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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21%↑ 삼겹살 17%↑…더워지니 더 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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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마트를 찾은 이모(49)씨는 한층 오른 물가를 체감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1만원대였던 것 같은데 수박 한 통에 2만원이 넘더라. 사오는 물건은 비슷한데 마트 갈 때마다 결제하는 금액이 늘어난다. 고기며 채소, 과일까지 값이 안 오르는 게 없다.”

이른 무더위와 급증하는 나들이 수요에 ‘애그플레이션 공포’가 더 커졌다.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먹거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2일 소매점에서 수박 1개(상품 기준)는 평균 2만1740원에 팔렸다. 1년 전 1만7944원과 비교해 21.2% 올랐다. 평년(5년 평균) 가격 1만7787원과 견줘도 22.2% 비쌌다. 지난 3~4월 기상이 나빠 생산량이 준 데다가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수박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탓이다. 하우스 난방에 쓰인 기름값이 폭등했고, 비료·인건비 등이 오른 것도 가격에 반영됐다.

다른 채소·과일 가격 역시 비슷하다. 2일 기준 참외 10개 가격도 2만원을 뛰어넘었다. 지난해보다 10.9% 오른 2만832원이었다. 멜론 1개 값은 1만2413원으로 1년 사이 21.5% 뛰었다. 양배추(39.5%), 깻잎(25.7%), 배추(25.2%), 열무(24.4%), 시금치(20.7%) 등도 지난해보다 폭등했다. 최고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이른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주요 농산물 생산·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다. ‘보상 여행’까지 몰리면서 나들이 때 수요가 많은 채소류·고기류를 중심으로 가격이 고공비행 중이다.

돼지고기 가격도 많이 올랐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통계 기준 지난 1일 국산 돼지고기 삼겹살 소매가는 100g에 2953원으로, 1년 전보다 17% 상승하며 30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사룟값이 오른 데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최근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돼지고기 가격 상승에 한몫했다. 닭고기(육계) 1㎏ 소매가도 5968원으로, 6000원에 육박한다. 전년 대비 10.5% 상승했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물가 대응을 중심으로 한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지만, 끓어오르는 장바구니 물가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돼지고기·식용유 관세 인하 등을 주요 대책으로 내놨는데 주로 수입 먹거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마저도 수입 먹거리 가격 급등, 원화가치 하락 등으로 관세 인하 효과가 상쇄될 분위기다.

실제 KAMIS 통계를 보면 2일 기준 미국산 오렌지 10개 가격은 1만4759원으로 전년 대비 41.1% 급등했다. 망고(22.4%), 바나나(8.5%) 등 다른 수입 과일 가격 상승세도 가파르다.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문제다. 국제 유가, 공산품 가격 등 안 오르는 품목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통계청이 3일 발표할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년 만에 처음으로 5%(전년 대비)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물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열린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소득 양극화와 부문 간 비대칭적 경제 충격의 문제를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특히 농산물은 수확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물가 컨트롤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방면에서 물가가 오르는 것을 이용해 실제 원가보다 가격을 더 올리는 물가 편승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물가 편승 인상에 대한 점검과 감시를 강화하고, 밥상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농산물 공급 상황을 좀 더 꼼꼼히 점검하고 보완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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