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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는 푸틴의 인질일 뿐이다" 서방이 착각한 5가지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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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반격과 서방의 대러시아 강력 제재, 휴전 중재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정치학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1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서방과 크렘린궁의 관점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쟁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1일(현지시간) 전화 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전화 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서방에선 종전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도록 돕거나 우크라이나의 양보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스타노바야는 "이는 (종전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며 "이번 전쟁은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거나, 푸틴 정권이 무너지는 오직 둘 중 하나의 결과가 있어야 끝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푸틴에 대한 서방의 '잘못된 추정 5가지'를 꼽으며 "서방이 더욱 효과적인 접근을 원한다면 상황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스타노바야는 오랜 기간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치를 연구해왔다.

추정 1. '푸틴은 자신이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막혀 러시아군이 전선을 동부로 옮기자 서방에선 '푸틴은 전쟁에서 지고 있음을 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스타노바야는 이는 러시아의 주요 목표를 '우크라이나의 일부 영토 장악'으로 잘못 본 추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전쟁 초기엔 키이우 점령이나 영토 획득을 꿈꿨을지 몰라도, 돈바스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병합 시도조차 서방과 가까운 우크라이나에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보조적·지역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2019년 파리에서 4개국 정상이 기자회견 할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2019년 파리에서 4개국 정상이 기자회견 할 당시의 모습.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러면서 푸틴의 주요 목표는 우크라이나 파괴와 서방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반(反)러시아 지정학적 활동의 교두보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러시아는 이런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계속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따라서 푸틴은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지지 않고 심지어 이기고 있다고 믿는 것 같으며 '러시아가 영원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크라이나가 인정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추정 2. '푸틴의 체면을 세워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쟁 장기화로 우크라이나와 세계의 인적·경제적 손실이 커지자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휴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스타노바야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서방과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손에 있는 반러시아 무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무력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인질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군축에 나서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절대로 가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보는 건 틀렸다"고 주장했다.

2006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당시의 모습.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후 2014년 G8 체제에서 퇴출당했다. AFP=연합뉴스

2006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당시의 모습.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이후 2014년 G8 체제에서 퇴출당했다. AFP=연합뉴스

이어 푸틴은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고, 이번 침공의 원인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우려를 무시한 서방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이 전쟁을 계속 고조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서방의 공세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며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으로 러시아와 대리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스웨덴이 나토 가입을 신청하고, 덴마크가 유럽연합(EU)의 공동방위 정책에 합류하기로 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오히려 러시아에 맞서 서방의 단결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추정 3. '푸틴은 내부 쿠데타에 직면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푸틴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으며 이것이 전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스타노바야는 "적어도 현재는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통치 능력을 잃기 시작하지 않는 한 (러시아 정치권에서) 현재 푸틴에 대항하는 건 자살 행위와 같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한 푸틴. AP=연합뉴스

지난달 9일 전승절 기념 행사에 참석한 푸틴. AP=연합뉴스

자신의 정치적 안위와 시위를 걱정하는 러시아 엘리트들은 그들의 정치 체제를 확고히 하고 무질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가 푸틴이라고 여기며 푸틴을 중심으로 뭉쳐있다는 게 스타노바야의 설명이다.

스타노바야는 "러시아 엘리트들은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겁이 많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러시아 연해주 지방의회에서 공산당 소속인 레오니드 바슈케비치, 겐나디 슐가 두 의원이 푸틴을 향해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촉구해 러시아 정치권에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1일 라디오프리유럽 등에 따르면 이 두 의원은 당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 찍혀 만장일치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다.

추정 4. '푸틴은 반전 시위를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에서도 반전 시위가 일어나 푸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스타노바야는 푸틴이 반전 시위보다 더 두려워하는 건 '전쟁 찬성 시위'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푸틴은 이번 침공으로 러시아의 어두운 민족주의를 일깨웠으며 전쟁 지지 여론이 확산할 경우 푸틴은 전쟁을 더욱 격화해 이런 열망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스타노바야는 "푸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과 무관하게 세계는 러시아 대중의 공격성과 반서방, 반자유주의 신념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1일 뉴스위크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방송에 출연한 알렉세이 페넨코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는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더 큰 분쟁에 대한 리허설"이라며 "우리는 전쟁터에서 우리의 무기가 나토의 무기보다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 AP=연합뉴스

터키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 AP=연합뉴스

추정 5. '푸틴은 실망을 안긴 측근들을 제거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고전 책임을 물어 세르게이 베세다 연방보안국(FSB) 국장 등을 체포하고 축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스타노바야는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푸틴은 참모들에게 화가 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한 내부 서클의 사람을 제거하는 게 푸틴의 스타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들로 푸틴이 지고 있으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거나, 그가 질 경우 위험하기 때문에 달래려고 하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서방과 러시아 간에 합의를 하거나 푸틴 정권이 붕괴하지 않는 한 이 전쟁은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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