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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갈 길 먼 일상회복과 의료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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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이제 국민은 코로나19에 무감각해졌고 일상의 관심에서도 많이 멀어졌다. 북한의 코로나 대유행 발생, 연이은 세계 각국의 재유행 경고, 새로운 변이바이러스 등장 위험이 있어도 코로나 사태는 사실상 남의 나라 일처럼 비친다.

이제 감염병 관리가 아니라 경제 회복이 국민의 주요 관심사다. 한국리서치가 이달 초 발표한 코로나 인식 조사를 보면 코로나 방역보다 경제 회복 및 활성화가 우선이라는 응답이 57%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코로나 방역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응답은 2020년 8월에 85%였으나 이번에는 38%까지 감소했다.

코로나19 올여름 재유행 가능성
전문가 중심 대응체제 마련해야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국민 여론과 의견은 중요하며 경청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 특정 정치적 캠페인과 지나친 낙관적 전망만을 강조하는 지난 정부의 섣부른 방역 완화 정책은 잘못이며 비과학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 대유행의 여러 고비마다 “터널의 끝이 보인다” “코로나는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질병이다” 등 정부발 가짜뉴스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직도 매일 수십 명이 코로나로 사망하고 있다. 코로나는 끝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거리두기 중단이 방역을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감염 예방과 통제를 위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거리두기의 대안으로 ‘과학 방역과 의료 대응’이라는 새로운 정책 개념을 제시한 것이 윤석열 정부가 ‘코로나 비상 대응 100일 로드맵’의 핵심 키워드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 국민 표본 코로나 항체 형성 조사, 거리두기의 감염예방 효과 분석 및 개선 방안 도출을 시작으로 코로나 역학 및 의료 정보 등 코로나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정책 연구 활용 등이 100일 로드맵에 담긴 실행 과제다. 의료 대응 방안으로는 고위험 취약 집단의 신속한 치료제 투여를 위한 패스트 트랙 시행과 의료 대응 역량 강화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과학 방역을 한다지만 빅데이터 구축과 관련 생태계 구축에만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제다. 더구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정책 결정 근거로 사용할 수 있더라도 과학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정책적 불확실성 해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 의료 인프라 구축과 의료 대응 역량 확대도 지난 수십년간 정부와 의료계가 추진해 왔지만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100일 로드맵이 수사적인 정치 구호와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방역 당국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4~5개월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코로나 재유행 대비다. 무엇보다 올여름 재확산과 변이바이러스 등장 상황에 대한 대응책 점검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코로나 방역 정책 의사결정 거버넌스를 조속히 개편해야 한다. 기존 청와대 방역기획관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산하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

대신 대통령 직속으로 감염병위기대응위원을 신설하고, 보건복지부 국가감염병 임상위원회와 질병청 감염병위기대응 전문위원회를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조직으로 신속히 전면적으로 개편하자. 그리고 ‘코로나 예방 접종 피해보상지원센터’를 설립해 백신 접종 피해자에게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지원해야 한다.

코로나 방역과 국민 의료를 책임져야 할 복지부 장관은 여전히 공석이다. 코로나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보건의료 분야가 홀대받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신임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에게 거는 기대와 걱정도 클 수밖에 없다. 일상회복과 의료정상화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