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전통적인 꽃·과일부터 만화 캐릭터까지 담채화로 은은하게 그려볼까

중앙일보

입력

먹색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채색을 보조적으로 써서 그린 그림인 수묵 담채화(水墨 淡彩畫)는 동양화의 한 종류로, 소중 독자 여러분이 미술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여기서 수묵은 먹으로 짙고 옅음을 이용해 그린 그림, 담채화는 옅게 채색한 그림을 말해요. 물을 많이 사용해서 맑고 투명한 느낌이 강한 담채화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매력이 있죠. 담채화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그려보기 위해 박서현·이유은 학생기자가 경기도 시흥시 배곧동에 있는 동양화 화실 화빈을 찾아 박수빈 선생님과 만났어요.

동양화 물감을 엷게 써서 그린 그림인 담채화는 맑고 투명한 느낌이 특징으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동양화 물감을 엷게 써서 그린 그림인 담채화는 맑고 투명한 느낌이 특징으로,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박 선생님은 소중 학생기자단을 위해 동양화용 물감을 짜놓은 3개의 팔레트, 3개의 물통과 5개의 붓, 한지를 덧댄 화판, 여러 종류의 한지 등 담채화에 필요한 화구를 준비했죠. 언뜻 보면 유화·수채화 등 서양화에서 쓰는 화구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명칭부터 재료·사용법까지 차이가 큽니다.

일단 물감부터 살펴볼까요. 동양화 물감은 호분(胡粉·석회가루)이나 토분(土粉·흙가루) 등에 염료를 착색해 만든 가루인 분채, 안료에 정착제와 응고제를 섞어 접시에 굳힌 안채, 막대 모양으로 굳힌 봉채, 안료에 아교와 정착액을 섞어 튜브에 담은 이채 등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봉채는 색이 맑고, 분채는 여러 느낌을 낼 수 있으며 발색이 오래가는 등 각각 장점이 뚜렷해요. 초보자는 사용법도 쉽고 색을 조합하기 편한 이채를 주로 쓰죠.

(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먹과 붓·벼루, 동양화 화판을 포수할 때 녹여 쓰는 알 아교, 분채에 섞어 사용하는 물 아교, 아교 포수용 아교반수액을 만들 때 쓰는 명반, 동양화 물감에서 흰색에 해당하는 호분, 호분이나 토분에 염료를 착색하여 만든 가루 물감인 분채 2종.

(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먹과 붓·벼루, 동양화 화판을 포수할 때 녹여 쓰는 알 아교, 분채에 섞어 사용하는 물 아교, 아교 포수용 아교반수액을 만들 때 쓰는 명반, 동양화 물감에서 흰색에 해당하는 호분, 호분이나 토분에 염료를 착색하여 만든 가루 물감인 분채 2종.

"취재 전 조사해 봤는데 동양화 물감은 이름이 특이하더라고요." 유은 학생기자의 말에 박 선생님이 설명했어요. "그렇죠. 색상명이 서양화용 물감과는 달라요. 예를 들어 흔히 흰색이라 부르는 색상은 동양화에서는 호분, 노란색은 황, 민트색은 백록, 연두색은 약엽으로 불리죠. 옛날에는 자연에서 물감 재료를 채취했기 때문에 그 물감을 최초로 사용한 지역이나 재료가 물감의 이름이 된 경우가 많아요."

서양화용 붓은 크기별로 호수를 나눠 구분합니다. 동양화용 붓은 소·중·대로 나누긴 하지만 규격화된 크기는 없어요. 대신 용도에 따라 구분해 사용합니다. 흰색에 해당하는 호분을 칠할 때 쓰는 붓, 빨강·분홍 등 따뜻한 느낌의 난색 계열을 채색할 때 쓰는 붓, 초록·파랑 등 차가운 느낌의 한색 계열을 칠할 때 쓰는 붓, 서양화의 그러데이션에 해당하는 바림을 할 때 쓰는 붓, 좁은 면적을 칠할 때 쓰는 얇은 붓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동양화에서는 채색할 때 물감을 붓의 끝까지 먹이기 때문에 붓 안쪽에 물감이 스미는데, 붓을 빨아도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물감 본연의 색을 잘 표현하기 위해 붓을 색깔의 계열별로 나눠서 사용하는 게 좋아요."

동양화용 팔레트와 물통, 붓은 난색용·한색용·바림용으로 구분해 사용한다.

동양화용 팔레트와 물통, 붓은 난색용·한색용·바림용으로 구분해 사용한다.

동양화용 붓과 물감의 이러한 특성은 물통과 팔레트에도 반영돼요. 물통은 난색용·한색용·바림용으로 구분해 사용하며, 팔레트도 난색용·한색용과 이들을 섞을 팔레트로 구분해 쓰죠. 물통과 팔레트가 각각 3개씩 있는 이유랍니다. 또한 착색되면 세척이 어려운 플라스틱 대신 유리·도자기 소재의 물통과 팔레트를 주로 사용하죠. "이건 동양화 붓의 특성 때문이기도 해요. 양·토끼·너구리 등 동물의 천연모로 만들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된 물통이나 팔레트를 쓰면 붓이 상하기 쉬워요."

동양화용 종이도 여러 종류입니다. 두께가 얇아서 수묵화·캘리그라피에 쓰이거나 연습용으로 쓰는 화선지, 일반 화선지보다 두께가 좀 더 두꺼운 옥당지, 한 겹이라 앞이 비칠 정도로 얇은 일합지, 일합장지의 두 배 정도의 두께인 이합지, 세 배 정도 두께인 삼합지 등이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화선지를 연습용으로 쓰고, 이합지에 담채화를 그릴 거예요.

담채화 채색은 가장 연한 색인 밑색을 넓게 펴 바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바림 작업과 선 긋기로 명암과 형태를 표현한다.

담채화 채색은 가장 연한 색인 밑색을 넓게 펴 바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바림 작업과 선 긋기로 명암과 형태를 표현한다.

서양화를 그릴 때 캔버스에 물감이 잘 묻을 수 있도록 젯소로 애벌 처리를 하죠. 동양화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어요. 동물의 뼈와 가죽을 녹인 천연 접착제인 아교와 안료가 잘 안착되도록 돕는 명반(明礬)을 일정 비율로 섞은 뒤, 넓은 붓으로 그림을 그릴 한지 표면에 발라줍니다. 이 과정을 아교 포수라고 하는데, 한지는 물을 빨리 흡수하기 때문에 물감이 쉽게 번지는 걸 막기 위해 꼭 필요하죠. 여기에 초배지에 밀가루 풀을 발라 나무 판넬 위에 붙여 나무의 색소가 한지로 올라오는 걸 방지하고, 그 위에 포수 작업한 한지를 붙여 말리는 과정까지 하면 화판 하나 준비에 대략 3일 정도가 소요된답니다.

동양화용 화구의 특성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제 화판에 그림을 그려볼 차례인데요. 서현 학생기자는 복숭아가 접시에 담긴 '소과도(蔬果圖)'를, 유은 학생기자는 '참외향을 맡다'라는 뜻의 '진과문향(眞瓜聞香)'의 일부를 그려보기로 했죠.

 박수빈(맨 오른쪽) 선생님이 동양화 붓의 특성과 사용법에 대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설명했다.

박수빈(맨 오른쪽) 선생님이 동양화 붓의 특성과 사용법에 대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설명했다.

일단 연필로 스케치한 도안 위에 바탕이 되는 가장 연한 색인 밑색을 넓게 펴 발라야 하는데요. 서현 학생기자의 경우 복숭아 열매 표면의 흰색과 복숭아 잎의 연두색, 유은 학생기자의 경우 참외 열매와 잎의 연두색이 밑색이 됩니다. 흰색은 호분에 물을 많이 섞으면 되고, 연두색은 황토와 약엽을 적당히 섞어야 해요. "동양화 물감은 서양화 물감에 비해 색채 종류가 적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물감을 조합해서 원하는 색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는데, 경험이 쌓이면 익숙해질 거예요. 화판에 채색하기 전에 화선지에 색을 시험해보는 것도 잊지 말고요."(박) 이렇게 물감을 하나하나 조합해 나만의 색을 만드는 것도 담채화의 매력이죠.

고슴도치의 오이 서리를 그린 '자위부과'(위 사진)와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주인공들. 모두 담채화 기법으로 그렸다.

고슴도치의 오이 서리를 그린 '자위부과'(위 사진)와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주인공들. 모두 담채화 기법으로 그렸다.

밑색 입히기가 끝나면 바림 작업으로 부분별 그러데이션을 줘서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합니다. 서현 학생기자는 복숭아 표면에 은은하게 감도는 분홍색을 표현하기 위해 양홍·연지에 호분과 황토를 섞어 분홍색을 만든 뒤 난색 붓으로 복숭아의 윗부분을 채색했죠. 그리고 물을 머금은 바림 붓으로 분홍색을 복숭아의 아랫부분까지 끌고 내려갔어요. 그러자 윗부분은 분홍빛이 돌지만 아랫부분은 흰색과 옅은 분홍색이 절묘하게 섞인 그러데이션이 화폭에 생겨났어요.

"서양화 붓에 비해 동양화 붓이 힘 조절이 어려운 것 같아요." 채색에 열중하던 서현 학생기자가 말했어요. "맞아요.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한 번에 조절이 힘들다는 건 붓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뜻이기도 해요. 꾸준히 연습해서 손에 익으면 선이나 면을 그릴 때 강약이나 물감의 농도 등을 잘 맞출 수 있죠."

유은 학생기자도 흰 줄이 그어진 녹색 참외 껍질을 표현하기 위해 약엽과 군청·녹청을 팔레트에 섞었죠. 그리고 한색용 붓으로 참외의 윗부분을 채색한 뒤 바림 붓으로 그러데이션을 줬어요. 입체감이 생기자 참외 모양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바림 기법은 동양화의 여러 장르에서 쓰여요. 좀 더 짙게 칠하고 싶다면 물감이 마른 후 바림 작업을 반복하세요."

박수빈 선생님은 담채화를 포함한 동양화는 외적인 형태가 아닌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박수빈 선생님은 담채화를 포함한 동양화는 외적인 형태가 아닌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그런데 소중 학생기자단이 그린 담채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보통 그림은 빛의 방향에 따른 명암이 드러나도록 채색하죠. 하지만 담채화에는 색상의 농담과 형태를 표현하는 선이 있을 뿐, 빛을 반영한 명암이 없었죠. "동양화는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묘사하는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서 화폭에 옮기는 걸 중시해요. 지금 여러분이 그린 복숭아·참외 등은 해당 과일을 관찰하고 탐구한 뒤, 본질만 추려서 화폭에 옮긴 거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담채화를 포함한 동양화를 그릴 때는 사진이 아닌, 되도록 실제로 대상을 관찰하면서 그리는 게 좋아요. 사진만으로는 해당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거든요."

도안에서 큰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을 밑색 채색과 바림 작업으로 메운 뒤엔 좀 더 세밀한 부분을 상세하게 채색합니다. 여기서는 복숭아·참외의 잎맥이나 복숭아 꽃술, 참외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 등이죠. 좁은 면적에 세밀한 선을 그릴 때는 붓을 세워 끝의 뾰족한 부분으로 섬세하게 선을 긋습니다. 유은 학생기자는 돼지꼬리처럼 동그랗게 말린 참외 줄기를 그리기로 했는데요. 붓을 살짝 눌러 두껍게 긋다가 끝부분으로 갈수록 속도감 있게 그으면 일필휘지로 참외 줄기를 그릴 수 있죠.

'진과문향'의 일부를 그린 이유은(왼쪽) 학생기자와 '소과도'를 그린 박서현 학생기자.

'진과문향'의 일부를 그린 이유은(왼쪽) 학생기자와 '소과도'를 그린 박서현 학생기자.

큰 면적 채색부터 세밀한 선 긋기까지 차근차근 하다 보니 어느새 소중 학생기자단이 그린 '소과도'와  '진과문향'의 일부가 완성됐어요. 은은한 색감에서 풍겨오는 맑은 분위기가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죠. 우리 눈에 익숙한 서양화 채색 기법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집니다. 흔히 담채화 하면 꽃·과일·풍경 등 전통적인 소재만 그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담채화는 채색하는 방법을 뜻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나 반려견 등 일상적 소재를 그려도 무방하답니다.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서현(서울 일원초 6)·이유은(경기도 위례초 5)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동양화라고 하면 흔히 민화·산수화·풍속화 등을 떠올릴 것 같아요. 이번 취재를 통해 동양화에는 이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는 걸 알고 많이 놀랐어요. 화빈에 전시된 여러 담채화는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동양화와 달라서 신기했어요. 서양화와 동양화의 여러 차이점도 배웠죠. 예를 들어 서양화는 물감으로 캔버스를 덮는 반면, 동양화는 한지에 물감을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서 달랐어요. 또 서양화에 쓰이는 붓은 윤기가 흐르고, 탄력이 있고, 인공적이라면, 동양화에 쓰이는 붓은 윤기가 없고, 탄력이 적고, 천연모를 사용해 만들어요. 그래서 붓을 사용할 때 집중해야 했어요. 동양화가 처음인데도 박수빈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동양화에 가깝게 다가간 것 같아요. 여백의 미가 있는 담채화를 그리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박서현(서울 일원초 6) 학생기자

이번 취재를 준비하며 담채화가 무엇인지 많이 궁금했어요. 막상 담채화에 대해 알아보니 물감의 색상명, 붓의 세기 등 평소 미술 시간에 배우던 서양화 위주의 상식과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어요. 동양화는 자연과 굉장히 가까운 사이예요. 붓도 동물 털로 만들고, 물감 색상명도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요. 저는 동양화의 그런 점이 참 좋았어요. 특히 담채화를 그릴 때 그러데이션을 표현하는 방법인 바림이 신기했습니다. 물감이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해서 마음이 조급했는데, 익숙해지니 점점 그러데이션이 잘 나타나서 멋진 작품이 되어 뿌듯했어요. 처음 만난 담채화를 통해 우리 고유의 문화와 예술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은(경기도 위례초 5) 학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