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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전기차 배터리, 재검비 1000만원"...'친환경'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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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 모습. [연합뉴스]

전기차 충전 모습. [연합뉴스]

제조업체 A사는 전기차 폐배터리에서 니켈과 망간을 회수해 원료로 쓰는 사업을 추진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처리 단계별로 적용되는 법규가 5개나 돼서다. 폐배터리를 다른 용도의 배터리로 다시 쓰는 사업도 쉽지 않다. 배터리 신품이 2000만원인데, 재사용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배터리 잔존 가치검사에만 1000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자칫 사용 후 배터리가 신품 배터리보다 비싸질 수 있다.

기업들이 탄소중립 사업을 추진하다 곳곳에서 ‘규제 걸림돌’에 부딪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29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제조기업 302개사를 대상으로 탄소중립 관련 규제 실태와 개선 과제를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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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는 공장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는 탄소포집·활용(CCUS)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사업 추진에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재활용 용도가 일부 화학제품으로 제한돼 건설소재로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설‧장비‧기술능력 등 허가 요건을 갖추는 데도 1~2년이 걸린다.

이 회사는 인허가를 받기 위해 공장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주민 기피시설이라는 이유로 부적정 통보를 받았다. 산업단지 입주도 제한됐다. 결국 이 사업은 보류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C사는 전기를 직접 생산·공급하는 에너지슈퍼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했으나 어려움을 겪었다. 현행법상 주유소와 LPG 충전소에 설치 가능한 시설 목록에 에너지슈퍼스테이션에 필수적인 ‘연료전지’(수소 연료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사업만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승인을 받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상의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92.6%가 탄소중립 추진과정에서 ‘규제 애로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65.9%는 규제 때문에 ‘시설투자에 차질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어 ‘온실가스 감축계획 보류’(18.7%), ‘신사업 차질’(8.5%), ‘연구개발(R&D) 지연’(6.9%)을 겪었다고 답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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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로사항 유형으로는 ‘복잡‧까다로운 행정절차’(51.9%)가 가장 많았고, ‘법‧제도 미비’(20.6%), ‘온실가스 감축 불인정’(12.5%), ‘해외기준보다 엄격’(8.7%), 순이었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중점 추진 중인 기업 활동은 ‘전력사용저감’(55.5%)이 가장 많았다. 이어 ‘연료‧원료 전환’(19.5%), ‘재생에너지 사용’(10.2%), ‘온실가스 저감설비 구축 등 공정 전환’(8.2%), ‘신사업 추진’(4.7%), ‘혁신기술 개발’(1.9%) 순으로 나타났다.

상의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 부족해 ‘전력 사용 저감’을 추진하고 있으나 ‘신사업 추진’과 ‘혁신기술 개발’은 큰 비용 부담, 규제 애로 및 법·제도 미비, 사업 불확실성 등의 이유로 응답 비중이 작았다”고 분석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개선이 필요한 제도 및 규제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42.1%)가 가장 많았고, ‘대기총 량규제’(24.7%), ‘시설 인허가 규제’(19.2%), ‘재활용규제’(14%) 순으로 조사됐다.

특히 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기업들은 ‘상쇄배출권’ 활용 한도를 확대하고 해외 온실가스 배출권의 국내 전환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쇄 배출권이란 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이 사업장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한 경우 이에 대한 실적을 인증받아 배출권으로 전환하는 제도다. 그런데 상쇄 배출권 활용 한도가 10%(2018~2020년)에서 5%(2021~2025년)로 축소되면서 다수 기업이 해외 사업 추진을 중단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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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사는 “해외 사업을 통해 얻은 배출권을 국내 상쇄 배출권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산하 CDM집행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받은 사업에 대해 정부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고, 온실가스 감축량 일부만 인증받는 경우도 많아 해외 사업의 배출권 수익이 불투명해졌다”고 하소연했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재활용시설을 신설하려는 E사는 “대기배출 허용 총량을 추가로 할당받아야 하는데 해당 지역에 대기배출 허용 총량 여유분이 없어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탄소중립 이행 시설의 경우 신증설이 가능하도록 추가 할당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조영준 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새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고 제도적 기반을 조속히 마련해 기업이 마음껏 탄소중립 투자를 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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