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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서로 "우리가 양보했다"…선거 사흘전 62조 추경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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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29일 62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단일 추경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여야는 코로나19 손실보상 소급적용 등을 두고 쟁점 싸움을 이어가다 ‘선거 전 국회 통과’가 가능한 마지막 날에 극적 타결을 이뤘다.

국회는 이날 오후 7시 30분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안 110건과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보상에 중점을 둔 추경안을 처리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재석 252인 중 찬성 246인, 반대 1인, 기권 5인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고 추경안 국회 통과를 알렸다.

중앙정부 지출 39조원과 지방교부금 23조원을 합친 이번 추경은 국회 심사 단계에서 당초 정부안 59조4000억원보다 2조6000억원 늘어났다. 이종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의결 직전 단상에 올라 “소상공인 손실보상 및 손실보전금에 일정 매출액 이하 중기업을 추가하기 위해 관련 예산 약 1400억원을 증액했다”고 주요 증액 항목을 설명했다. 그는 “소상공인 신규 대환대출 규모를 기존 10조 7000억원에서 13조원으로 2조 3000억원 확대하고자 관련 예산 1800억원을 증액했다”고 덧붙였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및 여·야 원내대표 등과 추경 협의 전 포즈를 취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 추경호 부총리,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원내대표, 박병석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및 여·야 원내대표 등과 추경 협의 전 포즈를 취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 추경호 부총리,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원내대표, 박병석 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이번 추경은 약 371만여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6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의 손실보전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날 본회의 참석자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표결 직전 토론을 신청해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 것처럼 대규모 초과 세수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번 추경은 1차 추경 규모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의 세수 추계 변동에 대한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이날 오전까지 평행선 대치를 이어가던 여야가 지방선거 D-3에 극적 합의에 이른 데는 ‘돈 풀기’라는 공동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게 주효했다.

양당 지도부는 약속이나 한 듯 이번 추경안이 자신들의 양보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추경안 처리에 합의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오늘 민주당이 요구하는 것을 저희가 대폭 수용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되도록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양보를 많이 해 주고 처리하는 것이 소상공인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며 한 말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합의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5.29/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합의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2.5.29/뉴스1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같은 시간 기자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어려운 민생을 극복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드려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 추경 처리의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소급적용을 끝까지 주장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며 “지방선거용 정략적 추경에만 골몰한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민생 외면에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손실보상 소급적용은 이번 추경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은 법적 손실보상을 증빙하다가 폐업할 판이다. 일단 빠른 지급이 절실하다”며 “민주당도 이런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쉽고 미흡하지만 이번 추경에 대해 선(先) 처리, 후(後) 보완에 나서겠다. 윤석열 정부는 공약을 파기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겠다”(박 원내대표)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장단 임기 종료 문제는 추경안 막판 합의의 또 다른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이날 의장단 임기가 끝나면 30일부터는 새 의장단을 선출해야 본회의 개의가 가능하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둘러싼 원 구성 협상과 의장단 선출이 연계된 상황”이라며 “오늘(29일)을 넘기면 지방선거 이전 추경안 처리는 물 건너간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주말 사이 여야 원내지도부와 수시로 접촉하며 합의 중재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다만 30일부터 시작될 ‘원 공백’에서 여야의 이해관계는 더욱 첨예하게 부딪힐 전망이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승겸 합참의장 후보자, 김창기 국세청장 후보자 등 고위공직자 인사청문 요청안이 산적해있지만, 현행법상 각 소관 상임위 구성이 되지 않은 원 공백 상태에서는 이들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할 수 없다.

일각에서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구성 권한을 가진 의장단 선출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자칫 인사청문 요청안 국회 송부 시한(20일)을 넘기면 윤 대통령이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다”(전직 의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 등 플랫폼 소속 배달 노동자들도 산업재해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안은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강원도의 명칭을 ‘강원특별자치도’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에 이어 두 번째 특별자치도가 됐다. 법안은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규제 완화 권한, 인사권 등을 도지사에게 이양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골자다.

공무원·교원 노동조합에 ‘타임오프제’(노조 전임자 유급 근무시간 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무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 개정안, 교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 개정안도 이날 본회의를 통과했다. 타임오프제는 공무원·교원에 대해서도 노조 전임자의 노조 활동 시간을 유급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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