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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6 사려면 18개월 기다리세요" 더 길어졌다, 출고대기 비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용인시 현대자동차 신갈출고센터에서 출고를 앞둔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용인시 현대자동차 신갈출고센터에서 출고를 앞둔 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모(54)씨는 최근 전기차를 구매하기 위해 기아 판매 대리점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기아 전기차 EV6를 지금 주문하면 1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어서다.

기아 영업사원은 “EV6는 어떤 트림을 선택하든 차량 인도까지 최소 18개월을 대기해야 한다”며 “만약 차량 외관을 무광 회색(문스케이프 매트 그레이)으로 선택하거나 특정 선택사양(컨비니언스 패키지)을 고르면 이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컨비니언스 패키지는 전자식 룸미러나 하이패스 자동결제, 디지털 키 같은 ‘사실상 필수’ 아이템이다. 박씨는 결국 신차 구매를 포기하고 제네시스 GV60 장기렌터카를 계약했다.

주요 신차 주문 후 평균 인도 기간. 그래픽 전유진 기자

주요 신차 주문 후 평균 인도 기간. 그래픽 전유진 기자

중국 도시 봉쇄가 결정적 악영향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생산 차질이 계속되면서 완성차 출고 지연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주로 전기차·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출고 대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박씨가 애초에 관심을 가졌던 EV6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EV6의 평균 대기기간은 15개월이었다.

제네시스도 마찬가지다.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그동안 현대차·기아보다는 출고 대기기간이 짧은 편이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부품을 수급한다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제네시스에 먼저 부품을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는 모습이다. 이날 기준으로 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은 출고 예상기간이 11개월이다. 두 달 전보다 2개월가량 늘었다.특정 선택사양(2열 컴포트 패키지)이나 오디오(렉시콘 사운드 시스템)를 선택한다면 1년 이상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G80(3→6개월), GV70(6→9개월) 등 제네시스 주요 차종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기아 EV6는 지금 주문해도 이르면 18개월 후 차량을 받을 수 있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의 기아 EV6 생산 라인. [사진 기아]

기아 EV6는 지금 주문해도 이르면 18개월 후 차량을 받을 수 있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의 기아 EV6 생산 라인. [사진 기아]

출고 지연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대만 TSMC 등 반도체업체가 증설에 나섰지만 그 효과는 3년 뒤에나 나타난다”며 “올해부턴 점진적으로 완화하고는 있지만 수급난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앞으로 3~4년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동차에 적용하는 첨단기술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ADAS) 구현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 원가는 160~180달러(약 20만~23만원) 수준이지만, 한 차원 높은 자율주행을 구현하려면 1150~1250달러(약 145만~158만원)짜리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선 뭉치로 불리는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 재고 소진으로 출고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은 자동차 와이어링 하니스. [사진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캡처]

배선 뭉치로 불리는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 재고 소진으로 출고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은 자동차 와이어링 하니스. [사진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캡처]

볼트EV도 대기기간 4→12개월

여기에 자동차의 점화·충전 등 용도로 사용하는 배선뭉치(와이어링 하니스) 공급 차질까지 겹쳤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한 방역 정책의 하나로 한 달 가까이 중국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다. 제네시스 GV60·GV70EV·GV80을 제조하는 울산2공장은 중국의 도시 봉쇄로 인해 감산을 하기도 했다.

국내 전기차 수요 확대도 출고 지연의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 인피니언에 따르면 전기차 1대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는 내연기관 차량의 두 배가량 된다. EV6를 비롯해 현대차 아이오닉5, 포터EV, 제네시스 GV60 등이 모두 1년 이상 출고 적체 사태를 겪고 있는 배경이다.

르노코리아는 부품 공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부산 강서구 신호동에 자리한 르노코리아 공장. [사진 르노코리아]

르노코리아는 부품 공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진은 부산 강서구 신호동에 자리한 르노코리아 공장. [사진 르노코리아]

다른 완성차 업체도 비슷하다. 한국GM의 전기차 볼트EV는 지금 주문하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지난달 사전 계약했다면 4개월 만에 받을 수 있던 전기차다. 한국GM 측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코로나19, 중국 봉쇄 등 글로벌 부품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았던 르노코리아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르노코리아는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에서 반도체를 직접 조달받으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차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XM3(1→3개월)·QM6(1→3개월) 등 출고 기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부품 공급과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라며 “7월 정상화가 목표”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대기기간이 1개월로 국산차 중 가장 짧은 편이다. 다만 수출 차량의 경우 출고 적체가 1.5개월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쌍용차 측은 “부품 수급 차질이 출고 지연의 원인”이라며 “수출 물량을 조절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소비자에게 차량을 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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