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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수도' 고창의 양식·자연산 평가 "쓸데없이 돈 쓰지마라"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태미나의 제왕으로 예부터 소문났던 이것
미끄럽거나, 징그럽거나, 고소하거나, 느끼하거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여름. 무더위와 함께 체력과 의욕이 떨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뭐 좋은 거라도 먹어야겠네”라는 말을 주고받곤 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 보양식을 보양식(補陽食)이라고 생각하고 음흉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보양식은 어디까지나 보양식(保養食), 즉 건강을 지키고 양생을 돕는 음식이다. 물론 먹고 힘이 나라고 먹는 것이니 사실 지향하는 바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한국인의 보양식은 종류도 다양하다. 삼계탕에서 자라탕, 오리탕, 염소탕, 해천탕, 그리고 논란의 보신탕. 대부분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재료로 끓인 뜨거운 탕 종류라는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더운 여름날, 뭔가 솥단지에 넣고 푹푹 끓여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눠 먹고,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더위를 견디는 데 꽤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런 ‘보양식’의 대열에서 생선 종류는 찾아보기 힘든데, 물론 두 종류의 예외가 있다. 장어와 민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민어는 우리 음식이지만 장어는 해외에서 유입된 음식으로 생각하곤 한다. 장어를 먹는 풍습은 일제시대 이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460년에 편찬된 『식료찬요』를 보면 ‘노질에는 장어(鰻鱺魚)를 구워 먹는 것이 좋다’는 내용 등 장어를 식용으로 이용한 사례가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동의보감』에도 장어의 효능은 치질과 가려움증, 내장이 헐었을 때 좋다고 했고, 『자산어보』에도 ‘맛이 달고 짙어 사람에게 이롭다. 특히 오래 설사를 한 사람이 장어로 죽을 만들어 먹으면 바로 그친다’고 해 놓은 것 등을 보아 어째 맛보다는 영양제로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다. 간혹 『식료찬요』에 ‘연산군이 장어를 즐겨 먹었다’는 내용이 있다는 주장을 보게 되는데, 『식료찬요』는 연산군이 태어나기 38년 전에 쓰인 책이다.

물론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 조상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어를 먹은 것은 분명하지만 간장 베이스의 양념장을 사용한 장어구이는 아무래도 일본이 원조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아무 양념도 바르지 않은 소금구이나 한국식으로 변형된 고추장 양념구이도 꽤 인기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간장 양념구이의 권위가 절대적이다. 특히 여름철, 일본인들은 흰 밥 위에 잘 구워진 장어를 얹은 장어구이 덮밥을 최고의 호사로 치곤 한다. 백종원 대표도 “장어는 양념구이”라는 뜻이 분명했다. “민물장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양념에 푹 재우고 약한 불로 오래오래 굽는 것”이라는 지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장어를 먹으려면 전북 고창으로 가야 한다고들 한다.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고창에서 나는 풍천 장어가 좋다던데?”라고 반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고창 근처 어딘가에 풍천이라는 지명이 있고, 그곳이 유명한 장어 산지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풍천(風川)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바다와 강이 만나 해수와 담수가 섞이는 지역을 부르는 일반명사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물론 고창 사람들은 풍천이란 선운사 앞을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주진천의 별칭이며, 풍천장어라는 이름은 곧 고창 특산물인 고창 장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분명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장어의 생태는 근래에야 밝혀졌을 정도로 큰 미스터리였다. 이름이 민물장어고 강에서 사는데 아무도 장어가 알을 낳는 광경을 보거나, 장어 알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어가 알을 낳는 곳은 저 먼 필리핀 근해, 깊은 마리에나 해구 주변이다. 거기서 태어난 장어의 치어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한국의 강 하구를 찾아 약 6개월간 수천㎞의 바닷길을 헤엄쳐 온다. 그리고 민물에서 몇 년간 살다가, 다시 알을 낳기 위해 태평양 한복판으로 향해 먼 길을 떠난다. 그렇게 알을 낳은 장어는 거기서 죽음을 맞이한다. 대체 왜 수천 ㎞를 오가며 일생을 마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면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가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어쨌든 이렇게 특이한 장어의 생태 덕분에, 아직도 장어를 길러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기르는 수준의 양식은 아직 불가능하다. 몇해 전 장어의 인공 부화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 실용 단계는 아니고, 지금까지는 먼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장어의 치어를 수집해 성체로 키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매년 이른 봄, 장어의 치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올 때면 풍천 근처 주민들은 비상이 걸린다. 치어는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창 근처의 풍천 지역은 예전에는 자연산 장어 산지였지만 지금은 건져낸 치어를 키우는 양식장이 가득하다. 어찌됐던 장어 산지 맞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 대표는 “진짜 맛있는 장어구이를 먹으려면 직접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소스의 주재료는 장어를 손질할 때 잘라낸 머리와 뼈. 여기에 간장 후추 양파 대파 생강 감초 등을 넣고 약한 불로 최소 8시간 이상 졸여내야 한다. 물론 이게 완성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소스는 사용에 사용을 거듭하면서 맛에 깊이를 더한다.

마침내 석쇠 위에 장어를 얹는 시간. 약한 불에서 수시로 뒤집어가며 한참을 굽다가 뱃살 쪽이 노릇노릇해지면 집게로 집어 소스에 담근다. 기름이 자글자글 끓고 있는 뜨거운 장어 토막은 소스를 쭉 빨아들이고, 소스에는 장어에서 흘러나온 기름 맛이 밴다. 장어와 소스가 서로 성분을 주고받으면서, 소스는 점점 진해지는 것이다. 한번 장어구이에 쓴 소스는 살 부스러기 같은 불순물을 걸러 낸 다음, 다시 끓여서 보관한다. 유명한 족발집들이 ‘씨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족발 삶아 내는 육수를 계속 재활용하듯, 장어 양념 소스도 구이를 반복할수록 맛이 더욱 짙어진다는 얘기다.

장어구이는 인내의 맛이다. 절대 서둘러선 안 된다. 마음이 급하다고 불을 올려 봐야 겉은 타고 속은 여전히 기름진 장어를 먹게 될 뿐이다. 다 익어서 이제 먹어도 될 것 같다 싶을 때 다시 소스에 담그고, 꺼낸 장어는 직화를 피해 여러 겹으로 쌓아 올려 굽는다. 불 위의 장어에서는 기름과 소스가 흘러내리고, 소스의 촉촉함이 끈적하게 말라붙을 때쯤, 그리고 뱃가죽이 등에 붙으려 할 때쯤, 마침내 먹을 때가 온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오래오래 구워진 장어는 바삭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기름지다. 그냥 먹어도 좋고, 장어의 절친인 생강 조각과 같이 먹어도 좋고, 와사비를 살짝 발라 먹어도 좋다. 소금구이라면 쌈장과 마늘을 곁들여 상추에 싸 먹는 것도 좋겠지만, 양념구이는 그 자체로 완성된 요리다.

최근에는 포장 판매도 인기다. 장어를 주문하면 머리와 뼈를 제거하고, 초벌구이를 한 다음 진공포장에 장어구이 소스를 곁들여 가정으로 배달해준다. 프라이팬이나 에어프라이어를 써서 손쉽게 구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산지에서 석쇠에 오래오래 구워 먹는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 분명 맛있는 장어를 먹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장어편. 인터넷 캡처

참, 양식 이야기만 했는데 자연산은 어떨까. ‘장어의 수도’ 고창에서도 다들 입을 모은다. “맛은 우리도 구별 못 합니다. 쓸데없이 돈 쓰지 마시고, 양식 드세요.” 자연산도 유통이 되기는 하지만 그냥 먹기보다는 약으로 쓴다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지만 무게당 가격이 양식의 5~10배. 이쯤 되면 굳이 자연산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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