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19년 끈 제주 투자병원 좌초, 의료단지 국책사업도 직격탄

중앙일보

입력 2022.06.0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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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규제 장벽에 포위된 제주 헬스케어타운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굳게 닫힌 건물 주변엔 잡초가 우거졌다. 짓다 말고 방치한 공사 현장은 흉물이 됐다. 제주 녹지국제병원과 주변 지역의 현주소다. 3년여 전 국내 1호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으로 허가를 받았던 곳이다. 제주도가 병원 허가를 취소한 이후 병원과 연계한 다른 사업까지 완전히 멈췄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병원 문은 한 번 열어보지도 못할 처지에 몰렸다. 제주도가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병원 허가를 취소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제주도 서귀포시 동흥동과 토평동의 제주 헬스케어타운을 찾아갔다. 한라산 중산간에 의료관광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다. 사업 부지의 전체 면적(154만㎡)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 기자의 눈에 비친 현장의 모습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오래전에 작업을 중단한 건물 외벽에는 회색 콘크리트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났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가림막은 여기저기 찢어져 바람에 날렸다. 각종 공사 자재는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난간 등으로 위험천만해 보이는 구역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서 투자병원 첫 허용
내국인 진료도 터준 특별법 제정

의료민영화 논란, 병원 허가 취소
짓다 만 공사현장은 흉물로 남아

대법원 승소에도 병원문 못 열어
병원매각에 취소 절차도 진행 중

제주도 서귀포시에 조성 중인 헬스케어타운에서 투자자의 사업 중단으로 흉물로 남은 현장의 모습. 중국 녹지그룹이 2단계 개발사업을 진행하다 공사를 멈추고 방치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에 조성 중인 헬스케어타운에서 투자자의 사업 중단으로 흉물로 남은 현장의 모습. 중국 녹지그룹이 2단계 개발사업을 진행하다 공사를 멈추고 방치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논란의 중심인 제주 녹지병원 건물은 헬스케어타운 부지 남동쪽에 자리 잡았다. 서귀포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외벽을 유리로 덮은 3층짜리 건물로 이미 5년 전에 공사를 마쳤다. 출입문은 잠겨 있고 오가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니 의자와 탁자 같은 집기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제주 헬스케어타운은 의료 관련 규제개혁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호 투자병원인 녹지병원이 좌초하자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헬스케어타운도 직격탄을 맞았다. 헬스케어타운을 계란에 비유한다면 투자병원은 노른자 같은 관계다. 투자병원을 봉쇄하면서 헬스케어타운을 활성화하는 건 “계란을 깨지 말고 노른자를 빼내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년 전 제주지사 시절에 한 말이다.

노무현 “의료산업 과감하게 개방해야”

제주 투자병원의 시작은 19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 성향의 정부에서 이른바 ‘의료민영화’를 위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이 아니란 얘기다. 앞서 김대중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킨다는 종합계획을 세우고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홍콩처럼 자유무역으로 번성하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이후 제주 투자병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헬스케어타운의 밑그림을 그린 건 노무현 정부였다. 당시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제주도에 더 많은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법률을 고쳤다.

2017년 준공 후 국내 1호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허가를 받았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모습.

2017년 준공 후 국내 1호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허가를 받았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모습.

국회는 2003년 12월 본회의를 열고 제주도에 외국인 전용 투자병원을 허용하는 법안(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재석의원 175명 중 17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2년 뒤에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2005년 11월 국회에 제출한 법안(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 특별법안)이다. 여기선 ‘외국인 전용’이란 조항까지 삭제했다. 외국인이 제주도에 투자병원을 세워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당시 의료 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고 김근태씨였다.

정부는 의료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하는 이유로 “의료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그는 2006년 1월 신년 연설에서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일자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부는 국민에 대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는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2006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선 재석의원 185명 중 171명의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민주노동당 소속 최순영 의원이 투자병원에 반대하며 본회의 토론자로 나섰지만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제주도는 2006년 12월 법정 계획인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을 수정하면서 헬스케어타운을 핵심 프로젝트로 내세웠다.

중국 녹지그룹, 2단계서 공사 중단

정부가 관련 법률을 정비하고 지도에 밑그림을 그린다고 저절로 사업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사업계획을 실행에 옮길 투자자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제주 헬스케어타운에 등장한 투자자가 중국 녹지그룹이었다. 국내에선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포춘 500)에 속하는 ‘큰손’이다. 지난해 녹지그룹의 순위(142위)는 한국의 LG전자(192위)나 기아자동차(215위)보다도 앞섰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 따르면 녹지그룹은 2012년 11월 투자 사업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헬스케어타운에서 시설용지로 구분한 땅의 절반가량(36만4000㎡)을 녹지그룹이 맡았다. 3단계에 걸쳐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1단계 사업은 순조로웠다. 녹지그룹은 2014년 헬스케어타운 안에 콘도 400실을 지어 분양했다. 앞서 제주도가 투자 영주권 제도를 도입한 것도 사업 추진에 속도를 붙게 했다. 외국인이 제주도에서 1인당 5억원 이상을 콘도 등 휴양시설에 투자하면 한국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녹지그룹은 2014년 헬스케어타운에서 병원과 리조트·상가 등을 건설하는 2단계 사업에 착공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녹지병원의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2016년에 접어들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가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국내에선 1호 투자병원에 강력히 반발하며 최종 허가권자인 제주도를 압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8년 12월 원희룡 당시 제주지사는 외국인 환자만 볼 수 있다는 조건으로 녹지병원의 허가를 내줬다. 그는 아예 병원 개설을 불허하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녹지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에 반발하며 법정 기한(3개월) 안에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제주도는 병원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그룹은 2단계 개발 중 리조트를 제외한 건설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국내 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결국 대법원은 지난 1월 제주도의 병원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4월에는 내국인 진료 제한도 부당하다는 1심 법원(제주지법)의 판결이 나왔다.

외국인 투자요건 미달로 취소 위기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녹지그룹이 병원 건물과 토지를 통째로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매수자는 디아나서울이란 이름의 국내 기업이다. 의료 관련 컨설팅과 외국인 환자 유치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지난해 8월 소유권 이전이 이뤄졌다. 제주특별법에 따른 투자병원을 운영하려면 외국인이 세운 법인이어야 한다. 제주도의회가 만든 조례에는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이런 이유로 녹지병원의 개설 허가 취소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현재 녹지그룹의 의견을 듣는 절차까지 마치고 도지사의 최종 결정만 남았다.

녹지그룹이 결국 손을 떼면 헬스케어타운을 살리는 건 JDC의 부담이 된다. 녹지그룹의 사업 대상이 아닌 땅(39만㎡)에서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JDC는 자체 자금을 투입해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당초 지난해였던 사업종료 시점은 2024년으로 3년 연장했다. 지난 1월에는 헬스케어타운 안에서 300억원을 들여 3층짜리 의료서비스센터 건물을 준공했다. 이곳에는 건강검진센터와 의료 관련 연구시설 등이 들어선다.

조용석 JDC 의료사업처장은 “건강검진 전문기관인 한국의학연구소(KMI)와 이미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오는 9월 건강검진센터를 개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병원 난임센터와도 지난해 9월 협약을 맺었다. 헬스케어타운에 난임센터가 생기면 현재 수도권으로 원정을 가야 하는 제주 지역 난임 부부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DC는 753억원을 투자해 의료·바이오 허브 건물을 짓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공사를 위한 설계 작업은 올해 하반기에 착수할 예정이다. 조 처장은 “의료·바이오 관련 연구소나 스타트업 등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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