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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싶나요? 몸 흔들어보세요" 춤이 명상인 이 사람 [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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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움직이다보면 스스로 이완된다. 그걸 통해 상처를 밖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치유를 경험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춤의 학교’를 찾았다. 그곳에서 무용가 최보결(56) 대표를 만났다. 그는 춤꾼이다. 그런데 단순한 춤꾼이 아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박혀 있는 상처와 아픔의 덩어리를 찾아내 춤을 통해 풀어내게 하는 선생이다. 사람들은 그의 춤을 ‘명상’이라 부른다. 가부좌 튼 채 앉아서 하는 명상이 아니라, 팔ㆍ다리 움직이며 몸으로 하는 명상이다.
궁금했다. 몸을 통해 어떻게 마음을 뚫을 수 있을까. 거울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무용실 마룻바닥에 앉아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용가 최보결은 자신의 춤을 '커뮤니티 댄스'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춤이라고 한다. 강정현 기자

무용가 최보결은 자신의 춤을 '커뮤니티 댄스'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춤이라고 한다. 강정현 기자

춤이란 한 마디로 무엇인가.
“자기 존재의 드러냄이다.”
그건 무용가에게나 해당하는 말이 아닌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춤을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상처, 아픔과 두려움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걸 통해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춤이 낯선 사람도 많다. 춰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다. 그럼 어떻게 춤을 출 수 있나.  
“나는 경희대 무용과를 나왔다. 친구들은 팔 다리도 길고, 몸도 예쁘고, 동작도 아름다웠다. 나는 늘 열등감에 시달렸다. 정해진 동작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 내게는 그게 어려웠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춤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럼 춤의 본질이 뭔가.
“원시 시대의 언어는 몸짓이었다. 개는 멍멍하면 다 안다. 고양이도 야옹야옹하면 다 안다. 원시 시대에는 몸짓으로 다 알았다. 춤은 본래 자기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었다. 그게 춤의 본질이다.”  
최보결 대표는 "사람은 내면의 상처와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면서 치유의 문을 열게 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최보결 대표는 "사람은 내면의 상처와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면서 치유의 문을 열게 된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이말 끝에 최 대표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 감정을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안으로만 억누르지 않고 밖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제대로 못 할 때 우리의 삶에는 슬픔이나 우울이 찾아온다”며 “꽃을 보라. 꽃이 어떨 때 꽃인지 말이다”라고 했다.

꽃이 어떨 때 꽃인가.
“꽃은 피어날 때 꽃이다. 그게 꽃의 본성이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 존재를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은 사람이 된다. 꽃이 꽃이 되듯이. 그래야 자연스러운 거니까.”

이날 춤의 학교를 찾은 사람들이 몇 있었다. 춤을 춰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자였다. 최 대표는 이들에게 움직임을 가르쳤다.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짜인 틀 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식이었다. 몸을 털면서 마음도 털기, 상대방의 동작에 나의 동작을 더하고 빼기 등.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춤이라는 걸 추고 있었다. 최 대표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대부분 ‘억압’이 있다”고 했다.

어떤 억압인가.
“저마다 자기 삶에서 억눌린 대목이 있다. 그게 억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는다. 참는 걸 통해 극복하려고 한다. 그런 방식은 근원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언젠가는 터지고 만다. 나는 오히려 그런 억눌림을 참지 말고 드러내라고 말한다. 표현하라고 한다. 그래야 내가 숨을 쉬니까. 그래야 내가 사니까.”
최보결의 춤 명상은 정해진 틀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는 그 어떤 동작도 훌륭한 춤이라고 말한다. 강정현 기자

최보결의 춤 명상은 정해진 틀을 강요하지 않는다.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는 그 어떤 동작도 훌륭한 춤이라고 말한다. 강정현 기자

 -실제 그런 억눌림을 춤으로 표현하면 어찌 되나.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까지 느꼈던 기업체의 CEO가 있었다. 병원도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분도 춤을 춰본 적이 없었다. 억눌렀던 자신의 감정과 아픔과 기억을 춤으로 토해내기 시작하면서 달라지더라. 정말, 시든 화분에 물을 준 것처럼 사람이 살아나기 시작하더라. 또 어떤 사람은 이 춤이 자신에게 하늘이자 바다라고 했다.”
왜 하늘과 바다인가.
“새에게는 하늘이 있고, 물고기에게는 바다가 있다. 자신에게는 그게 춤이라고 하더라. 내면의 억압을 춤으로 표출하면서 그는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자기 삶에서 마음껏 날고, 마음껏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하더라.”

최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가 됐다. 서울 숙명여중에서 10년간 무용 교사로 근무했다. 다들 부러워하는 안정된 직장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답답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사표를 내고 다시 춤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쌍둥이 자녀를 낳고, 암을 이겨내기도 했다.

9년 전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치유 춤의 대가이자 평화주의자인 안나할프린의 저서 『치유예술로서의 춤』을 읽었다. 그리고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타말페이즈 산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할프린을 만났다. 꼬박 30일간 그의 스튜디오에 머물며 춤을 익혔다. 최 대표는 거기서 치유를 체험했다. 춤을 통한 치유, 춤을 통한 회복이었다.

최보결 대표는 "삶이 아무리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고통에 대해 몸으로 느끼는 내면적 감각을 춤으로 표현하면 된다. 그럼 그 고통이 흘러간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최보결 대표는 "삶이 아무리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고통에 대해 몸으로 느끼는 내면적 감각을 춤으로 표현하면 된다. 그럼 그 고통이 흘러간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그때 깨달았다. “삶의 상처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더라. 오히려 자기 삶의 상처를 느끼고, 그 내면적 감각을 춤으로 드러내니까 저절로 치유가 됐다. 이런 치유의 과정이 놀라웠다. 이걸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상처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정신건강의학 의사인 이시형(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박사도 ‘춤의 학교’에 온 적이 있다. 이 박사는 ‘최보결의 춤’을 이렇게 평했다. “그의 춤은 인류 최초의 움직임과 유전적으로 코딩된 무의식까지 들춰낸다. 이를 통해 상상과 창의성을 발현시킨다. 그 춤을 추다 보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최보결 대표와 인도 여행에 동행한 적이 있는 고도원(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를 “한국의 안나할프린”이라 부른다. 무대를 겨냥하는 게 아니라 무대예술이 아니라 상처와 치유, 그리고 인간의 삶을 직접 겨누는 춤이기 때문이다.

종교에도 갖가지 명상법이 있다. 명상법마다 나름의 문턱이 있다. 어떤 명상법은 문턱이 너무 높아서 넘어오는 사람이 드물다. 이에 반해 최보결의 춤 명상은 문턱이 낮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의 춤은 손에 잡히는 몸으로 시작해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최보결 대표는 "몸을 이완하면 마음이 이완된다. 그럼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최보결 대표는 "몸을 이완하면 마음이 이완된다. 그럼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더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육완순 이사장은 최보결의 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춤에는 경계가 없다. 정신과 육체, 몸과 마음, 하늘과 땅, 물과 불처럼 이분법 또는 삼분법의 오랜 습속을 벗어나서 참 자유인이 되고자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데 최 대표가 말했다. “춤은 무대에만 있지 않더라.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순간,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공간에 있더라.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춤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길에서 나는 기꺼이 안내자가 되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춤을 되돌려주고 싶다

 콜롬비아에는 ‘몸의 학교’가 있다. 1997년에 세워진 콜롬비아 최초의 예술 대안 학교다. 무용수이자 교육자인 마리 프랑스 드리우방(프랑스)과 알바로 레스트레포(콜롬비아)가 공동 교장을 맡아서 세웠다. 내전과 폭력, 마약으로 몸살을 앓던 콜롬비아에서 길거리 10대 아이들을 모아 무용을 가르쳤다. 무용을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삶을 꾸리도록 도우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최보결 ‘춤의 학교’는 ‘한국형 몸의 학교’를 지향한다. 콜롬비아 ‘몸의 학교’는 현대 무용이 기본이다. 반면 ‘춤의 학교’는 자기로부터 나오는 자유로운 춤이 바탕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점도 다르다.
 최보결 대표는 “춤을 추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창조적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걸 모르고 죽을 수는 없지 않나. ‘춤의 학교’를 통해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춤을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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