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머니랩 구독전용

"제2 루나 사태, 자본시장법 적극 집행하면 막을 수 있다"[앤츠랩]

중앙일보

입력

지난 12일 하루 만에 가격이 97% 폭락한 '루나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은 패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목청 높였던 정치인들은 쥐구멍에라도 숨었는지 조용. 여론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조롱부터, '자산 시장 형성 초기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성장통'이란 시각까지 다양합니다.

하루 만에 97%가 폭락한 루나 사태. 피해자만 30만명에 달한다. 셔터스톡

하루 만에 97%가 폭락한 루나 사태. 피해자만 30만명에 달한다. 셔터스톡

주식시장도 초기에는 무법천지였습니다. 실물 주식에 강도가 들고, 판사를 매수해 주식을 무한 발행하고…. 지금 암호화폐 시장도 규제당국이 손을 놓고 있다 보니, 허위 사실 유포, 시세조종,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법 행위가 심심찮게 있음을 피부로 직감하죠. 암호화폐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잘 간수하고 있는 지도 확실치 않고요.

제2·제3의 루나 사태를 막으려면 어디서부터 손 봐야 할까요. 「블록체인과 코인 누가 돈을 버는가(지식과감성)」의 저자이자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전문가인 예자선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본질은 돈 버는 구조를 보는 것"이라는 예자선 변호사. 김경록 기자

"본질은 돈 버는 구조를 보는 것"이라는 예자선 변호사. 김경록 기자

루나 사태를 지켜보셨을 텐데요. 피해자가 무려 30만명이라고. 이 사건 본질은 뭐라고 보세요?
암호화폐마다 저마다 다른 특징이나 쓰임이 있다고들 하죠. 그러나 저는 그걸 보기 전에 사업자가 암호화폐를 찍어 어떤 사업을 하려는 지, 사업 구조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구 자체를 보기 전에, 만든 도구로 어떻게 돈을 버는 지를 보라는) 대체로 코인 사업자들은 자신이 만든 코인을 거래소에 팔아 돈을 벌죠. 그 코인을 산 사람은 뒷 사람에게 팔아야 수익을 얻고요. 전형적인 '폰지 구조'지요. 어느 시점에 뒷 사람이 끊어지면 지금 코인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절벽을 맞게 됩니다. 루나 사태가 그걸 보여줬죠.
스테이블 코인(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상거래용으로 쓸 수 있게 만든 암호화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테라와 루나의 경우엔 달러·원화같은 법정 화폐를 담보로 하지도 않고, 코인 가격을 또 다른 코인을 발행해 떠받치는 구조라 가격 방어에 실패했다는 견해도 있는데요.
달러를 담보로 발행하는 암호화폐 중에 '테더'라는 게 있죠. 이 자체는 가격이 변하지 않으니까 시세차익을 얻을 순 없어요. 하지만, 테더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은행 계좌 없이도 코인 거래를 쉽게 할 수 있어서 사업자들은 사용자로부터 거래 수수료를 받아 돈을 벌 수 있죠. 테더의 원리대로 돌아간다면, 코인 가치가 떨어져도 투자자들은 담보로 맡긴 달러로 다시 교환할 수도 있고요. (사업자가 담보를 잘 간수하는 지는 제대로 봐야겠지만) 그런데 테라·루나의 경우에는 법정화폐 담보로 발행하는 게 아니니까 계속 투자자를 유인해 코인을 사야만 그 가치가 유지될 수가 있죠. 그래서 티몬·야놀자 등에서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하고요. 테라 투자자에게 연 20%의 이자를 보장하는데, 그 이자도 테라로 줍니다. 결국 사업자는 아무 돈이 안들고 테라가 계속 팔려야만 투자자들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폰지 구조'라는 것이죠.
"테라, 루나코인 거래 방식은 폰지 구조" 김경록 기자

"테라, 루나코인 거래 방식은 폰지 구조" 김경록 기자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전통적인 암호화폐에도 루나 사태와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보시나요?
비트코인은 발행(채굴)이나 분배가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질 뿐 발행사업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테라폼랩스란 사업자가 테라와 루나를 발행하는 사업 방식과는 다르죠. 다른 코인과 달리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서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비트코인을 받으려는 채굴업자가 있어야 이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유지되는데, 발행량은 한정돼 있고 보상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보상이 줄면 채굴 행위도 계속해서 이뤄지기가 어렵지요. 결국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결말로 가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합니다. 발행사업자가 대놓고 '폰지 구조'를 짠 건 아니지만, 거래소나 채굴업자 등 비트코인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 호재성 정보를 계속 만들어서 뒷사람, 그 뒷사람에게 팔아서 유통하는 구조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흐름을 보면 투자 상품의 본질이 보인다"는 예자선 변호사의 저서. yes24

"돈을 흐름을 보면 투자 상품의 본질이 보인다"는 예자선 변호사의 저서. yes24

위믹스나 보라 등 게임회사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발행하는 코인은 아이템 거래, 유저에 대한 보상 등 분명한 쓰임새는 있는데요.
싸이월드가 도토리를 만든 것처럼 게임 안에서 쓰는 코인은 새로운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지금 암호화폐거래소에 등장하는 게임 코인(개별 게임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한 위믹스 등과 교환)은 게임에 쓰기 어렵다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습니다. 위믹스나 보라코인 가격이 널뛰기를 하는데 어떻게 이걸 게임에서 교환 수단으로 마음 편히 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런 게임 코인을 게임 서비스를 잘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2차 시장인 암호화폐거래소에서 팔기 위해 발행하는 겁니다. 이런 코인을 발행하는 회사는 코인 투자자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구체적인 약속도 하지 않고요. 코인을 사는 사람들도 그런 점에 별로 개의치 않지요. 위믹스 백서에도 "이 백서에 적힌 것들은 모두 계획이고, 바뀔 수 있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정해진 것도 약속한 것도 분명치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걸 거래소에 유통시켜 돈을 벌죠. 더 나은 게임 서비스를 하겠다는 건 명목일 뿐이고, 코인은 거래소에서 따로 논다는 점에서 사업자와 투자자의 인식이 같은 겁니다.
"게임사 암호화폐도 게임 서비스 제공보단 거래소에서 팔기 위해 하는 것" 김경록 기자

"게임사 암호화폐도 게임 서비스 제공보단 거래소에서 팔기 위해 하는 것" 김경록 기자

블록체인 기술이니 메타버스 생태계에서의 가능성이니, 이런 얘기는 일단 접어두고, 사업 구조로만 이야기해 보니 뭔가 지금의 규제로도 충분히 시장을 규율할 수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요?
네. 자본시장법은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50인 이상을 대상으로 1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할 때는 증권신고서를 작성해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라는 거죠. 이 법에는 '투자계약증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이 있는데요. 쉽게 말해 '사업해서 수익을 내주겠다고 남의 돈을 받는 행위'를 할 때는 증권신고서에 중요 사항을 기재해 금융당국의 검토를 받으라는 거죠.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모아 엉뚱한 데 쓰는 걸 예방하기 위한 겁니다. 이건 암호화폐의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이냐는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돈이 오가는 실질적인 관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어서 현행 법으로도 충분히 규제할 수 있죠.
사례를 좀 든다면요?
대표적인 게 위믹스입니다. 발행사가 위믹스를 게임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남의 돈을 유치하죠. 그리고 투자자에겐 위믹스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익을 기대하게 합니다. 위메이드는 위믹스를 10억개 발행해 놓고, 실제로 2020년 11월부터 작년말까지 국내·외 거래소에 위믹스를 팔아 2250억원을 모집했습니다. 저는 이런 행위는 '50인 이상에 10억원이 넘는 돈'을 유치한 것으로 자본시장법 상 투자계약증권을 판 것이기 때문에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자본시장법의 판단을 구하는 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 투자금 유치 행위, 지금도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할 수 있다" 김경록 기자

"불특정 다수에 투자금 유치 행위, 지금도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할 수 있다" 김경록 기자

다른 나라는 어떻게 규제하나요?
미국은 이미 2019년 가상자산에 대해서 투자 계약 성격을 판단하는 원칙을 발표하고, 상당수 코인에 대해 증권법 위반 행정조치를 했습니다. 한국도 금융위가 지난달 벤처기업 뮤직카우의 저작권 조각 투자 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사업의 실질을 보고 투자계약증권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고, 신종 증권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종이로 된 증표든 분산장부상 토큰이든 표현하는 매체나 기술과는 상관없이 실질적인 내용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거죠.
현재 국회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들고 암호화폐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요
저는 지금 암호화폐 시장에서 루나 사태 같은 게 벌어지는 게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미국처럼 현행 자본시장법과 신종 증권 가이드라인에 맞게 암호화폐의 증권 여부를 빨리 선언해주고, 법을 집행하면 됩니다. 이런 작업은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법이 없어서 규제를 못한다면서 법을 만드는 데 하세월이 걸리면 그 동안 피해자는 계속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요지는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새로운 법을 만든는 게 아니라, 자본시장법의 투자계약증권 제도를 만든 취지에 맞게 법을 집행하면서, 제도를 보완하는 일이란 겁니다. 자본시장의 근간과 전체 국민의 편익을 살펴서 제도를 설계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암호화폐의 증권성 여부, 빨리 선언하고 법 집행 해줘야" 김경록 기자

"암호화폐의 증권성 여부, 빨리 선언하고 법 집행 해줘야" 김경록 기자

어쨌든 루나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의 신뢰가 크게 무너진 것 같은데, 앞으로 전망은?
확실히 예전보다는 투자가 줄어들 것 같기는 합니다. 테라·루나 코인이 가격 고정을 약속한 것이 투자자를 기망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이 당국에 고소를 했는데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부활시킨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20일 테라·루나 발행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폰지 사기' 혐의로 보고 있죠. 이와 함께 자본시장법 상으로 증권신고서 제출 없이 투자계약증권 성격의 코인을 발행해 온 문제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법 적용이 이뤄질 계기가 마련됐다고 봅니다.

by.앤츠랩

이 기사는 5월 27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소개해주세요!
https://www.joongang.co.kr/newsletter/antslab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