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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 걸린 임금피크제, 덜 깎고 짧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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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 이후 후폭풍이 계속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전광판의 고령자 고용장려금 옥외광고. [연합뉴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 이후 후폭풍이 계속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전광판의 고령자 고용장려금 옥외광고. [연합뉴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을 계기로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폐지 투쟁이 일 조짐이다. 대법원은 지난 26일 정년연장과 같은 합리적 이유 없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데 대해 제동을 걸었다. 그렇다고 임금피크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임금체계 중 하나로 그 정당성을 인정했다.

노조는 임금피크제 폐지를 위해 소송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그러나 소송에 나서더라도 법원이 임금피크제의 취지와 제도 자체를 인정한 이상 이를 뒤집고 무효로 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비슷한 판결은 계속돼 왔다. 가장 최근엔 서울남부지법이 대법원 판결 이튿날인 지난 27일 한국전력거래소 직원 3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 승소로 판결했다. 정년을 연장하면서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취지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소송전을 벌여도 실익을 얻기 어렵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 때문에 노조의 실제 초점은 임금 삭감 규모를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과도한 삭감’은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제시한 임금피크제의 효력 기준 중 하나다. 따라서 임금피크제 무효화보단 삭감률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과 조정작업이 확산할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마자 회사 측에 ‘임금피크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노조는 회사 입장을 들은 뒤 삼성그룹 전체 노조와 연대해 향후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노조도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 폐지를 회사에 요구해왔다”며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폐지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부분 기업은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업무량이나 업무형태, 근로시간, 직무를 조정한 경우는 드물다. 특히 연구직과 같은 전문가로서의 직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는 삭감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이 문제가 임금피크제 무효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슈화하면 회사 내 갈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LG전자 사무직 노조는 “삭감 시작 연령을 높이고, 삭감률을 조정하는 협상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LG전자는 58세부터 3년 동안 10%씩 임금을 깎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당초 55세이던 삭감 시작 연령을 57세로 늦추고, 삭감 규모도 매년 5%씩 줄이도록 조정해 적용하고 있다. LG전자보다는 총 삭감 규모가 작다.

현대자동차는 59세에 임금을 동결하고, 정년퇴직 연령인 60세에만 10% 깎는다.

이처럼 국내 대부분 대기업은 대체로 정년(60세) 이전 2~4년 동안 임금을 삭감하고, 그 규모도 매년 5~10%로 총 삭감률이 삭감 이전에 비해 최대 30%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기준 중 하나가 ‘과도한 삭감’이다. 하지만 법리적으로 적정한 삭감률을 내놓기는 힘들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삭감률의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 데, 이때 중요한 고려사항은 ‘사회적 통념’이 될 전망이다. 통상임금을 비롯한 대부분의 임금 관련 판결에 등장하는 기준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대학원장)는 “삭감되기 전 임금에서 3분의 1 이상 깎으면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 삭감 기간이 상당수 기업이 적용하는 기간보다 길거나, 삭감 수준이 3분의 1 이상이면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럴 경우 노조가 소송에 나서지 않더라도 근로자가 정년퇴직한 뒤 소송을 제기하면 법정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임금 채권 유효기간은 3년이다. 따라서 퇴직한 근로자가 승소하면 3년 치 임금과 퇴직금을 재산정해 지급해야 한다.

특히 근로자 승소로 판결이 나면 해당 회사는 임금피크제 무효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따라서 기업도 삭감률 재산정에 노조와 협의·협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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