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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꼰대력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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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정진호 경제정책팀 기자

인터넷에서 꼰대를 검색하면 수많은 검사지가 나온다.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하면 꼰대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의 꼰대인지를 판별해주는 테스트다. 검사지에 따라 질문이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겹치는 게 있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후배는 왠지 기억에 남는다’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 같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매우 그렇다’라거나 ‘그렇다’고 답한다면 검사 결과 꼰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적은 사람이 반기를 들면 기분이 상한다는 게 꼰대의 주된 특성이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사과와 그 후폭풍을 보다가 꼰대력 테스트를 다시 찾아봤다.

박 위원장은 지난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반성하고 변하겠다며 다음 달 1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기회를 달라는 게 호소문 내용이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이 다음날 “지도부로서 자격이 없다”며 책상을 내려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등 당내 반발은 컸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 위원장의 경험과 연륜 부족이란 지적이 빗발쳤다. 일부 의원뿐 아니라 정치평론가·지지자들까지 박 위원장의 경험 부족을 지적하고 나섰다. 지방선거를 1주일여 앞둔 상황에서 당의 허물을 드러낼 상황이나 시점이 아니었는데 어리다 보니 정치 판세를 잘 못 읽어서(경험 부족) 한 일이라는 게 지적의 골자다. 결국 박 위원장은 호소문 발표 나흘 뒤 사과했다.

그에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26세와 여성이다. 고백하건대 언론도 마찬가지의 꼰대짓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이 주인공인 기사 제목엔 26세 여성이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붙는다. 50·60대 남성 정치인엔 그런 식의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 지금껏 ‘62세 추경호 부총리’ 같은 제목은 본 적 없다.

지난 3월 윤 위원장은 박 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발표하면서 “청년을 대표하는 결단과 행동이 민주당에 더없이 필요한 정신이자 가치”라며 “비대위는 당의 근본적 변화와 국민과의 약속 이행 등 막중한 책무를 띄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청년의 대표로서 민주당의 변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 취지대로 보면 박 위원장은 분명 해달라는 대로 했다.

사회 전반에서 꼰대 되지 말기는 대다수 부장님의 소망이자 걱정거리가 된 지 오래다. 인터넷 포털의 자동완성 기능만 봐도 꼰대 뒤엔 ‘테스트’ ‘특징’ ‘상사’가 붙는다. 어떤 행동이 꼰대로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래야 회사에서 사랑받을 수 있어서다. 애당초 민주당이 박 위원장을 선택한 건 꼰대가 되지 않고 국민 사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민주당만의 얘기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