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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영정사진의 비극…왜 엄마는 아이와 죽음 택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故 ○○○(6세)’ ‘故 ○○○(40대)’ ‘故 ○○○(30대)’
세 개의 영정엔 얼굴도 이름도 없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한 켠의 분향소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사진 대신 얼굴의 실루엣만 있었고 그 아래에 익명의 이름 석자, 나이, 살던 동네와 장애 유형이 적혀 있었다. 딱 붙어 있는 모습은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는 듯했다.

[이슈추적]

 2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단체들은 23일 장애인 가정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 석경민 기자

2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단체들은 23일 장애인 가정의 비극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 석경민 기자

급하게 만들어진 듯한 분향소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이 지난 23일 설치한 것이다. 그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두 가족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영정사진을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단체 관계자는 “이 비극은 모든 장애인 가정이 겪는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삼각지역을 택한 건, 대통령과 가까운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연대 측은 전했다.

“또 다른 나의 자식과 친구 잘 가시게.”
분향소에 조문한 이들은 포스트잇에 추모의 글을 적어 영정 위에 붙였다. 6살 사망자 옆엔 누군가가 딸기맛 풍선껌과 뽀로로 비눗방울 장난감을 놓고 갔다.

성동구에서 지난 23일 숨진 6살 발달장애 아동의 영정사진 옆에 그를 추모하기 위한 물품이 놓여있다. 석경민 기자

성동구에서 지난 23일 숨진 6살 발달장애 아동의 영정사진 옆에 그를 추모하기 위한 물품이 놓여있다. 석경민 기자

#두 가족의 이별

영정 속의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비슷한 이유로 숨졌다. 서울 성동구에 살던 40대 여성은 발달장애를 겪는 6살 아들과 투신했다. 인천 연수구의 30대 딸은 60대 엄마에 의해 숨졌다. 딸은 뇌병변 1급 장애를 갖고 있었고 최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딸을 떠나보낸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엄마는 아들의 신고로 출동한 구급대에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딸과 함께 수면제를 먹은 엄마는 뇌병변 장애로 누워서 생활하는 딸을 거의 혼자서 돌봤다고 한다. 30년간 보살핀 딸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자 세상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경찰은 엄마에게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가던 엄마는 “딸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너무 미안하다. 같이 살지 못해서…”라고 울먹였다. 법원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엄마의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을 기각하면서 여성의 안전을 우려한 법원은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30여년간 돌보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60대 A씨가 25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30여년간 돌보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60대 A씨가 25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의 40대 엄마는 발달장애인 6살 아들을 키우다 우울증을 앓게 됐다. 사고 당시 남편은 다른 자녀와 외출 중이었다. 엄마는 아들은 발달장애 아동으로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수학교나 관련 시설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정확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발달장애 자녀를 둔 다른 부모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도 자녀가 발달 장애 판단을 받아도 장애 등록을 하지 않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다. 장애를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고, 장애 등록을 해도 큰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오래 버텼구나”

두 가족의 비극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족들에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면서도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닌 일”이다. 발달장애 중학생 자녀를 둔 서모씨는 “저런 뉴스를 보면 ‘오래 버텼구나’라는 생각부터 든다”고 말했다.

서씨는 “우리 애는 빌려야 할 책 제목을 혼잣말로 말했다가 도서관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그날은 장애인의 날이었다”고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런 기억이 쌓이면 사회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고 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면 부모도 발달장애인이 된다. 모든 차별과 시선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그 과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나아질 줄 알았는데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면 마음이 꺾인다. 애가 싫고, 밉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싫어 자살 충동을 느낀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이영옥(한지민씨)'의 쌍둥이 언니로 발달장애를 겪는 '이영희(정은혜씨)'가 등장한다. 영희의 등장 초반,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드라마 속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발달장애인 가정이 겪는 현실을 비교적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들의 블루스' 영상 캡쳐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이영옥(한지민씨)'의 쌍둥이 언니로 발달장애를 겪는 '이영희(정은혜씨)'가 등장한다. 영희의 등장 초반,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드라마 속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발달장애인 가정이 겪는 현실을 비교적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들의 블루스' 영상 캡쳐

중학생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한 엄마는 “끝이 안 보인다”고 막막함을 호소했다. 자녀의 교육과 치료에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서 증세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최근 아이가 특수교실 수업 시간에 본인 머리를 스스로 때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다.

엄마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더 퇴행하는 모습이라 느껴지니까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만큼 노력한들 얼마나 나아질까,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면 불쑥불쑥 안 좋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복지 제도와 정부 지원이 개선되고 있는데도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김경양 서울시 장애인 의사소통권리 증진센터 센터장은 “결국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해야 한 가정의 극단적 선택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끝 없이 격리된 삶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분향소에 붙은 추모글. 석경민 기자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분향소에 붙은 추모글. 석경민 기자

“삶을 지탱할 수 없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다.” 분향소에 적힌 추모의 글에는 처지라는 단어에 작은 따옴표가 있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족들이라면 이해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가족들은 그들의 ‘처지’를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고 책임질 의무가 오로지 한 가정에만 있는, 사회적 ‘돌봄의 부재’를 느끼는 삶”이라고 입을 모았다.

25세 발달장애 자녀를 둔 김모(57)씨는 생업이었던 간호사를 포기했다. 지난 25년간 모든 사회적 인연은 끊어졌고 가족 모임조차 마음 편히 다녀온 적이 없다고 했다. 자녀와 하루도 떨어질 수 없는 삶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김씨는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발달장애 자녀와 둘이 온종일 있으면 다른 모든 세계와 단절된다. 아이한테도 보호자한테도 조금이나마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EU(유럽연합)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70여명이 참여한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의 한 작품. 엄마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휴먼에이드·휴먼에이드포스트

202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 EU(유럽연합)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70여명이 참여한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의 한 작품. 엄마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휴먼에이드·휴먼에이드포스트

22세 발달장애 자녀를 둔 허모(53)씨는 “아이가 사회에서 격리된 상황은 끝이 없다. 국가에서 우리를 조금이라도 봐줬으면 그런 일이 생겼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를 매일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격리’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황윤의 가톨릭대 특수교육과 연구원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 정책은 대부분 시혜적 복지인데, 이를 넘어서야 한다.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나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김유리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발달장애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모든 육아의 책임은 오로지 가족의 몫이 된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 역시 발달장애 아동뿐 아니라 가족이 전부 겪는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장애인도 성인이 돼서 같은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청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포용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사회에 나가려는 장애인 가족의 노력과 함께, 장애인들이 공공시설 등에서 부산스럽거나 다른 행동을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비장애인 가족들의 노력과 포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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