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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도 모른 채 도전...장동건·이민호 中진출시킨 미다스 손 [속엣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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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정용실 KBS 아나운서는 지인의 대회 준비를 도왔다가 경사를 맞았습니다. 그가 지난 1월 한국프레젠터 신인강사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겁니다. 지난 3월 단행본 『열등과 열정 사이』 출간으로도 이어졌죠. 그는 전문 강사는 아닙니다. 송중기·김수현·장동건 같은 한국의 스타들을 중국에 진출시키는 일이 그의 본업이죠. 그런 그가 어쩌다 강사 대회에 나간 걸까요. 배경렬(48) ㈜레디차이나 대표를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습니다. 

배경렬 ㈜레디차이나 대표가 2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을 찾았다. 그는 한국의 톱스타들을 중국에 진출시키고 한국 드라마와 웹툰, 영화를 수출하며 지금의 한류를 만든 첫 공식 에이전트다. 강정현 기자

배경렬 ㈜레디차이나 대표가 26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을 찾았다. 그는 한국의 톱스타들을 중국에 진출시키고 한국 드라마와 웹툰, 영화를 수출하며 지금의 한류를 만든 첫 공식 에이전트다. 강정현 기자

배경렬 대표는 늘 ‘한류배우 백과사전’을 갖고 다녔다. 배우와 가수, 감독과 작가 등 1000명을 출연료 수준과 작품, 신상정보, 스캔들까지 직접 정리한 파일이다.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배우 박해진은 ‘32페이지’에 있었다. “귀공자 스타일 배우”를 원하는 중국 측에 배 대표는 박해진을 추천했고, 그가 출연한 드라마 ‘첸더더결혼기’(钱多多嫁人记)는 2011년 중국에서 전국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그의 첫 작품이 ‘대박’을 터뜨리자 ‘페이종’(裴总·배 사장)을 찾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출연했던 장동건과 중국 정장 브랜드 간 모델 계약을 성사시켰고,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웹툰을 중국에 수출했다. 송중기, 한재석, 이다해, 걸스데이, EXID, 엑소, f(x), 헨리 등 한류 배우와 아이돌의 중국 진출도 그의 손을 거쳤다. 중국에서 불법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를 통해 표준계약서와 공식 인증서를 만들어 한류를 본격화시킨 에이전트는 배 대표가 처음이었다.

무일푼 상경해 톱스타 매니저로 

배경렬 대표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 해병대를 제대한 후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1년간 신인배우 홍보에 지쳐 배용준 소속사를 무작정 찾아갔다가 '톱스타 매니저'가 됐다. 강정현 기자

배경렬 대표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 해병대를 제대한 후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1년간 신인배우 홍보에 지쳐 배용준 소속사를 무작정 찾아갔다가 '톱스타 매니저'가 됐다. 강정현 기자

배 대표는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전남 해남 울돌목 부근의 임하도 출신이다. 70년대에도 전기가 안 들어오던 작은 섬의 초가집에서 살았다. 쌀밥은 구경도 못했고 화장실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재래식이었다. 막내 찬스로 6남매 중 유일하게 광주로 유학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병대 제대 후 “돈을 벌고 싶어” 무일푼으로 서울에 왔다. 사우나를 전전하던 중 1997년 우연히 운전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로드매니저’가 됐다. 하지만 신생 회사에서 신인 배우를 홍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배용준 매니저를 하고 싶습니다.” 이듬해 무작정 배용준의 소속사를 찾아갔다. 대표에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부렸던 호기가 운 좋게 통했다. 배용준과 드라마 ‘겨울연가’를 함께 하며 배 대표도 업계 최연소 실장으로 승진했다. 송승헌·박용하·송혜교·이다해·이하늬까지 톱스타들을 관리했다. “이제 신인을 키워보겠다”며 매니지먼트 사업에 나섰지만 보기 좋게 망했다. 투룸에서 다시 월세 반지하 방으로 돌아갔다.

1000명 백과사전 들고 무작정 중국행

중국에 진출한 건 신문 기사를 보고서다. 박찬호와 류현진 등을 스카우트한 미국 스포츠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인터뷰였다. “나는 선수들을 키울 능력은 없지만, 훌륭한 선수들을 소개하는 것은 재미있다. 에이전트는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뒷면엔 MBC가 드라마 ‘대장금’을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저도 배우 키우기에 실패했잖아요. 근데 협상은 잘 하니까 한국 배우를 중국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인기를 끌었던 장동건은 중국 정장 브랜드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배경렬 대표는 당시 중국 프로젝트로 처음 번 돈 30만 위안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사진 본인제공]

배경렬 대표는 스케줄이 7시간 밖에 없었던 이민호를 전세기에 태워 불발될 뻔했던 중국 팬미팅을 진행했다. [사진 본인제공]
배경렬 대표는 매니지먼트 사업 실패 후 2011년 무작정 명함 2000장을 들고 중국으로 갔다. 사진은 2015년 상하이 중국 드라마 영화 박람회장 앞에서. [사진 본인제공]

2011년 ‘니하오’도 몰랐던 그는 명함 2000장을 들고 중국으로 갔다. 통역 1명을 데리고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열린 드라마·영화 박람회에 가서 3일 내내 명함만 주고받았다. 해병대에서 배운 ‘맥주 500cc 5초 원샷’ 등 각종 기술을 활용해 ‘꽌시’(關係)를 구축한 끝에 6개월 만에 첫 계약을 따냈다. 뒤이어 성사시킨 계약으로 중국에서 처음 돈을 받았다. 그는 “그때 받은 30만 위안(약 5500만원)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말 사드(THAAD) 사태가 터졌다. 중국 정부는 한국 콘텐트 방영 금지 등으로 보복에 나섰다. 그가 중국 예능에 출연시킨 유명 가수는 모자이크 처리됐고, 그가 투자해 공동제작 중이던 드라마 촬영팀은 “내일 당장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쫓겨나다시피 했다. 5년간 중국에서 벌어 대부분 공동제작에 투자한 수십억 원은 죄다 증발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까지 터졌다.

또 다른 한류의 꿈

그때 숏폼 영상 플랫폼 틱톡을 접했다. 지난해 후배네 식당에서 시험 삼아 라이브 방송을 했다가 주문 16개를 받았다. 쇼호스트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니 광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망했는지 물건이나 팔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그에겐 또 다른 기회였다. 늘 무대 뒤에만 있던 그가 막상 카메라 앞에 서기는 쉽지 않았다. 우연히 공고를 보고 강사 경진대회에 도전한 이유다.

배 대표는 또 다른 한류를 꿈꾸고 있다. 그는 “한국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중국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서 한국의 상품과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틱톡을 해보니 에이전트 일과 비슷했다”면서다. “안 해서 후회하는 것보단 뭐라도 해보는 게 낫잖아요. 또 어떤 시련이 와도 제 도전은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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