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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리커창이 시진핑 대신할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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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중국 지도부 개편이 반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권력 투쟁’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온갖 소문의 집산지인 홍콩은 물론 미 언론도 가세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권력 투쟁과 관련된 소문의 주요 내용은 한마디로 ‘시샤리상(習下李上)’으로 정리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이 약화하는 반면 그 권력의 공백을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메우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심지어 리커창이 시진핑을 대신해 중국의 1인자가 될 것이라는 ‘리커창 대망론’까지 나오는 판이다.

중국 권력 2인자 리커창 총리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과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권력 2인자 리커창 총리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과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왜 이런 소문이 도는 걸까. 시작은 지난 4월 중순이다. 상하이가 코로나로 봉쇄되며 원성이 높아지는 것과 때를 맞춰 중국 인터넷 공간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사진과 영상 등이 등장했다. 1998년부터 5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중국 경제의 황제란 말을 들었던 올해 94세의 주룽지가 왜 갑자기 소환된 걸까. 상하이 시민이 공유한 주룽지 관련 글과 영상을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당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도 꺼리지 않을 것”이란 주룽지의 87년 상하이 시장 취임식 연설이 중국판 트위터인 위챗에 올라왔다. 주룽지가 88년 상하이에 유행한 간염을 극복하는 과정을 서술한 글도 화제를 모았다.
이 무렵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당내 원로들이 시진핑 주석을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이래 확립된 집단지도체제를 시 주석이 깨고 있다는 게 비판의 골자였으며 목소리를 높인 선두에 주룽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룽지는 총리로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끄는 등 경제에 혁혁한 공을 세워 명망이 높았지만, 총리를 연임하지 않고 단임을 고집하며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의 동반 퇴진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강골의 정치인 주룽지가 3연임에 도전하는 시 주석에게 쓴소리를 던졌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리커창 총리와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리커창 총리와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런 일이 있었던 뒤 리커창 총리의 활동에 대한 보도가 많아졌다. 특히 지난 1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엔 무려 9000자에 달하는 리커창의 연설 전문이 실리기도 했다. 리커창의 말 중엔 권력은 양날의 칼이라 잘 쓰면 국가와 국민에 이롭지만 잘못 쓰면 타인과 자신을 해친다는 등 정치 관련 언급도 있었다. 그러자 리커창이 마침내 시진핑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리커창 대망론이 불거지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함께 시진핑이 오는 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에 실패할 것이란 섣부른 전망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진핑 낙마와 리커창 부상’은 중국의 정치 현실과 달라 보인다. 우선 권력 투쟁설과 관련해 당내 원로 반발이 있었던 건 사실로 여겨진다. 현재의 중국 원로들은 지난 78년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40년 넘게 주도하며 성장했던 인물들이다. 그런 이들이 시진핑 집권 이후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건 뻔한 이치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고 미국과 대립하며 날 선 전랑외교(戰狼外交)로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실을 좋게 볼 리 만무하다. 시진핑과 원로들 사이가 삐걱거린다는 건 중국 언론이 지난 15일 당 중앙판공청의 명의로 발표된 ‘은퇴 간부의 당 건설 업무에 관한 의견’을 보도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2020년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2020년 산둥성 옌타이의 한 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은퇴 간부에 대한 의견’ 문건은 간부를 역임한 당원이 은퇴는 했지만 계속 당의 말을 듣고 당과 함께 가야 하며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피력했다. 이는 당 원로들로부터 시진핑에 대한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게 더 큰 문제로 번지기 전에 원로들 입단속부터 해야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게 바로 중앙판공청의 ‘의견’ 문건인 것이다.
리커창 총리의 언론 노출 빈도가 높아진 건 원로들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차원이다. 리커창의 발언 게재 등은 시진핑의 허락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갖고 리커창이 경제 대권을 되찾아오고 있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다. 지난 16일 나온 당 이론지 ‘구시(求是)’는 ‘공동부유’와 ‘자본통제’ 등 중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시진핑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는 현재 중국 경제의 지휘자가 누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케이스라는 말을 듣는다. 홍콩의 정치 평론가 쑨자예(孫嘉業)나 89년 천안문 사태 후 미국으로 망명한 왕단(王丹) 등도 시진핑의 권력이 여전히 반석처럼 단단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0년 닝샤자치구 우중시의 훙더촌을 방문해 종이상자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며 빈곤 탈피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0년 닝샤자치구 우중시의 훙더촌을 방문해 종이상자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대화하며 빈곤 탈피 상황을 청취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커창 대망론은 시진핑의 정책에 불만인 사람들의 희망이 낳은 산물로 보인다. 바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 현실이 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 지도부 개편이 이뤄지는 오는 가을까지 이와 유사한 중국 권력 투쟁 소식은 계속 흘러나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 정가의 물밑 대화가 이뤄지는 7~8월의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전후해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좋든 싫든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웃인 우리가 중국 권력 변화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

4월부터 중국 원로들 시진핑 비판 나오기 시작 #5월엔 중국 2인자 리커창 활동 대대적 보도 #시진핑 3연임 실패와 리커창 대망론 나오지만 #시진핑 반대 세력의 희망에 불과하단 분석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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