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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그랜저 뽑을 돈 날리실래요? 오늘 한표 가치 3612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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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표 가치

당신의 한 표 가치

이번 6·1 지방선거는 두 가지 면에서 이례적이다. 첫째로 ‘87년 체제’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고 치르는 최단기 전국단위 선거다. 윤석열 정부 출범 22일 만이다. 1995년부터 시작된 전국 동시 지방선거 중엔 김대중 정부 출범 99일 만에 치러진 98년 지방선거가 가장 빨랐다. 총선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이 44일 만이었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띤다. 그렇기에 새 정부 출범 직후 ‘허니문 기간’에 행해지는 선거가 야당에 유리하기란 쉽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심판론 대신 “윤석열 정부 독주에 맞설 수 있게 견제와 균형을 이뤄 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외려 심판론을 꺼내든 건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지방권력을 교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4년 전 국민의힘은 2대14(광역단체장 선거)로 참패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초호화 캐스팅이다. 대선후보급 거물이 총출동했다. 7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져서다. 민주당 주자였던 이재명 후보는 인천 계양을에, 국민의당 주자였던 안철수 후보는 경기 성남분당갑에 나섰고, 새로운물결 대선후보였던 김동연 후보는 경기지사에 출사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경합했던 홍준표·유승민 전 의원도 출전했다.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과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선주자가 레이스에 나서는 초유 상황이다.

그런데 흥행은 기대만큼 뜨겁진 않아 보인다. 사전투표율 20.62%는 역대 지방선거 중엔 가장 높으나 지난 3월 대선 사전투표율(36.93%)과 2년 전 총선 사전투표율(26.69%)에는 못 미친다. 3개월 전 큰 장(場)이 있었고, 대중의 시선이 중앙 권력에 쏠린 탓이 크다. 특히 3860명을 뽑는 광역·기초의원의 경우 후보자를 제대로 파악하는 유권자는 드물다. 진영 논리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당 표기를 없앤 교육감 선거는 오히려 ‘깜깜이 투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기초의회 무용론, 교육감선거 회의론이 팽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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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표는 민주주의의 시작과 끝이다. 방치할수록 타락한다. 무엇보다 한 표 값이 높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도 지자체 예산은 총 400조1035억8800만원이다. 임기 4년간 동일한 예산을 책정한다고 가정하면 1600조4143억원에 달한다.

이를 전체 유권자 수(4430만3449명·중앙선관위)로 나누면 유권자 1인당 투표 가치는 3612만3922원이다. 결국 오늘 우리가 투표소에서 광역·기초단체장, 교육감 및 광역·기초 의원(비례대표) 등을 뽑는 일곱 번의 기표 행위는 3612만원짜리 베팅인 것이다.

더욱이 이 투표는 ‘그들만의 파워게임’이 아닌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다. 전국적으로 실시 중인 무상급식, 서울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버스 전용차로, 지방 곳곳에 뿌리내린 ‘100원 택시’ 등은 지방정부·의회가 결정한다. 부동산 재개발·재건축도, 사업장 인허가도 구청과 시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경기 수원·고양·용인 등의 기초단체장 몸값은 이미 국회의원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특히 구청장 등은 올해부터 부지면적 3000~5000㎡ 규모 주차장, 문화·체육시설, 시장 등을 설치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이런 일이 이념적일까. 지방선거를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이유다. 주르륵 1번만 찍거나 무조건 2번만 표기하는 ‘묻지마 줄투표’를 배제해야 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의 권력자보다는 지역의 민생 일꾼을 뽑는다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투표하지 않는 건 3612만원을 포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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