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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박찬욱·봉준호가 2022년 칸에…20년 뒤 한국영화 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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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배우 송강호가 75회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다. AFP=연합뉴스

배우 송강호가 75회 칸 영화제에서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다. AFP=연합뉴스

오월의 칸은 흥미로웠다. 21편의 경쟁 작품 중 동아시아 지역의 영화는 단 두 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미국의 자본으로만 제작된 영화 역시 두 편이었다.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과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쇼잉 업'. 이란에서 온 사에드 루스타이 감독의 '레일라의 형제들'을 제외하면 16편은 합작 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유럽 영화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선정 사이에 한국 영화가 두 편이나 있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하지만 2편을 선택한 것이 ‘한국 영화’ 자체만을 의식한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8년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기생충'보다 한 해가 빨랐다. 더군다나 '브로커'에는 '기생충'의 주인공 송강호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칸이 이 영화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탕웨이가 등장한다. 결국 두 편의 한국 영화는 칸이 의식하는 한중일 혹은 동아시아 영화 리스트로 확장된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브로커' 속 한 장면.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의 첫 한국 영화로,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브로커' 속 한 장면.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의 첫 한국 영화로,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CJ ENM

이것은 한국 영화 산업의 현재 지형이다.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것이 올해 칸의 한국 영화다. 피상적으로 언급되는 K-컨텐츠의 유행과는 다르다. 팬데믹과 함께 만개한 OTT 시장의 활성화로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동시대성’을 갖췄다. 하지만 국제적인 협업인 영화 제작은 단박에 동시대성을 갖기는 어렵다. 고레에다 감독은 오래 전부터 송강호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는 영화의 구상은 2016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11월에 일본에서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 개봉 시사회를 열었을 때 고레에다 감독이 함께 하였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함께 칸에 입성하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2016년에 '아가씨'를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보인 후 영국 BBC에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제작했다. 2018년 11월에 영국과 미국에서 선보인 이 6부작 드라마는 박찬욱 혹은 한국 영화계가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만이 참여한 결과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 TV크래프트 어워즈(BAFTA)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촬영·조명상을 수상한 김우형 촬영 감독이 함께 한 결과였다. 박찬욱 감독이 탕웨이를 떠올리며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가까이에 김태용 감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영화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2019년 5월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9년 5월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포토콜에서 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0년 '기생충'으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자리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언어의 장벽을 넘는 한국 영화의 행보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2022년 칸은 이러한 결과가 등장한 또 하나의 장소였다. 한국어와 탕웨이의 중국어가 통해야 하는 '헤어질 결심'과 일본어와 한국어가 통해야 하는 '브로커'의 제작 현장은 한국 영화라는 이름으로 영화라는 보편성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수상 결과는 이러한 시도에 호응한다.

하지만 조금 더 내다 볼 필요가 있다. 1인치를 넘어서는 여러 제작의 방식은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것 아니라 예외적인 개인을 통해 이룩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량 있는 감독들이 국내를 벗어나 새로운 보편성을 만들어가는 시도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미국에서 SF를 제작한다. 그것은 익숙한 현실은 아니었다. 한국 영화가 칸의 경쟁 부문에 등장한 것은 21세기였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2000년 칸에서 선을 보였고, 2002년에는 '취화선'으로 올해 박찬욱 감독이 수상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임상수의 영화가 칸의 경쟁 부문에 올랐고,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칸의 다른 부문에서도 한국영화의 상영은 늘어갔다. 칸은 경쟁 부문만이 공식 섹션인 ‘주목할만한 시선’이 있고, 운영 주최는 다르지만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처럼 영화제 기간 동안 함께 하는 독립 프로그램들이 있다. 올해 비평가 주간의 폐막작으로 상영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나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초대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의 '헌트' 역시 칸과 한국영화가 어떤 친연성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의 한국영화는 지난 20년 간이 축적된 결과다.

영화 '살인의 추억'. 중앙포토

영화 '살인의 추억'. 중앙포토

문제는 항상 다음이다. 칸의 경쟁 부문만을 스포츠 중계하듯이 소개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새로운 박찬욱이나 봉준호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등장한 해는 2003년이었다. 그 무렵 한국영화는 새로운 감독들의 대거 등장과 함께 빅뱅을 일으킨다. 올해 칸의 경쟁은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로 대변된다. 우리는 이제 막 칸의 경쟁 부문에 영화를 선보이던 그 시절로부터, 새로운 감독들이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던 그 시절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닐까. 독립영화는 물론이고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녹록하지 않은 현실은, 지금의 한국 영화계였다면 '올드보이'나 '살인의 추억'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를 묻게 된다.

올해 칸을 통해 드러난 한국 영화의 여러 면모를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영화는 밖으로 나가는 동시에 안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내는 여력과 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 두 번째 황금종려상이든 새로운 감독을 위한 황금 카메라상이든 새로움을 위한 오월의 칸을 맞이할 수 있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새로운 영화가 있을 때 우리는 칸에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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