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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3000억 환경파괴범…1300㎞ 현수막, 오늘 지나면 쓰레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파트 우편함에 가득 꽂혀있는 6.1 지방선거 공보물. 사진 녹색연합

아파트 우편함에 가득 꽂혀있는 6.1 지방선거 공보물. 사진 녹색연합

지난 22일 오전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 도착한 6.1 지방선거 안내·공보물을 집어 든 주민이 곧바로 폐지 수거함으로 향했다. 그는 봉투를 열어 투표 안내문만 빼고 나머지는 수거함에 부어 버렸다. 이날 아파트 쓰레기장에는 형형색색 선거 공보물이 가득 쌓였다.

지역 일꾼 4125명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도 어김없이 막대한 '선거 쓰레기'를 남길 예정이다. 후보를 알리기 위해 쓰이는 선거용 현수막·공보물 제작에는 국민 세금이 쓰인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직후 처치 곤란한 폐기물로 변한다. 한번 쓰고 마는 일회용품과 비슷한 처지다.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환경파괴' 공보물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 선거 운동이 공식 개막한 5월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거리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연합뉴스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 선거 운동이 공식 개막한 5월 19일 서울 관악구의 한 거리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연합뉴스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기초의원까지 수많은 후보가 나오는 이번 선거의 현수막·공보물량은 엄청나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선에서만 벽보 79만부, 공보물 5억8000만부, 현수막 12만8000매 등이 사용됐다.

선거 공보물을 한데 늘어놓으면 여의도 면적의 10배(29㎢)를 채울 수 있다. 10m 길이인 현수막을 한 줄로 이으면 서울부터 도쿄까지 거리(1281㎞)에 달한다. 투표용지와 벽보, 공보물 인쇄에 쓰인 종이량은 1만2853t으로 집계됐다. 30년 된 나무 21만여 그루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지난 22일 발송 후 폐지 수거함에 바로 버려진 지방선거 공보물. 정종훈 기자

지난 22일 발송 후 폐지 수거함에 바로 버려진 지방선거 공보물. 정종훈 기자

선거에서 후보·정당이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 10~15%면 절반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운동 보전 비용으로 3000억원 안팎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지방선거(2932억), 2018년 지방선거(3203억원)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비용이 들었다.

보전 비용에는 선거 공보물·명함 등의 인쇄물 제작비, 선거사무소와 길거리 등에 내거는 현수막 제작·게시 비용 등이 포함된다. 득표율 15%를 넘긴 후보에게는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현수막과 공보물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애물단지 현수막, 재활용 어려워 난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린 3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에서 구청 직원들이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막을 내린 3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인근에서 구청 직원들이 선거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뉴스1

녹색연합이 집계한 결과 선거 기간 선거 벽보와 공보물, 현수막을 만드느라 발생한 온실가스를 다 합치면 1만8285t(추정치)에 달한다. 3억5164만 개의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사용한 것과 맞먹는다.

특히 플라스틱 합성섬유 성분인 현수막은 '애물단지'다. 잘 썩지 않고, 소각하면 유해물질이 나온다. 재활용률이 23.5%(2020년 총선) 수준에 머무르는 데다, 수거하고 소각·매립하는 작업에 지자체 예산이 또 투입된다. 정부는 지난 3월 처음으로 폐 현수막 재활용 지원사업에 나설 지자체 22곳을 선정했다. 에코백·장바구니·청소용 마대 등으로 재활용하는 곳이 많지만 선호도가 높지 않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는 사이 선거 현수막 관련 규정은 오히려 완화했다. 별다른 크기 규정도 없어 건물을 가득 덮을 정도의 초대형 현수막이 흔하게 눈에 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현수막이 시청 옆 프레스센터에 크게 내걸리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 현수막도 용산 등 도심 건물 곳곳에 펼쳐지는 식이다. 직장인 최모(37)씨는 "출근할 때마다 길거리에 어지럽게 걸린 현수막을 잠깐 보기는 하는데 홍보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종이 공보물, 외면받고 쌓여…"정치권 바뀌어야"

6.1 지방선거 전날인 5월 31일 서울 대학가 원룸 입구에 쌓여있는 선거 공보물. 대부분 찾아가지 않고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윤교 인턴기자

6.1 지방선거 전날인 5월 31일 서울 대학가 원룸 입구에 쌓여있는 선거 공보물. 대부분 찾아가지 않고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윤교 인턴기자

코팅 처리된 종이 공보물·명함 역시 재활용이 쉽지 않다. 대학가 원룸 등에는 선거 전날까지도 찾아가지 않아 1층에 수북이 쌓인 공보물 더미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대학생 김모(22)씨는 "지금 사는 원룸 입구에 안 가져간 공보물이 엄청 쌓여있다가 오늘(31일) 아침에 관리실에서 다 치워버렸다. 온라인으로 보면 될 거 같은데 종이로 보내니 그냥 버려지는 게 아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공보물·벽보 재질을 재생용지로 바꾸거나 온라인 공보물을 도입하는 등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지수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활동가는 "진정한 순환 경제와 예산 절감을 위해선 정치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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