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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회색옷' 보자마자 감 왔다, CCTV 닳도록 본 성추행범

중앙일보

입력

경찰이 지난달 30일 A씨(35)를 강제추행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지난 4월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마트에서 20대 여성을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당시 마트 내 폐쇄회로(CC)TV 영상 일부. 사진 독자 제공

경찰이 지난달 30일 A씨(35)를 강제추행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지난 4월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마트에서 20대 여성을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사진은 당시 마트 내 폐쇄회로(CC)TV 영상 일부. 사진 독자 제공

“잠깐만….”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30분쯤, 길거리 폭행 시비 사건에 출동해 관계자 진술을 듣던 서울 신림지구대 신재용(43) 경사가 갑자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스마트폰에는 한 달 전 일어난 성추행 사건 CCTV 영상과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동료들과 몇 번이고 돌려본 영상과 사진이었다.

모자가 달린 회색 바람막이, 어두운 색깔의 슬리퍼, 긴 머리. 눈앞에 서 있는 폭행 사건 피의자 역시 같은 차림새였다. “이 사람 맞냐?”라는 신 경사에게 사진을 들여다본 다른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OO마트(범행 장소) 다니세요?” “거기서 여성 분 추행하셨죠?” 이어지는 추궁에 남자는 결국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서울관악경찰서는 지난달 30일 A씨(35)를 강제추행 혐의로 긴급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지난 4월 27일 오후 4시 24분쯤, 봉천동의 한 마트 안에서 20대 여성 B씨의 주위를 맴돌며 손으로 신체 부위를 여러 차례 만져 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직후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A씨는 도망친 뒤였다. 경찰은 피해자와 마트 직원들의 진술 및 CCTV 영상을 통해 피의자의 인상착의를 확보하고 추적에 나섰다.

‘그놈 옷차림’, 경찰관 머릿속에 저장돼 있었다

지난 4월 27일 강제추행 사건이 일어났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마트. 이병준 기자

지난 4월 27일 강제추행 사건이 일어났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마트. 이병준 기자

한 달간 경찰의 추적을 피했던 A씨는 폭행 시비 신고로 출동한 신 경사와 신림지구대 경찰관들을 만나게 됐다. 신 경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22분쯤, 신림동의 한 길거리에서 “일행이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도착했을 때, A씨는 다른 남성의 옷을 붙잡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폭행 관련 진술을 듣던 중 신 경사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다. 문득 강제추행 사건 피의자 인상착의가 A씨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신 경사는 이날 기자와 만나 “동료들과 추행 사건의 CCTV 영상을 자주 돌려봐서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피의자 행색이 평상복에 가까워 근처에 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경찰은 “영상 속 강제추행 피의자는 왼쪽 가슴 쪽에 진회색 무늬가 있는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특이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며 “나중에 보니 옷에서 그 부분이 찢어졌던 거였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직감과 순발력으로 추행 피의자를 신속히 검거해 추가 피해를 예방한 사례”라며 “치안 신뢰도 향상에 기여한 의미로 표창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를 별건 폭행 사건 피의자로도 입건했으며 추가 범행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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