쩔 수 없이 오늘 이 시점을 놓고 말하게 된다. 30년 지기 한중(韓中)의 우정도 오늘의 친연으로 과거의 행적을 재단하게 됨은 퍽 자연스런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누적된 이웃 국가에 대한 실망과 혐오의 감정은 과거의 좋은 기억마저 하나둘씩 지워가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반한감정과 반중정서가 이토록 대륙과 반도에 출렁이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양국 국민의 상호 혐오정서는 이미 정부 간 통제 범위를 벗어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변경까지 미쳤다. 양국의 민간교류는 최저점으로 떨어졌고 경제협력도 극도의 위축을 드러낸다. 외교채널은 부인하겠지만 사태는 이미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을 추구하고 다른 것은 보류함)’나 ‘수망상조(守望相助: 서로 돕는 자세를 견지함)’를 논하기 힘든, 에너지도 흥도 고갈된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2014년 1월 23일, 서울 명동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대사관 개관식 [사진 중앙포토]

2014년 1월 23일, 서울 명동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대사관 개관식 [사진 중앙포토]

이성적으로 국면을 통제할 선을 넘으면서, 소위 절망과 혐오의 군중정서는 거대한 토네이도처럼 커져만갔다. 마치 계속 돌아가는 거대 솜사탕처럼 이 토네이도는 뉴스매체와 SNS유저가 던져주는 색소를 받아먹으며 형형색색으로 마력을 발산한다. 마치 밤엔 불기둥처럼 낮엔 구름기둥처럼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눈멀게 하고 현란하게 오도(誤導)해 간다. 이 토네이도는 이미 자체 생산능력을 갖추었다.

자체 증폭하는 이 운동체는 애초엔 한철 계절풍에 지나지 않았다. 한철 불다가 그칠 돌개바람으로 예보되었던 당시, 아마도 그것은 양국 정부의 바람이었고 국민의 기대치였을 것이다. 북핵실험과 사드배치의 엄중한 현실 속에서, 한국 국민은 방어조치를 억누르는 이웃을 이해할 수 없었고 중국 국민은 안보의 최대위협으로 사태를 우려했다. 처음 시작은 당혹감과 우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길 잃은 한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길 잃은 한중관계 [사진 셔터스톡]

그러나 이 정서는 빠르게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고, 상호 간에 실질적 타격을 체감하면서 점차 절망과 증오의 정서로 가중되어갔다. 양국의 뉴스매체는 이 토네이도에 수시로 각종 영양제를 투입했다.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혐오의 골이 깊어지면서 양국이 함께 걸어왔던 길들은 하나씩 끊어져 나갔다. 분노에 몸을 맡겨 ‘돌아오지 않는 강’에 배를 띄우자 이전 함께 개척했던 길들은 더 아득해졌다. 비분과 절망 속에서 양국 국민은 길을 잃고 말았다.

함께 걸어왔던 길은 까마득하고 눈앞엔 허망한 토네이도만 찬연히 춤을 춰댄다. 끊어진 길목에서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어디로 돌아가 끊어졌던 길의 단서를 찾고, 어느 지름길을 타고 저 허망의 산을 지나 다시 화합의 들판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 막연한 시대에, 우리는 1927년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던 중국문인 루쉰(魯迅)의 현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루쉰의 심신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1925년 ‘베이징여자사범대’ 사건 당시 학생들을 지지했던 그는 학교에서 파면당했다. 1926년 3.18참사(군벌세력이 학생과 시민을 학살한 사건)가 일어났고, 시위 배후로 주목된 루쉰은 도피 생활을 하다 샤먼(廈門)으로 내려갔다. 다시 광저우(廣州) 중산대학으로 적을 옮겼을 때, 1927년 국민당이 주도한 4.12정변이 발생하여 중산대학 학생이 다수 체포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이때 루쉰은 광저우를 떠나 상하이에 도착한 것이다.

루쉰 [사진 바이두바이커]

루쉰 [사진 바이두바이커]

절망과 비분으로 점철되었던 시기, 루쉰은 인생의 최고 역작인 산문집 《들풀》을 완성했다. 이 위대한 글들을 써가면서 그는 쉽사리 희망에 기대지 않았고 절망에 빠져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황무지로 내몰면서 그곳에서 끊어진 길들의 실타래를 다시 찾아가기 시작했다.

《들풀》 속 그의 사유는 무지(無地), 바닥, 허무, 얼음산의 지평 위에서 다시 꿈틀대었다. 절망 가운데 섣부른 희망을 외치기보단 죽은 불에 온기를 넣어 얼음산을 벗어나고자 했다. 눈 내린 벌판서 겨울꽃을 바라보며 꿀벌이 바삐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빨간 치자꽃이 피면, 기어이 대추나무가 분홍꽃 꿈을 꿀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실망과 분노가 한중(韓中) 관계를 덮어버린 이 시대에, 우리는 절망에 항전하고 땅속 불을 지펴서 모진 들풀을 태우려 했던 루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절망의 시대 루쉰의 사유는 더 넓어지고 유연해져서, 사방에 먼지와 적의(敵意)로 가득했던 그 아픔을 담담히 그려내었고 동생의 연을 무참히 꺾은 자신의 잘못을 용서와 망각의 문체로 승화시켰다.

오늘날 한중 양국이 각기 다른 꿈을 꾸면서 상대방에게 자기편의식 희망만 요구한다면, 〈희망〉(《들풀》내 수록)이 말했듯이 우리 청춘은 더 소진되는 후과(後果)를 낳을 것이다. 허울 좋은 희망의 방패를 내려놓고 두 나라는 루쉰이 《들풀》서 말한 길을 하나씩 밟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희망〉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섣부른 희망에 기대지 않는 곳에서부터 다시 출발하자. 함께 길을 걸으며 주변에 상처받고 초라해진 오늘의 들풀들이 그 자체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기념하자.

나는 이 들풀 무더기를, 밝음과 어둠,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서, 벗과 원수, 사람과 짐승,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지 않는 사람 앞에, 증거 삼아 바치련다.〈제목에 부쳐〉

그리하여 이 들꽃풀이 마침내 분홍색 꽃을 다시 피울 날을 함께 꿈꾸자. 분홍꽃은 차가운 밤기운 속에서 잔뜩 움추린 채 내일의 꿈을 꾼다.

꿈에서 봄이 오는 것을 보았고, 가을이 오는 것을 보았고, 비쩍 여윈 시인이 제 맨 끄트머리 꽃잎에 눈물을 훔치면서, 가을이 비록 닥칠 것이고 겨울이 비록 닥칠 것이나,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의연한 봄이어서, 나비가 풀풀 날고 꿀벌이 봄노래를 부를 것이라 일러주는 꿈을 꾸었다.〈가을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겸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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