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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살고 싶죠?" 유튜브 구독자 39만, 보현 스님 인생 요리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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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게 살려면 맛있게 먹어야 한다.”

#풍경1

불교에는 ‘보현(賢) 보살’이 있습니다.
중생을 널리 돕는 보살입니다.
주로 흰 코끼리를 타거나
연화대(蓮花臺, 연꽃 모양의 불상 자리)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요즘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비구니 스님이 있습니다.
그 스님의 법명도 ‘보현’입니다.
유투브 구독자만 무려 39만 명이 넘습니다.
채널명은 ‘요리 9단 보현 스님’입니다.

사찰 음식 유튜버냐고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사찰음식은 오신채(五辛菜)를 쓰지 않습니다.
마늘ㆍ파ㆍ부추ㆍ달래ㆍ흥거입니다.
다른 식재료는 알겠는데
흥거는 꽤 낯선 이름이죠?
그럴 수밖에요.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백합과 식물입니다.
흥거 대신 한국의 절집에서는
양파를 금하고 있습니다.

왜 오신채를 금지하느냐고요?
식재료의 성질이 맵고 향이 강해
수행자가 찾고 있는 마음의 고요를
깨뜨린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뜻밖에도 고추는
오신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보현 스님의 요리법에는
오신채가 들어갑니다.
왜냐고요?
사찰 음식은 기본적으로 절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보현 스님의 요리는
절집을 겨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집 바깥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요리입니다.
그들을 위한 집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보현 스님이 이런저런 지적과 잔소리를
감수하면서도
한 발짝 더,
한 계단 더
대중 곁으로 내려선 셈입니다.

#풍경2

보현 스님은 작은 암자에 살고 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의 용화미륵암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용화미륵암. 보현 스님은 직접 농사를 짓고, 장도 직접 담근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용화미륵암. 보현 스님은 직접 농사를 짓고, 장도 직접 담근다.

사찰이라기보다
마당에 큼지막한 장독대가 늘어서 있는
시골집의 모습인데,
장독대 옆에는 또 돌로 깎은 불상이
서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딱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암자에서는
음식과 부처,
요리와 수행이 맞물려서
돌아가는구나.

실제 그랬습니다.
보현 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특별하지 않은 재료로도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순간을 모아서
   우리의 인생을 맛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물음이 올라왔습니다.

평범한 재료에 무엇을 더하면
맛있는 요리가 되는 걸까.
평범한 순간에 무엇을 더하면
맛있는 인생이 되는 걸까.

#풍경3

보현 스님은 마흔일곱 살,
늦깎이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 전, 세속에서의 삶은
무척 험난했습니다.

열여섯 살부터 봉제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일하다 남자를 만났고,
아이를 가졌지만,
외벌이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혼 후에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온갖 일을 다 했습니다.
식당 일, 가사 도우미, 배달 일,
대리운전에 노점 장사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뛰어도
삶은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 때는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이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더군요.”

죽지 못해 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들른 불교 전문서점에서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을 사서 집에 온 날,
그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
하룻밤에 완독했습니다.

참, 희한했습니다.
어려운 한자,
어려운 불교 용어도 잘 모르는데
구절구절 가슴에 날아와
꽂혔습니다.
그는 그 책을 붙들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떨구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요?
다름 아닌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입니다.
줄여서 흔히 ‘법화경(法華經)’이라고 부릅니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중 하나입니다.

#풍경4

『법화경』의 무엇이 그의 가슴을
찔렀을까요.
보현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부처님이 내 고통을 알아주는 것 같아
   내내 울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유튜브 채널의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인기를 얻고 이익을 얻겠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나름의 의지처가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동영상은 고들빼기김치였습니다.
3주가 흘렀지만 영상을 본 사람은
고작 다섯 명이었습니다.
계속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회 수에 연연하지 않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현 스님은 초심을 되새기며
묵묵히 가고 있습니다.

#풍경5

보현 스님은 최근에 자처해서
출장미용사가 됐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을 찾아가
직접 머리 미용을 해드렸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셰어 하우스’입니다.

불교계에는 복지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평생 수행을 하다가
모아둔 돈이 딱히 없는 스님이 꽤 있습니다.
독신 출가자에 자식도 없고,
딱히 어느 문중에 소속된 게 아니라면
노후가 막막해지기도 합니다.
종단에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지만
아직도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보현 스님이 꿈꾸는 건
노스님을 위한 셰어하우스입니다.
오갈 데 없는 노스님들이
모여 살면서
집 앞 텃밭도 가꾸고
말동무도 하고
수행도 하면서
아프면 병원도 다니는
노후의 공동체를 꾸리는 일입니다.

그걸 위해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농사지어 만든
김치와 장아찌 등도 판매합니다.

보현 스님은 세속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일까요.
꿈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는
그의 걸음걸이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며칠 전에는 첫 책도 냈습니다.
제목이 『살맛나는 밥상』입니다.
건강한 반찬 요리를 하나씩 일러주며
보현 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맛있게 살려면 맛있게 먹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맛있는 삶’을 꿈꿉니다.
삶이 맛있지 않을 때,
우리의 어깨는 축 처지고
기운이 빠집니다.
심하게 맛이 없을 때는
우울증까지 찾아옵니다.
보현 스님의 처방전은 이렇습니다.

  “매 순간 식자재 본체가 필요로 하는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찹쌀가루 반죽이 너무 질면
   찹쌀가루를 더 넣고,
   반죽이 너무 되면
   물을 더 넣으면 된다.

   우리의 삶도 똑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지 마라.
   지금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맛있게 살 수 있다.
   그런 하루가 모이고, 모여서
   맛있는 인생이 된다.”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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