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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다시 시동 거는 부동산 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0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선거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이 또 부동산세 감면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나 올해 3월 대통령 선거 때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앞선 선거에서는 1주택 실수요자에 한해 세금 감면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지난 5년간 적폐로 몰고 규제에 규제를 가했던 다주택자가 대상이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주택 합산 6억원에서 11억원으로 2배가량 올리겠다고 한다. 관련법 개정안도 이미 발의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다주택자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해 1주택 실수요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원으로 상향할 때도 다주택자의 과세 기준은 손대지 않았다. 당내에서는 다주택자는 ‘투기세력’이므로 되레 더 무겁게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많았다. 하지만 고가 1주택 소유자보다 저가 2주택 소유자의 종부세가 터무니없이 더 많아 논란이 일었고, 이를 지방선거 며칠 앞두고서야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완화한다면서
또 저가·고가 다주택자 편가르기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지난 5년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보여 줬던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편가르기 부동산 정치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다주택자 중 종부세 대상자는 48만6000명에서 24만9000명으로 48.8% 줄어든다. 하지만 나머지 다주택자는 올해(과세기준일 6월 1일) 종부세가 되레 상승한다. 민주당이 개정안에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없앴기 때문이다. 지난해 95%였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올해 100%다.

종부세는 공시가격에서 기본공제 금액을 제외한 뒤 대통령령에서 정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산출한다. 이 비율을 올리거나 내리면 세금이 확 늘어날 수도, 반대로 줄어들 수 있다. 특히 국회 문턱을 넘지 않고 정부가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도 종부세 부담 완화 공약 이행을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18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민주당은 이 싹을 잘라 소유 주택 합산 11억원을 초과하는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니 종부세를 더 내고, 11억원 이하는 다주택자이긴 하지만 저가주택 소유자이니 세금을 면제해 우리 편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공정시장가액비율 폐지 명분으로 내세운 건 실효성이다. 올해 비율이 100%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존재 의미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없애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시장가액은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땅값이나 집값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시가격이 기계적으로 상승하는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도입한 것이다.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 납세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장치라는 얘기다. 이를 없애겠다는 건 윤석열 정부가 공정시장가액을 악용(?)하는 것을 미리 막겠다는 취지로밖에 안 읽힌다.

그런데 이 비율을 제대로 악용한 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다. 2018년 9·13 대책에서 다주택자를 잡겠다며 8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19년부터 매년 5%포인트씩 올려 2022년 10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9·13 대책에선 종부세율도 인상했는데, 세율과 과세표준이 함께 오르면서 종부세는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7년 주택분 종부세수는 3878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조7000억원으로 1462% 늘어났다.

민주당은 특히 이번 개정안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공제금액 6억원은 그대로 뒀다. 이게 의미하는 건 결국 다주택자라도 저가주택 소유자는 우리 편이고, 고가주택을 소유한 다주택자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주택자 중 종부세 대상의 절반 정도만 우리 편으로 만들면 6월 1일 지방선거, 더 나아가 지지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계산이 선 것이다.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집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 힘들게 한, 국민들끼리 등지게 한 부동산 정치가 이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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