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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대신 '개딸'에 점령당한 민주…텃밭 다 내줘도 "졌잘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2일 아침 민주당에선 또다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재명 의원(인천 계양을) 주변에선 경기지사 0.15% 포인트 차의 신승이 확인된 직후부터 “완패는 아니다”라는 의견이 속출했다.

이재명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난해 TBS 라디오국에서 진행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일정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의원과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난해 TBS 라디오국에서 진행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일정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정치권의 일반적 평가는 ‘민주당 참패’에 가깝다. 더 나아가 “민주당의 뿌리인 핵심 지지층까지 완전히 흔들린 대패”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의 핵심지지층 이탈은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에서 확인된다. 민주당은 25명의 서울 구청장 중 8명의 당선인을 냈다. 4년전엔 서초구를 제외한 24대 1의 대승을 거뒀지만, 이번 선거로 구청장 비율이 8대 17이 됐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두자릿수의 서울 구청장이 나온 건 2006년(25곳) 이후 16년만이다.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된 곳에는 도봉, 구로 등도 포함돼 있다. 민주당이 서울에서도 ‘텃밭’을 내줬다는 의미다. 31곳의 경기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9곳밖에 이기지 못했다. 인천에선 10곳 중 2곳이다. 경기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지낸 이재명 의원의 정치적 고향이고, 인천은 이번에 이 의원이 출마해 전력을 쏟은 지역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17곳을 차지했고, 민주당이 8곳에서 승리했다. 연합뉴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17곳을 차지했고, 민주당이 8곳에서 승리했다. 연합뉴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과 지지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그동안 스스로 정체성으로 내세워왔던 규범적 우월성, 개혁, 진보 등을 버리고, ‘개딸(개혁의 딸들)’ 등 극단적 팬덤과 오만에 가까운 정치행태를 새로운 정체성으로 내세워 온 것에 대해 지지자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어 “민주당이 내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을 제기해왔는데, 지금처럼 극단의 팬덤만 쫓아 ‘기울어진 곳’만 지향하는 전략은 선거판을 완전히 잘못 읽은 실책”이라고 덧붙였다.

윤호중,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일동의 사퇴를 발표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호중,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등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일동의 사퇴를 발표하며 고개숙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런한 현상은 광주 등 호남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50.9%로 역대 지방선거 중 두번째로 낮다. 그중 ‘민주당의 심장’으로 불린 광주의 투표율이 37.7%로 최하위다.

지지층의 외면 속에 치러진 호남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무소속 후보들이 존재감을 보였다. 전남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 22명 중 7명이 무소속이었고, 전북 14개 선거구에서도 3명의 무소속 당선인이 나왔다. 호남에서 ‘민주당=당선’이라는 등식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광주의 투표율과 무소속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의 뿌리였던 호남이 더이상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시그널”이라며 “민주당의 필승전략은 언제나 ‘지지층 총결집→중도 확장’이었는데, 뿌리가 흔들리면서 모든 선거전략이 먹히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 겸 총괄선대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 겸 총괄선대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민주당 지지층 붕괴의 원인을 당의 정체성을 버린 팬덤 정치와 권력의 자기 관리 실패, 즉 ‘내로남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재의 민주당은 소수 강경파의 주장에 따라 매번 정체성을 바꾸는 ‘무(無)정체성 정당’에 가깝다”며 “강경파들에 좌우돼 정체성까지 무시하는 팬덤정치로는 수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민주당은 그간 윤미향, 양정숙, 오거돈, 박원순, 박완주 등 자당 인사들이 연루된 각종 ‘사태’를 겪어왔다”며 “매번 도덕성이라는 정체성 대신 제식구를 감싸는 억지 주장만 추종하면서 극단의 소수를 제외한 다수가 당을 떠나는 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2일 오전 수원 팔달구 현충탑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뉴스1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당선인이 2일 오전 수원 팔달구 현충탑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뉴스1

원로들 사이에서도 “당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윤근 전 원내대표는 본지에 “민주당은 ‘SNS당’이 아니다. 지도부까지 극렬층에 휘둘려서는 영원한 야당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민주당 정체성의 핵심은 김대중ㆍ노무현 정신이다. 지금은 정체성 회복을 위한 르네상스 운동을 펼치며 지지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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