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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박쥐엔 있는 19금…이번 박찬욱 영화엔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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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찬욱 감독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영화는 제 전작들보다 조금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점들이 많거든요. 그런 만큼 제게는 외국 영화제에서의 수상보다도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 지가 제일 궁금하고 긴장됩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2일 서울 동대문구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한 말이다. 박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심사위원상)에 이어 올해 ‘헤어질 결심’으로 세 번째 칸 트로피를 품에 안았지만, 이같은 수상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듯했다.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 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면서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칸 영화제 최초 공개 직후 영화제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 평가에서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 중 가장 높은 평점(4점 만점에 3.2점)을 기록했고, “스릴러가 가미된 가장 이상적인 로맨스”(버라이어티) 등 외신의 호평도 잇따랐다.

박 감독은 멜로와 서스펜스가 뒤섞인 작품에 단초를 제공한 원천으로 한국 가요 ‘안개’와 ‘마르틴 베크’라는 스웨덴 추리소설 시리즈를 꼽았다. 그는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 캐릭터 마르틴 베크처럼 속 깊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여기에 이봉조 선생님이 작곡하고 정훈희씨가 부른 노래 ‘안개’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해져 ‘형사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라는 형태가 갖춰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박해일(오른쪽)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탕웨이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스1

배우 박해일(오른쪽)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탕웨이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스1

탕웨이·박해일 조합은 이같은 스토리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그려둔 캐스팅이었다. 박 감독은 “정서경 작가와 백지 상태에서 이야기할 때부터 ‘형사 캐릭터의 분위기는 예컨대 박해일 같다’고 지침을 줬다. 이름도 박해일의 ‘해’ 자를 따서 ‘해준’으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은 상·하의 합쳐 12개에 달하는 옷 주머니들 속에 핸드크림, 실리콘 장갑 등등을 늘 지니고 다닐 정도로 단정하고 청결한 인물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형사 역할을 맡은 박해일은 “장르물에 나오는 형사 캐릭터는 제가 소화하기에 안 맞는 느낌이 들었는데, 박 감독님이 제안해준 형사는 왠지 모르게 저한테 잘 맞으리라 예상했다”며 “해준의 매력은 형사이면서도, 우리와 똑같이 열심히 사는 직업인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서래 역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것은 애초부터 탕웨이 캐스팅을 목적에 둔 것이었다. 박 감독은 탕웨이가 표현한 서래 캐릭터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그 안에 무언가 은밀하고 귀중한 것이 담겨져 있을 것 같은 인물”이라는 정서경 작가의 표현을 인용하며,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기 소신껏 사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탕웨이는 대부분 한국어로 연기해야 하는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감독님께 처음 작품 이야기를 들을 때 천천히, 완전히 빠져들었다”며 “또 감독님과 작가님 눈빛이 따뜻해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지만 안심이 됐다. 박 감독님은 배우들을 안심시켜주는 감독”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박 감독은 탕웨이가 내뱉는 한국어 대사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서래의 한국어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완벽하지만, 억양과 발음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한국인 관객이 ‘한국어인데 좀 낯설고 묘하다’는 인상을 받길 바랐다”며 “그렇게 낯선 한국어를 들으면서 ‘우리’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 탕웨이(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박해일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배우 탕웨이(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박해일이 2일 서울 동대문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묘사가 없어 ‘박 감독의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많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미묘한 내면을 보여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제 전작들은 글자 그대로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관객에게 들이대는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며 “감정을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관객이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가서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들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자극적인 요소는 낮춰야 했다”고 설명했다. 탕웨이는 “음식에 비유하자면, 박 감독님의 예전 작품은 진한 김치의 맛이라면 ‘헤어질 결심’은 담백한 분위기에 달짝지근한 맛이 있다”고 표현했다.

박 감독은 수사와 멜로라는, 언뜻 보면 잘 어우러지지 않는 두 가지 장르 간 균형점에 대해 “각본가와 ‘절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자’는 원칙을 세웠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영화는 ‘50% 수사, 50%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100% 수사, 100% 로맨스 영화’로 표현되면 좋겠다”면서 “말장난하려는 게 아니라, (두 장르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형사(해준)가 용의자(서래)를 만나 탐문·미행하고 잠복근무 하는 모든 과정이 곧 유혹하고 거부하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과정이다. 보통의 연인들이 할 법한 모든 일이 (형사가 용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란 것이다.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옮겨가는 풍경과 박 감독과 ‘아가씨’ 등에서 합을 맞춘 류성희 미술감독이 완성한 특유의 미장센도 감상 포인트로 꼽힌다. 박 감독은 “영화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들을 여기저기 보여드리긴 하지만, 특정 한 곳에서 찍은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찍고 많은 특수효과가 더해진 것”이라며 “안개, 파도, 태양 등의 자연 현상들을 표현하는 데 많은 예산을 들였다”고 전했다. “사운드와 이미지 면에서도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코로나로) 개봉을 못하고 있어서 후반 작업이 정말 길었거든요. 끝없이 만지다보니 제 나름의 가장 완성도 높은 영화가 본의 아니게 돼버렸습니다. 극장에서 보실 만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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