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한지원이 고발한다

반지성주의 표본 조국·유시민…'비이성적 열광' 뿌리는 이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언급한 반(反)지성주의 비판은 타당했다. 투기판에서나 볼 법한 ‘비이성적 열광’이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를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시장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이 투기 과열을 경고할 의무가 있듯이, 민주주의 수호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 역시 정치의 이상 징후에 경고음을 울릴 책무가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의 비판은 현상만 지적하고 원인을 찾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자칫 지성적 엘리트와 우매한 대중의 대결로 곡해될 여지도 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는 취임사 낭독 직후 “민중은 개‧돼지란 소리냐” “너는 지성이고 우리는 반지성이냐” 등의 비아냥이 쏟아지기도 했다. 반지성주의 비판이 엘리트주의로 해석되면 반감만 커진다.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다고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 [방송 화면 캡처]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다고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 [방송 화면 캡처]

나는 이 글을 통해 윤 대통령이 언급은 했지만 차마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 비판의 나머지 부분을 이야기하려 한다. 반지성주의를 정치의 중심에 심어 놓은 지식인들에 관해서다.

매카시즘 닮은 조국의 토착 왜구 선동 

“이 나라에서 그토록 좋은 대접을 받아온 사람들이 벌인 반역 행위.” 1950년 2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서 조셉 매카시(1908∼57)가 한 연설이다. 이 한 마디로부터 미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라 할 1950년대 빨갱이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타깃은 주로 미국 사회에 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던 지식인들이었다.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자유의 낙원이라 불렸던 미국이 어떻게 저 한 마디에 단숨에 뒤집혔는지 탐구했다. 반지성주의 대중문화가 원인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복음주의, 기업가의 영향력, 평등주의 교육 등을 통해 대중문화에 지성과 지식인에 대한 반감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자, 이제 오늘날의 한국 사회로 시선을 돌려보자.

“일제 징용 대법원 판결 부정하면 ‘친일파’라 불러야 마땅.”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인 2019년 7월에 쓴 페이스북 글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서울대 법대 교수인 그의 이 글로 이른바 ‘토착 왜구’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사실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에는 깊게 토론해야 할 쟁점이 많았다. 법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외교적으로도 세심하게 앞뒤를 살펴야 했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선동을 계기로 토론은 억압됐고, 비이성적 열광에 사로잡힌 반일 캠페인과 친일파 낙인찍기가 벌어졌다.

조국 전 장관의 SNS 글.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비난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주장했다. [SNS 캡처]

조국 전 장관의 SNS 글.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비난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주장했다. [SNS 캡처]

어떻게 이런 사태가 가능했을까? 호프스태터가 말한 반지성주의 문화가 한국에도 뿌리내리고 있던 것일까? 나는 대중문화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독특한 지적 계보가 저 비이성적 열광의 배후라고 생각한다.

진보 진영 역사관이 조국 선동의 뿌리 

조 전 장관의 친일파 선동에는 이론적 배경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널리 알린 분단체제론이다. 이 이론은 한국 근현대사를 해방 이전의 식민지 모순과 해방 이후의 분단 모순으로 단순화한다. 두 모순은 친일파로 연결되고, 그들의 후예인 보수 세력의 기득권으로 공고해진다. 이 이론대로라면 분단체제 종식을 위해 친일파 후예를 청산하고, 남북 화해 국면을 열어야 한다. 보수에 맞서 단결을 주장하는 진보의 담론도, 또 2020년 등장한 '총선은 한‧일전'이란 구호도, 모두 이 역사 인식이 전제된 것이다. 하지만 분단체제론은 세계경제사로 보나, 냉전사로 보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편협한 역사 인식이다. 그런데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비과학적 역사관을 가지고 대중을 비이성적 열광으로 몰아넣는다.

대표적 반지성주의자 유시민 

미디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사례는 한국적 반지성주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가 21세기의 으뜸가는 반지성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호프스태터는 반지성주의가 지성에 무조건 적의를 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산한다고 주장했다. 곡학아세와 내로남불로 무장한 지식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대중의 지성 일반에 대한 혐오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중국 역사학자 쉬지린(許紀霖)은 지식인을 지적 책임성을 갖추고 공익적 목표에 이바지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유시민씨는 시쳇말로 ‘사짜’라 하겠다. 우선 지적 책임성이 없다. 그가 출연한 방송프로그램 PD가 “(유씨가 한 얘기는) 나중에 찾아보면 상당수가 틀린 이야기”라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다음으로 그는 ‘어용’을 당당하게 선언할 정도로 공익적 목표를 대놓고 포기해 버린다. 그의 지식은 애초부터 편파적이다. 예를 들면 그는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의 PC 반출을 증거보존용이라고 주장했다. 두고두고 인용될 만한 궤변이다.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방송 화면 캡처]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방송 화면 캡처]

물론 그의 행동은 일탈이 아니다. 조 전 장관과 비슷한 지적 계보 속에 있다. 민주주의를 진보의 권력 쟁탈전으로 이해하는 독특한 민주주의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보수 청산을 민족사의 과제로 이해하는 분단체제론과 비슷하다. 1970년대에 재야로 불린 반독재 지식인 그룹부터 민주화 대중운동의 최전선에서 섰던 86세대 지식인들 모두 이런 민주주의관을 공유한다.

진보 지식인 타락이 민주주의 위기 불러 

진보 진영 지식인들은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민주주의의 거대한 승리로 평가한다. 지식인선언네트워크라는 진보 성향 교수단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촛불 정신’ ‘촛불이 묻는다’ 등의 표현이 담긴 성명을 발표한다. 하지만 따져보자. 탄핵의 이유는 국정농단이었고, 국정농단의 구조적 원인은 대통령제 본연의 제왕적 권력이었다. 촛불 집회는 원인의 해결을 요구하지 않았고,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는 역으로 대통령 권력을 키웠다. 즉 권력이 보수에서 진보로 넘어갔을 뿐, 제도와 규범으로서 민주주의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한편, ‘집합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는 시민단체의 상태는 지식인이 주도하는 반지성주의 운동의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참여연대는 보수 정부에서는 ‘권력 감시’를, 진보 정부에서는 ‘권력 참여’를 실천했다. ‘박근혜 퇴진 비상 행동’에 참여했던 수백 개의 진보적 사회단체들은 보수에 맞서 싸우는 게 민주주의라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편파적 지식인 노릇을 지금도 한다. 숨겨진 사익이 동기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백낙청식의 편협한 역사관과 권력 쟁탈전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관에 따른 행동이다. 민주주의 연구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레비츠키는 "편견과 비합리적 선동으로 당파적 갈등을 극단적으로 키우는 정치가 민주주의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지적은 주로 미국 공화당과 그 주변 지식인을 향했는데, 한국에서는 반지성적 선동으로 갈등을 극단화하는 역할은 더불어민주당같은 진보 진영 정당과 그 주변 지식인들이 하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비합리적 정치적 선동에 의한 대중 극단적 여론 형성이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비합리적 정치적 선동에 의한 대중 극단적 여론 형성이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다고 주장했다. [중앙포토]

한국의 반지성주의에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지적으로 퇴보하고 도덕적으로 추락한 지식인의 타락이 반지성주의를 확산했다. 이런 맥락에서 반지성주의 비판은 막연한 문화비판이나 무례한 엘리트주의가 아닌 타락한 지식인들에 대한 지적 논쟁이어야 한다.

군부독재만큼 위험한 반지성 포퓰리즘 

반지성주의가 확산하면 민주주의가 위험해진다는 건 이미 오래전 정형화한 이론 중 하나다. 로마 공화정을 분석한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폴리비오스는 민주정에서 시민이 이성을 포기할 때 폭민(暴民)이 등장해 민주정을 끝장낸다고 주장했다. 19세기 고전파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정부가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대중의 감정에 좌지우지되면 언제든 다수의 전제정(tyranny of the majority)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치학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를 봐도 군부 독재보다 반지성주의로 힘을 얻은 포퓰리즘이 21세기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제대로 된 지식인 운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