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생만 숨진 車추락…해경 실험서 찾아낸 새로운 사실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5.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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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항 사고, 해경 차량실험서 실마리 

지난 18일 오후 2시 부산시 기장군 동백항. 울산해경 소속 경찰관들이 차량 조수석에서 기어를 드라이브(D)에 놓은 뒤 밟고 있던 브레이크를 뗐다. 지난 3일 남매가 탄 스파크 차량이 물에 빠져 여동생(40)이 사망할 당시를 재연한 실험이었다. 사고 당시 인근 폐쇄회로TV(CCTV)에는 오빠 A씨(43)가 차량을 오르내린 후 차가 바다 쪽으로 향하는 상황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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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은 사고 당시 조수석에 앉아있던 오빠 A씨를 보험사기·자살방조 혐의로 조사해왔다. CCTV 영상에 담긴 행동과 여동생 보험금 5억 원의 수익자가 오빠로 변경된 점 등을 토대로 수사가 시작됐다. 이날 차량실험은 A씨가 앉았던 조수석에서 브레이크를 뗄 경우 차량이 직진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해경은 이날 실험을 통해 조수석에서의 차량 조작 가능성을 확인했다. 동백항 사고 당시 CCTV 영상에는 줄곧 켜져 있던 브레이크등이 꺼진 뒤 차량이 천천히 직진해 바다에 빠졌다. A씨는 “운전석에 있던 여동생의 운전 미숙으로 사고가 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2018년 12월 전남 여수 금오도 한 선착장 앞바다에 빠진 승용차 인양 모습. 사진 여수해양경찰서

2018년 12월 전남 여수 금오도 한 선착장 앞바다에 빠진 승용차 인양 모습. 사진 여수해양경찰서

사고 전 짐 뺀 오빠, 추락 전 상황도 의문
해경은 당시 차량을 조작한 게 조수석에 있던 A씨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사고 전 A씨가 조수석에서 운전석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차창 너머로 보여서다. 해경은 사고 전 한 차례 차가 후진할 때도 같은 모습을 확인했다.

이후 해경은 누가 차량을 조작했느냐는 의혹을 입증하는 데 집중해왔다. 지난 16일에는 현장 차량실험을 하려다 취재진이 몰려들자 철수하기도 했다. 해경 측은 비공개 실험을 통해 해당 차량이 조수석에서도 차량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해경은 이를 A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과로 보고 자살방조가 아닌 살인 혐의 적용 등도 검토 중이다.

이 사건과 별개로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7월 A씨 남매의 아버지가 탔던 자동차가 낙동강에 빠져 숨진 사고에 대한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다. 당시 사고는 단순 사고사로 처리됐지만 동백항 사고 의혹이 불거지면서 해당 사고와 A씨와의 연관성 등을 살펴보고 있다.

해경은 사고 당시 CCTV 영상과 차량 전문가 분석 등을 토대로 A씨에 대한 혐의점을 포착했다. 사고 당일 영상에는 A씨가 사고가 나기 전 차량 뒷좌석과 트렁크에서 짐을 빼 차량 근처에 두는 모습이 찍혔다. 그는 사고 후 소방대원에게 "휴대전화가 들어 있으니 짐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짐을 되찾아가기도 했다.

지난 3일 부산 동백항에서 차량 침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빠 A씨가 짐을 꺼내 땅바닥에 내려두고 있다.

지난 3일 부산 동백항에서 차량 침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오빠 A씨가 짐을 꺼내 땅바닥에 내려두고 있다.

미심쩍은 행동에 보험 수익자 변경
차량 전문가 등은 사고 당시 차가 브레이크등이 꺼진 직후 바다 쪽으로 직진한 것을 놓고도 의문을 제기한다. 차량이 출발하는 순간 차체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더니 바다에 빠지는 순간까지도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아서다.

류도정 한국폴리텍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브레이크를 떼자마자 출발했다는 건 기어가 주행(D)에 있었다는 의미"라며 "출발 순간 차가 한쪽으로 기우는 경우도 드문 데다 코앞에 바다가 있는 상황에서 실수로 출발했다면 브레이크를 밟는 게 일반적인데 사고 차량은 바다에 빠지는 순간까지 느린 속도로 직진했고, 브레이크등도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해경 안팎에선 이번 동백항 사건이 2018년 12월 전남 여수에서 발생한 금오도 선착장 사고와 유사하다는 말도 나온다. 승용차에서 남편이 잠깐 내린 사이 경사로에 있던 차가 직진 후 바다에 빠지며 조수석에 탑승한 아내가 사망한 사고다.

부산 기장군 동백항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부산 기장군 동백항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금오도 사고, 기어 중립에 창문 7㎝ 열려
당시 경찰은 인양된 사고 차량의 사이드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았고, 기어가 중립(N)에 놓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겨울이었는데 조수석 뒤쪽 창문이 7㎝가량 열려 있었던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었다. 검찰은 CCTV 영상에 남편이 사고 후에도 당황하지 않는 모습이 찍혀있고, 10억 원이 넘는 아내의 보험금 수익자가 사고 20여일 전 남편으로 바뀐 점 등을 토대로 살인과 자동차매몰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2019년 9월 보험금을 노린 고의 범행으로 보고 남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광주고법은 이듬해 4월 2심에서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금고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의 판단에는 차량 현장실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험 결과 사고가 시작된 특정 지점에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차를 중립(N) 기어로 둔 상태에서 조수석에 탄 사람이 상체를 움직이면 차가 굴러 바다에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그해 9월 남편의 살인 혐의 무죄와 금고 3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차량실험 결과와 남편이 차를 미는 등 행위를 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는 점, 보험 수익자 변경을 남편이 주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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