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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윤석열 vs ‘운’석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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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지 80일, 취임부터는 20일 정도가 지났다. 주변엔 “아직 그것밖에 안 지났나. 1년은 된 거 같다”는 이들도 꽤 많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다사다난했다는 뜻이리라. 당선 직후엔 정말 아슬아슬한 장면이 많았다. “정말 무속 때문이냐”는 뒷말이 돌았던 용산으로의 대통령실 급행 이전, 숱한 논란을 낳은 내각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인선으로 하루하루가 실점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고전했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다. 새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국민들의 심리, 취임 컨벤션 효과에다 최근 요란하게 마무리된 한·미 정상외교가 힘을 보탰다.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검찰총장에서 1년 만에 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정치입문부터 대선승리, 최근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단계마다 고비마다 하늘이 돕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조연들의 활약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시중엔 “정말 운이 좋다. 윤석열이 아니라 운(運)석열”이란 말까지 돈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 상승세는
야당의 무능·자멸이 만든 측면도
시행착오 그만, 실력·내공 쌓아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드라마는 국민의힘 무혈입성으로 시작됐다. 대통령 탄핵과 기록적인 총선 참패로 초토화된 당에 그를 견제할만한 변변한 경쟁자들이 있을 리 없었다.

그다음은 ‘전임자 운’이다. 윤 대통령을 발탁했던 전임자는 당선의 최고 공신이기도 하다.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로 점철된 5년간의 국정운영은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였다. 대선을 지배했던 압도적인 정권심판론이 없었다면 승부는 어찌 됐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본 궤도로 끌어올린 이번 한·미 정상회담도 사실은 전임자의 작품이다. 쿼드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교섭을 전 정부가 진행했다. 윤석열-바이든이 던진 ‘동맹 재건’의 화두는 지난 5년간의 “(대북)굴종외교”(윤 대통령의 표현)와 극적으로 대비되며 지방선거 직전 새 정부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쯤되면 전임자는 윤 대통령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수준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상대도 잘 만났다. 경쟁자는 대장동과 법인 카드 의혹에 발목이 잡히며 윤 대통령에게 승리를 헌납했다. 별다른 네거티브 소재가 없던 윤 대통령에겐 부인 관련 문제가 최대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그런데 경쟁자의 부인이 얽힌 법인카드 스캔들 한방으로 부인 열전은 도긴개긴, 도토리 키재기가 돼버렸다. 게다가 경쟁자는 ‘방탄 출마’ 비판 속에서도 대선 패배 2개월 여만에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과거 현역 대통령과 맞붙었던 경쟁자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힘을 비축한 뒤 국정운영의 강력한 견제자로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경쟁자는 야당 텃밭에서의 승리도 장담 못 하는 만신창이 신세다. 살아 돌아와도 윤 대통령에겐 큰 위협이 되기 어렵다.

‘야당 운’은 말조차 필요없을 정도다. 위기 때마다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 윤 대통령을 구해냈다. ‘서오남’(서울대·50대·남자)이란 신조어를 낳았던 윤 대통령의 무안배·무배려 인사와 문제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버티기로 민심이 흉흉한 시점에 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처리 강행으로 스스로 점수를 까먹었다. 중진 의원의 성 비위 문제가 터지며 당 지지율이 폭락했다. 어디 그뿐이랴. ‘윤석열 대통령실’의 요직인 총무비서관에 기용된 전직 검찰 직원은 “생일빵에 화가 나서 여직원에게 ‘뽀뽀해주라’라고 했던 건 맞다”고 인정해 논란을 키웠다. 인사 검증 기능이 한동훈의 법무부로 넘어가며 인사 추천·검증 기능을 모두 검찰출신이 장악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빚어졌다. 야당으로선 검찰공화국의 폐해를 부각할 대형 호재였지만 느닷없는 ‘86용퇴론’이 당 내홍으로 번져 야당은 이번에도 대통령의 도우미 역할을 면치 못했다. 과거 정권에선 크게 번졌을 ‘북한 미사일 정국에서의 대통령 음주 논란’도 야당 후보들이 지핀 엉뚱한 김포공항 이전 논란에 덮이는 분위기다.

전임 대통령, 대선 경쟁자, 야당 지도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윤 대통령 초반 국정운영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정치 신인 대통령의 뜬금없는 실수와 시행착오까지 야당이 다 덮어주고 있다. 하지만 5년간의 국정을 이런 행운에만 의지해 운영할 수는 없다. 전임자의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행운으로 집권했던 소위 ‘촛불정권’이 지난 5년간 나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그 생생한 증거다. 운을 믿기보다 내공과 실력을 쌓고, 자기 주장만 우기기보다 제대로 된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