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러시아, 서방은 원치않는다…전쟁 없어도 제재했을 것"[주한 러시아대사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2022.05.30 05:00

업데이트 2022.05.30 09:05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의 출구는 어디일까. 미국·유럽이 합심한 초유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속에 전쟁이 장기화 하면서 각국이 에너지·식량 수급 불안에 떨고 있다. 서방 일각에선 종전 협상 조건을 놓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떤 출구를 모색 중인지 양국의 주한 대사를 잇따라 만나봤다. 양측의 엇갈리는 주장을 당사자 육성을 통해 그대로 전달한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 인터뷰

 안드레이 쿨릭 러시아 대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안드레이 쿨릭 러시아 대사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은 우크라이나의 극단주의가 몰고 올 ‘더 나쁜 시나리오’를 선제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애초에 우크라이나에서 목표했던 것들이 달성돼야 (특수군사작전이) 끝날 수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안드레이 쿨릭 러시아 대사를 만난 날은 전쟁 석달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이었다. 그 닷새 전(18일)엔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나란히 가입 신청했다. 예상 외로 길어진 전쟁과 반작용 등에도 불구하고 쿨릭 대사는 푸틴 대통령이 내세웠던 ‘전쟁의 명분’을 판박이로 되풀이했다. 나아가 “맥락없이 사안의 한 부분만 떼내서 보면 왜곡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올바른 순서와 방법대로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시간여 인터뷰 내내, ‘전쟁’과 ‘침공’이란 용어 대신 쿨릭 대사는 ‘특수군사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개전 이후 넉달째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
“러시아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 질문에 항상 ‘스파이처럼 기밀을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고 농담처럼 답한다. 현재까지 특수군사작전은 계획대로 수행되고 있고 푸틴 대통령이 강조한 목표와 과제가 마무리돼야 끝난다. 구체적인 날짜는 나중에 알게 될 거다.”(쿨릭 대사는 ‘세가지 목표’란 ①우크라이나에서 지난 8년간 학대 당한 사람들에 대한 보호 ②우크라이나의 탈나치·비무장화 ③민간인에 유혈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재판이라고 답했다. 또한 몰도바 등으로의 확전 우려에 대해선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허위 사실”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가 침공 명분이 될 수 있나.
“우크라이나에 반유대주의와 네오 나치 사상 등 극단주의가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퍼져 있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쿨릭 대사는 긴 시간을 할애해 이를 세세히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 수만명의 나치가 있다 치자. 그렇다 해도 러시아가 왜 특수군사작전을 하느냐’고 묻는다. 이들이 간과하는 건, 극단주의가 단지 우크라이나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단 거다. 히틀러가 처음 극단주의를 보였을 때 모두 비웃었지만, 결국 전 세계가 비극적 사태를 겪었다.”
나토의 동진(東進)에 대응하고자 했는데 오히려 핀란드·스웨덴까지 나토에 가입 신청했다.
“그렇게 말하면 ‘러시아는 나토 확장을 막으려고 전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 나토는 더욱 확장됐다. 고로 러시아는 바보다’라는 결론이 난다. 이 상황을 그렇게 단순화해선 안된다. 나토는 냉전 시기 유럽 내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나토의 적, 즉 공산주의가 사라졌다. 나토도 없어지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나토는 다섯 차례 확장했다. 동시에 서방은 러시아가 제안한 평화와 공존을 위한 협상을 모두 무시했다. 그리고 나토가 핀란드·스웨덴에 가입 설득을 해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러시아의 인내와 경고를 무시하고 안보 위협을 가한 건 서방이다. ‘특수군사작전’은 레드라인을 넘은 서방, 돈바스 지역에서 ‘인종 숙청’ 등을 준비 중이던 우크라이나를 막기 위한 러시아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미국·유럽의 강도높은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타격 받고 있다.  
“서방은 주권을 가진 강한 러시아를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침공을) 안 했어도 서방은 러시아를 제재했을 거다. 지금까지 1만128건의 경제 제재를 당했고, 이는 이란·북한을 능가하는 최대 규모다. 세계 200여 개국 중 48개국만 제재에 참여 중이다.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의 큰 나라들은 러시아와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는 제재로 힘들지만, 서방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다.”
세계 식량 위기가 가중되면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이 러시아에 흑해 항구 봉쇄를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를 비난하려 ‘식량 위기’ 관련 혐의까지 덧씌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량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붕괴, 운송비 증가를 꼽는다. 또 미국·유럽연합(EU)·일본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8조 달러(약 1120조 원) 이상 투입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중됐고 식량 가격을 끌어올렸다.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 등의 기상 악화도 작용했다. 핵심 요인을 잘 따져보면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은 식량 위기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23일 서울 중구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23일 서울 중구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세계 군비 경쟁이 초래되지 않았나.
“(큰 한숨 뒤) 러시아는 이번 특수군사작전으로 어쨌든 비판만 받고 있다. 하지만 작전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군비 경쟁 차원을 넘어서는, 더 위험한 상황과 더 큰 규모의 분쟁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한국도 대러 제재에 일부 동참했는데.
“한국이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대외적 요인을 이해한다. 한반도 정세는 한국 대외정책의 핵심인데, 이 부분에서 러시아와 늘 긴밀히 협조해왔다. 지금도 좋은 시그널이 많이 있고, 양국 교류는 이어질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어떤가.  
“대통령과 나는 동년배다(※쿨릭 대사는 1953년생, 푸틴은 52년생). 평소 그의 건강 절반만이라도 닮고 싶을 정도다. 러시아어에는 ‘오이처럼 생겼다’는 표현이 있는데, 젊어 보인다는 의미다. 푸틴 대통령에게 적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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