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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샌드백이냐" 진상에 사이다 날린 '이두박근' 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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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서 연설 중인 사라 넬슨. [위키피디아]

행사에서 연설 중인 사라 넬슨. [위키피디아]

비행의 계절이 돌아온다. 공항이 붐비고 면세점에 줄이 길어졌다. 승무원들도 바빠졌다. 이 모든 게 반갑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 진상 고객도 그만큼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최근호에서 항공승무원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라 넬슨(49)을 인터뷰했다. 장장 5만자에 달하는 인터뷰로, 뉴요커 기사 치고도 장문이다. 뉴요커는 그 잡지를 구독한다는 것만으로 지성인임을 인증할 수 있는 매체다.

넬슨은 1996년부터 미국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승무원으로 일하다 항공 승무원 노조에서 목소리 키워왔고, 2011년 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된 뒤 줄곧 임원직을 유지했다. 승무원이라고 하면 부드러운 미소가 연상될 많은 이들에게 넬슨은 다소 낯설 수 있다. 구글링을 하면 뜨는 그의 대표 사진은 한 행사에서 승무원 권익을 위해 연설하며 그가 치켜든 팔에 드러난 이두박근이다. 정치 활동에 경도되거나 휘둘리는 일부 노조들과 달리 넬슨은 오롯이 승무원 권익을 위해 싸워왔다.

넬슨이 승무원이 된 건 우연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 직전, 월세를 내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세 개 이상 뛰던 시절 받았던 전화 한 통이 계기였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학창 시절 친구가 전화를 걸어선 “나 지금 어디게?” 묻더니 “승무원 됐더니 마이애미 해변가에 매주 올 수 있다구”라고 자랑을 했다. 웨이트리스 일에 지쳐가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인생은 지옥이잖아. 바꿔보자. 이건 운명이야.”

다시 바빠지는 하늘길. 사진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오는 13일부터 6월 3일까지 무료로 개방하는 하늘정원 유채꽃밭. 김상선 기자

다시 바빠지는 하늘길. 사진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오는 13일부터 6월 3일까지 무료로 개방하는 하늘정원 유채꽃밭. 김상선 기자

막상 승무원이 되자 비행은 즐겁고 보람 있었지만 괴로움도 따랐다. 그는 뉴요커에 “승무원이 무슨 샌드백이라도 되는 줄 아는 승객들이 아직도 꽤 있다”며 “진상 고객들에게 승무원들이 말없이 당하는 경우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혼자서 싸우기엔 목소리가 작았기에 그는 노조에 가담했다. 뉴요커는 “노조원 수만 170만 명이 넘는 교원 노조 등에 비해 (약 5만명인) 승무원노조는 규모가 꽤 작다”며 “그럼에도 승무원 노조는 넬슨과 같은 이들 덕에 상대적으로 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넬슨은 승무원들의 권익을 호소할 수 있는 행사는 가리지 않고 참석했고 인터뷰에도 적극 응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의회도 움직였다. 뉴요커는 “승무원들의 근무조건 향상을 위해 (승무원) 노조가 80년 넘게 노력했으나 넬슨 때가 와서야 결국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고 전했다. 비행 수당을 지급하고 교대 근무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넬슨의 요구조건이었다.

그런 넬슨도 눈물을 보인 건 9ㆍ11 테러 당시를 얘기할 때였다. 당시 납치된 비행기 중 두 대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소속이었고, 동료들이 탑승해 있었다. 9ㆍ11 테러는 항공업계에도 치명타였다. 승객들이 비행기 탑승을 꺼렸고, 회사는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가 결국 회생했다. 약 200명 이상의 승무원을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하는 사측에 넬슨은 “잠시 울어도 되겠느냐”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날은 넬슨이 노조 활동에 더욱 본격으로 임하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승무원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진상 고객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사진은 북한 고려항공이 제작한 2020년도 달력의 승무원들. 연합뉴스

승무원은 선망의 대상이지만 진상 고객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사진은 북한 고려항공이 제작한 2020년도 달력의 승무원들. 연합뉴스

그렇다고 넬슨이 노조의 이익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기업이 있어야 노조도 산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당시가 그랬다. 자연스레 승객이 줄면서 넬슨은 기업 경영진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고 손실 최소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뉴요커는 “넬슨과 같은 이가 없었다면 미국 항공 업계는 오늘날과 같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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