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北이 쏘자 정권교체 '실감'…文땐 못봤던 尹정부 낯선 '3가지'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 ONESHOT’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북한 도발과 정부 대응

지난 25일 북한의 대륙간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도발 국면에서 ‘정부가 바뀌긴 바뀌었구나’를 실질적으로 느끼게 해준 장면 세 개.

북한이 지난 25일 시험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17형 미사일. 사진은 지난 4월 열병식에서 공개된 화성-17형. 뉴스1

북한이 지난 25일 시험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17형 미사일. 사진은 지난 4월 열병식에서 공개된 화성-17형. 뉴스1

#. ‘도발’에 호부호형을 허한다    

“북한이 오늘 대륙간탄도미사일(추정)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행위이자,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다.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한 지 약 네 시간 뒤인 오전 10시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발표한 정부 입장이다. 이 중 핵심인 ‘도발’과 ‘규탄’은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야 되살아난 표현이다.

강인선 대변인이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 라운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회의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인선 대변인이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 라운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회의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도발로 부른 것을 문제 삼으며 “대통령의 실언이 사실이라면 소위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우몽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부었다.

이후 문 정부에서는 북한이 도발을 해도 도발로 부르지 못했다. 당시 한 정부 관계자를 만나 ‘김여정이 금기어로 정했다고 이를 정부가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이냐’고 물었다. “김여정이 그렇게 말한 이상 우리가 도발이라는 표현을 쓰면 북한에서 곧바로 또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굳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정부가 교체되고 이제야 다시 ‘도발’에 호부호형이 허락된 셈이다. 문 정부 초기에 쓰던 ‘불상의 발사체’처럼 그야말로 불상 같은 표현이 사라진 것도 물론이다.

#. 국가안보실의 실명 브리핑

25일 오후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기자들을 상대로 직접 상황 설명에 나섰다. 북한의 의도나 기폭장치 실험 등 7차 핵실험 준비 동향까지, 예민한 정보 사안도 아우르는 설명이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오픈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박3일 방한 일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뉴스1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오픈라운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박3일 방한 일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뉴스1


통상 이런 경우 실명이 아닌 ‘고위 당국자’로 인용해 보도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 형식을 택하는데, 김 차장의 브리핑은 모두 실명으로 보도할 수 있다는 전제로 이뤄졌다.

문 정부에서는, 특히 2018년 대화 국면을 거친 이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NSC 회의를 열어도 서면으로 짤막한 몇 줄짜리 결과문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자들이 브리핑 등을 통해 NSC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질문할 수 기회 자체가 사실상 제한됐다.

김 차장의 실명 브리핑은 그래서 인상 깊었다. 한‧미는 최근 들어 정보 자산으로 탐지한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북한의 도발 준비 동향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선제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허를 찌르는 기습 도발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경고인데, 김 차장의 브리핑 역시 그런 성격이 강했다. 실제 한·미 군 당국은 이날 북한 도발 직후 지대지 미사일 발사 등으로 즉각 대응했다.

북한이 25일 동해상에 ICBM을 발사한 직후 군은 '현무-Ⅱ', 미군은 ATACMS 등 지대지미사일을 1발씩 동해상으로 발사하며 대응했다. 사진은 미군의 ATACMS 지대지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뉴스1

북한이 25일 동해상에 ICBM을 발사한 직후 군은 '현무-Ⅱ', 미군은 ATACMS 등 지대지미사일을 1발씩 동해상으로 발사하며 대응했다. 사진은 미군의 ATACMS 지대지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 뉴스1

이는 ‘준비돼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읽혔다. 기자들에 대한 김 차장의 답변 자체도 애매함이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설명과 분석 전달이었다. 이에 이미 작성 중이던 기사들도 그의 브리핑 내용을 주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대폭 수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 바로 수화기 든 한‧일 장관

사실 가장 생경한 풍경은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 간 통화였다. 외교부가 기자들에게 한‧일 장관이 북한 도발과 관련해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린 건 25일 오후 7시 49분. 북한이 미사일을 쏜 당일, 그것도 약 한나절밖에 지나지 않아서였다.

심지어 보도자료 다섯 문장 중 네 문장의 주어가 “양 측은” 내지는 “양 장관은”이었다. 의견이 대부분 일치했다는 뜻이다. (나머지 한 문장은 ‘박 장관이 하야시 외상과 통화했다’는 내용이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5일 외교부 청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대신과 통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5일 외교부 청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대신과 통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이 도발하면 한‧일 간 논의가 이뤄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지만, 보통 북핵 수석대표 간에 통화하는 정도다. 격을 높여 장관들이 직접 수화기를 들고 공동 대응을 논의한 건 최근 몇 년 사이에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불과 한 달 전 박 장관의 전임자인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장관회의에 참석, 하야시 외상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도 약식회담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양쪽 중 누구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만나려는 의지가 없었다. 애초에 하야시 장관 취임 뒤 정 장관과의 첫 통화 자체만도 3개월이나 걸렸다.

사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미국보다 더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한‧일이 대북 공조를 강화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간 과거사 갈등 등으로 인한 한‧일 관계 악화는 대북 협력도 삐거덕거리는 안보상 허점으로 이어졌다. 박 장관과 하야시 외상 간의 즉각적 통화는 그래서 낯설지만, 반가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정부와 비교할 것은 아니고, 사실 가장 인상 깊은 건 이날 NSC 회의를 직접 주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급히 출근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선거 기간 중 외견상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게 앞머리를 볼륨 있게 넘겨 이마를 드러내고 깔끔하게 정리한 헤어 스타일이었는데, 이날 카메라에 잡힌 윤 대통령은 앞머리가 축 처져 이마를 가리는 ‘윤 총장 스타일’로 다시 돌아갔다.

개인적으로는 바뀐 스타일이 훨씬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날만은 총장 스타일이 적절했다. 몇 분이라도 빨리 NSC를 주재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발신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군 통수권자로서의 직분 이행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새 정부의 달라진 모습은 인상적이다. 물론 한국 정부가 달라졌다고 해서 북한의 핵 야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행동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뒤 이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는 점을 성과로 설명했다.

그러기를 바란다. 공동성명에서 추상적으로 약속한 ‘한‧미 간 빈틈없는 공조’가 어떻게 현실화할지,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지켜보는 시선이 아직 많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